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마다 소풍 Jul 14. 2021

사람에 대한 판단은 보류할수록 좋다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는 것을 아직도 배운다.

사람을 겪어보지 않고 가볍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는 여름을 보내고 있다. 우리는 다른 이의 외모나 언행 그리고 들리는 소문 같은 것으로 선입견과 편견을 담아 너무도 가볍게 사람을 평가하고 정의한다. 그래도 나는 주변에 휘둘리지 않는 이성적인 사고로 사람을 대하며 살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음을 여름의 한가운데를 지나며 다시 경험하고 있다.


   



미국 공립학교에서 특수학급 보조교사 일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우리 교육구에서 진행하는 ESY(Extended school year)에 참여하고 있다. Summer school이라고도 불리는 ESY는 여름 방학 동안 장애 학생에게 제공되는 특수 교육 관련 서비스다. 방학을 앞두고 ESY의 교사와 보조교사의 지원을 받고 프로그램에 참여를 신청한 특수학급 학생들로 반을 구성하여 지정된 학교에서 20여 일 동안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여름 방학이 긴 미국에서 오전만 진행되는 20여 일 정도의 프로그램이니 경험 삼아 해보자는 마음으로 ESY 보조교사로 지원을 했다. 그런데 반 배정 공지를 받고 프로그램에 지원한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일 년 전에 근무하던 학교에서 여러 가지로 부정적인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던 특수 학급 교사의 반에 배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제발 그 반에만 배정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리 소원을 했건만, 역시 삶은 늘 기대를 넘어선다. 반 배정을 받고 한동안 마음이 안 좋았다.

방학이 시작되고 부쩍 더 염려가 밀려왔지만 20일쯤 못 참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ESY 첫날 아침,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의연한 태도로 출근했다. 오랜만에 만난 옛 동료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얼굴에 웃음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며 배정된 교실에 들어서니 피하고 싶었던 그 교사의 뒷모습이 보였다. 부러 더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자 내 머릿속에 남았던 이미지 그대로 불만이 가득한 두꺼비 같은 얼굴의 Ms. M이 험상궂게 웃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자신의 반에 배정된 것을 알게 된 후 Ms. K와 다른 동료들로부터 나에 대해 들은 바는 있지만 맞은편 교실에서 이 년을 근무한 나를 Ms. M은 기억하지 못했다.   

맞은편 교실에서 근무하던 시절, 우리 반 담임 Ms.K와 다른 보조 교사들로부터 들은 Ms. M에 대한 숱한 일화와 교정을 오가며 내가 목격하고 느낀 것에 의하면 Ms. M은 불평 대장에 수다쟁이에 엄살꾼이고 자기 합리화에 능해 말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사람이었다. 번거롭고 귀찮은 것은 다 보조교사에게 맡기고 자신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늘 뭔가를 먹고 마시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그 반에서 일하지 않는 것이 다행스럽기까지 했다.




같은 교정에서 지낸 덕분에 내가 아는 아이들 절반, 낯선 아이들 절반으로 이루어진 Ms. M의 반에서의 첫날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방학 중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라 수업도 느슨했고 Ms. M은 한결 여유가 있어 보였으며 같은 교실에서 함께 일하게 된 다른 보조 교사와도 제법 궁합이 맞았다. 게다가 다른 반은 여러 학교에서 온 아이들이 섞여 교사들도 아이들도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우리 반은 Ms. M 반 학생들로만 이루어져서 따로 규율을 가르치거나 훈련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탓에 우리 반은 '어라, 이건 뭐지?'라는 생각이 스칠 정도로 편하고 쉽고 모든 것이 부드럽게 흘러갔다. 건너편 교실에서 울고 짜는 아이들과 온갖 말썽을 피우는 아이들의 소란이 학교를 뒤흔드는 중에도 우리 교실은 어렵거나 피곤할 일 없이 평탄했다. 물론 사소한 문제들이 발생하기는 했지만 Ms.M과 아이들이 이미 학급의 운영방식에 적응이 되어서 큰 소란 없이 하루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ESY 첫 주에 대한 소감을 묻는 남편에게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에 이렇게 말했다.

" 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괜찮아. 그리고 내가 Ms. M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 전부가 아니었어. 사람을 대하는데 편견과 선입견은 위험한 것 같아.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어."

내 소감은 단순히 단어의 나열이 아닌 진심이었다.


같은 교실에서 지낸 지 불과 이틀 만에 Ms. M은 두꺼비 같은 얼굴로 불평만 하는 사람이 아니고  단지 표정의 변화가 없고 말투가 다정하지 않을 뿐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임을 느끼게 되었다. 가끔 자신이 좋아하는 이야기나 자기 자랑을 할 때는 벙긋벙긋 잘 웃기도 했고 함께 일하는 나와 다른 보조교사에게도 너그러운 편이었으며 우리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했다. Ms. M은 심술궂은 두꺼비가 아니라 나이와 세월 그리고 습관 탓에 다소 두꺼비 같은 인상을 갖게 되었을 뿐이었다.

Ms. M은 자신의 학생들의 성향과 행동 패턴에 대해 아주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고 학생들이 문제를 일으킬 작은 불씨도 놓치지 않고 미리 끄는 기술을 발휘했다. 특수학급에서 쌓은 오랜 경력을 바탕으로 아이들을 노련하게 잘 다루었고 짧은 수업 시간에 필요한 내용을 능률적으로 가르쳤다. 의외로 아이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물풍선 던지기나 핫도그 날 같은 행사도 준비하고 화분에 씨앗 심기 같은 작은 활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학생들의 기호나 식성을 기억해서 무료 급식으로 남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살뜰하게 챙겨 보내는 모습에서는 학생들에 대한 애정도 느껴졌다. 편견이나 선입견에서 벗어나 함께 일하면서 발견한 Ms. M은 약간의 불평과 엄살과 그리고 단단한 자기애로 뭉쳐져 있기는 했지만 단순히 그런 사람만은 아니었다.

물론 말투가 다소 위압적이고 말이 너무 많아서 자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느라 수업이 중단되거나 다소 학생들을 방치하고 컴퓨터에 맡기는 경향이 있기는 했다. 재미있는 활동을 준비하고도 물풍선에 얼마를 썼는지, 화분이 얼마짜리인지 같은 공치사와 학부모 기부와 도움이 부족하다고 불평을 하는 등 안 하는 게 나은 것 같은 말들도 여기저기에 떠들고 다니는 통해 제살 깎아먹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 공치사하는 것을 몹시 즐기는 데다가 만나는 사람을 붙들고 말하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속에 있는 이야기를 가감 없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늘어놓은 탓에 부정적인 느낌까지 전달되어 여러 가지 안 좋은 평판이 쌓인 것 같았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배운다. 너에게 나쁜 사람이 나에게 나쁜 사람이 아닐 수 있고, 나에게 좋은 사람이 너에게 좋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이년 동안 맞은편 교실에서 근무하면서 들려오는 말에, 보이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쌓아왔던 한 사람에 대한 그릇된 편견과 선입견은 그 사람과 한 공간에서 하루에 네 시간, 이십일을 보내면서 허물어지고 있다. 편견과 선입견이 벗겨지고 만나는 그 사람은 내가 밉게 보고 나쁘게 보았던 것보다 훨씬 예쁘고 좋은 사람이다.


뜨거워지는 캘리포니아의 햇살과 함께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는 단순한 진리를 다시 깨닫고 나의 섣부른 판단의 오류를 인정하며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사람에 대한 판단은 일단 보류하고 오래도록 미뤄두고 제대로 알게 된 후에 하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누군가에 대해 판단하거나 그 사람을 멋대로 정의하는 것 자체가 주제넘은 일은 아닐까?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images/id-802301/


매거진의 이전글 미인 대회를 먹을 뻔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