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은 아픔을 이겨내고 한국어를 배우는 용기 있는 입양 학생
자신을 버린 어머니과 한국이란 나라의 언어를 배우기까지 얼마나 아팠을까?
그 아픔을 한국어 배움으로 승화한 학생에게서 인간 승리의 눈부심을 본다.
이년 전 이맘때. 코로나로 인해 교실 수업이 온라인 수업을 전환되었다. 온라인 수업 세 번째 학기에 만난 에런 씨는 겨울이 길고 추운 미네소타주에 살고 있었다. 7살에 입양된 미국 가정은 에런 씨에게 따뜻한 처소가 되어주지 못했다. 에런 씨를 입양한 미국인 부모가 에런 씨를 책임질 수 없게 되자 에런 씨는 다른 가정으로 다시 입양되는 아픔을 겪었다. 버림받은 상처와 사랑받지 못하는 외로움에도 에런 씨는 그릇된 선택을 하는 대신 학교의 클럽활동과 운동부 활동을 핑계로 귀가시간을 늦추며 고등학교 시절을 버텼다.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입양한 부모로부터 독립한 에런 씨는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었고 자신의 소중한 가정을 일군 든든한 가장이 되었다. 미국이란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에런 씨에게 어렴풋이 기억나는 자신을 버린 부모에 대한 원망은 끊임없이 찾아왔다. 남들보다 더 깊은 상처를 이겨내며 살아온 에런 씨는 두 아이의 아빠가 된 후 어쩔 수 없이 짙어가는 그리움에 한국을 찾았다. 그러나 한국에 가면 금방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던 어머니와 가족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에런 씨는 우여곡절 끝에 자신을 입양 보낼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어를 제대로 말할 수 없었던 에런 씨와 낳아주었지만 낯선 어머니와의 만남은 에런 씨 그리움의 그늘을 지워줄 수 없었다. 낯선 한국에서 생김새만 비슷한 어머니와 제대로 마음을 터 놓지 못한 채 돌아온 에런 씨의 소원은 어머니를 만나는 것에서 한국어로 어머니와 소통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마땅한 한국어 수업을 찾지 못하던 중에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한국어 수업을 하게 된 우리 반에 오게 되었다.
에런 씨의 이야기를 알게 되고 수업 중 간간이 에런 씨가 지나가듯 내뱉는 아픔과 상처를 발견할 때면 사십 년 전 자신을 버린 어머니의 처지와 상황을 이해하기까지 에런 씨의 마음에 얼마나 많은 소용돌이가 휘몰아쳤을지 가늠이 되어 마음이 무척 아팠다. 그러나 에런 씨는 그동안 셀 수 없는 생채기에 딱지가 앉고 다시 상처가 벌어졌다 아무는 과정을 반복하며 단단해진 모양이었다. 그런 에런 씨는 그늘진 내색 없이 수업 시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학생들과 소통하며 개별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든 온라인 숙제장 플랫폼에 가장 먼저, 열심히 숙제를 올리는 학생이 되어주었다.
한국어 선생님인 나는 담담하게 자신의 인생의 아픔을 나눌 만큼 성숙한 에런 씨의 단단함이 존경스러웠다. 자신을 버린 어머니와 한국의 언어를 배우기 위해 시간을 내어 수업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에런 씨의 용기에 감탄을 하며 그 학기 수업을 가르쳤다. 쏟아붓는 열정만큼 한국어 실력이 늘어가는 에런 씨의 모습은 나에게 큰 보람으로 다가왔다.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한국에서 미국 곳곳으로 입양된 여러 학생들을 만나곤 한다. 그들은 외모와 언어의 장벽, 입양된 가정의 불안정한 상황과 같은 어려운 고비를 이겨내며 각자 인생의 터전을 세웠지만 버림받은 아픔 뒤켠에 한국과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었고 잃어버린 가족을 만나 한국어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있다. 그래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한국과 연결된 작은 이야기라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쓴다. 그런 아픈 사연을 가진 학생들 앞에 설 때면 한국어 선생님으로서 그들이 힘들게 내딛는 걸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오래전 그들을 놓아버린 한국과 부모들을 연결해줄 수 있는 단단한 디딤돌을 놓아주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