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이후 여자의 성(Last Name)에 대한 짧은 사색
결혼과 함께 여자의 성(Last Name/ Family Name)이 바뀌는 미국.
결혼을 해도 여자의 성(Last Name/ Family Name)을 고수하는 한국.
한국에 살 때는 그런가 보다 했던 것이 미국에 살다 보니 나의 현실적인 문제가 되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가 말했다.
"엄마, 오늘 학교에서 사무실에서 일하는 선생님이 내가 낸 종이를 보고 엄마가 엄마가 아니냐고 물었어. 그래서 우리 엄마 맞다고 했어. 그런데 왜 성(Last Name/ Family Name)이 다르냐고 해서 우리는 한국에서 왔는데 한국 사람은 결혼해도 성을 바꾸지 않는다고 말했어."
"그랬어? 대답 잘했네. 그런데 이 동네에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것을 물어본다니. 그 사람 이상하네."
"그러니까. 그래서 나 기분 나빴어."
딸은 미간을 찌푸리며 어깨를 으쓱하더니 나에게 언제 내 성을 바꿀 거냐고 물었다.
미국에 오기 전부터 미국에서는 결혼하면 아내의 성이 남편의 성으로 바뀐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결혼하면 여자가 남편의 성을 따라가는 문화를 가진 미국이니까 그런 호기심과 의문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리고 미국이라는 나라에 살면서 그들의 제도와 문화를 존중해야 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미국 학교 직원은 악의 없이 호기심으로 물었을 테지만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요즘처럼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가진 시대에 아이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는 예의 없는 질문을 던진 그의 경솔함과 당황했을 딸의 마음에 기분이 언짢았다
딸의 이야기를 들은 날, 한국에서 둘째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에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일이 떠올랐다. 유치원에서 보내온 서류에 내용을 적고 있는데 그걸 보던 둘째가 뜬금없이 물었다.
“우리는 한가족인데 왜 엄마 성만 달라? 엄마는 왜 다른 성을 쓰는 거야?”
그 당시까지 나는 가족 안에서 내 성만 다르다는 것에 대해서, 내가 자라는 동안에서 왜 우리 엄마만 다른 성을 쓰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며 살았다. 아이에게는 한국사람들은 결혼해도 자기 성을 바꾸지 않는데 아이를 낳으면 아이들은 아빠의 성을 따르는 법도를 가지고 있다 보니 가족 중에 엄마만 다른 성을 갖게 되는 거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니까 엄마 성이 다르다고 엄마가 가족이 아닌 것은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아이는 내가 예를 들어준 다른 친구들 가족 상황과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한국의 성 제도와 엄마는 여전히 한가족이라는 것을 이해하였다.
물론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여성의 성(Last Name) 제도가 남녀의 불평등의 산물이라는 생각으로 상황에 따라 아이에게 엄마의 성을 물려주거나 아빠와 엄마 모두의 성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유치원생인 아이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한 듯하여 일반적인 한국의 문화에 기반하여 내 성이 다르지만 한 가족인 이유를 설명했다. 당시 아이는 자신의 궁금증을 해소하였지만 나는 아이의 궁금함에서 우리나라의 성 제도가 약간 비합리적이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남녀평등이나 여권 신장과 같은 문제와는 별개로 기왕에 한가족이 되는 것이라면 모두 같은 성을 갖는 것이 더 바람직하고 합리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성 제도가 남녀 불평등의 산물이라든지 아버지의 성을 물려받는 것이 법도에 맞는 것이라든지 또는 옛날에는 여자는 시집을 와도 남의 집 사람이며 진정한 가족으로 존중받지 못한 증거라는 것과 같은 사회, 역사적인 의식까지 언급하기에는 나의 지식과 논리가 부족하다. 하지만 당시 유치원생 아이의 눈을 통해 나는 엄마만 다른 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가족문화에 대해 처음으로 질문을 품게 되었다.
미국에 살고 있으니 언젠가 서류상으로 남편을 따라 성을 바꾸어야 할 날이 올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아직 법적으로는 내 아버지의 성을 사용하고 있다. 딸아이가 다니는 학교 직원의 호기심 어린 질문이 언짢기는 했지만 사실 그의 질문은 미국 사람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미국에 살고 있으니 미국 문화를 존중하고 따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 텐데 여전히 내 성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그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유치원 다니던 아이가 던진 질문으로 나 조차도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가족의 성문화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미국에 살고 있는 지금, 나는 서류상으로 여전히 혼자만 가족과 다른 성을 가지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미국 사람들의 문화와 같이 가족들이 같은 성을 사용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고 여러 가지로 더 가족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날 이후로 신분증에 있는 내 공식적인 이름을 적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가족들 특히 아이들과 관련된 사람들에게 이메일을 보내거나 학교에 서류를 낼 때(물론 그 서류가 정확한 내 신분증의 이름을 요구하지 않는 간단한 서류일 경우에), 나는 Last Name(성)을 쓰는 자리에 남편과 아이들과 같은 성을 써서 보낸다. 아마도 같은 성을 가진 사람들이 한 가족을 이루는 미국에서 특별한 설명이 필요 없이 나도 한가족임을 표현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 이후로는 아이들을 통해 그런 질문을 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게 되었다.
미국 사람들은 우리나라 말로 “~네 가족”이라고 명명할 때 “The+Last Name+s”이라고 자신들의 성을 복수형으로 적으면서 가족을 통칭하여 부른다. 예를 들면 아버지의 성이 Baker 인 가족은 “The Bakers”라고 남편의 성이 Lee인 가족은 The Lees”라고 한다. Last Name을 Family Name으로도 칭하는 것을 보면 미국인들이 가족을 통칭할 때 그들의 성을 복수형으로 사용하는 이유가 충분히 가늠이 간다.
특히 크리스마스나 생일에 누군가에게 가족이 함께 보내는 카드의 보내는 사람 란에 그들의 성을 복수형으로 적곤 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우리 가족도 가끔 가족 전체를 대표해서 카드 하나를 쓰는 경우 그렇게 적어서 보내곤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이 “가족의 Last Name(성)”속에 나는 있는 걸까? 물론 그렇다는 것을 알면서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우리나라처럼 여자가 결혼한 후에도 자신의 성을 계속 사용하는 나라들이 있고 사회와 시대가 변해가면서 여성이 성을 바꾸는 것에 대한 여러 가지 논란이 일고 있다. 하지만 우리 몸의 세포처럼 사회나 국가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집단인 가족이 Family Name으로도 불리는 Last Name(성)을 공유하는 것은 사소하지만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 같다. 물론 사람들의 이름에 붙는 성이 가족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족의 일원들이 진짜 한가족으로 묶어지는 상징적인 의미가 되기도 한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엄마의 성이 달라서 한가족이 아닐까 봐 걱정하던 아이가 지금은 엄마가 자신과 성이 다른 것에 대해, 가끔 학교에 내는 서류에 내가 자신들과 같은 성을 적는 것에 대해 더 이상 의문을 갖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아직 나는 여전히 가족 안에서 혼자 다른 성을 쓰고 있지만 나도 가족의 일원이다. 왜냐면 엄마의 성이 아이들이나 남편과 다르든 같든 엄마도 가족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왕 한가족이라면 엄마도 아빠나 아이들과 같은 성을 갖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것이 결혼 후 여성의 성(Last Name) 문제에 대한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