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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Mar 05. 2019

캘리포니아에서 봄을 기다리다

캘리포니아의 겨울이 추운 엄살쟁이의 봄 사모곡

어려서부터 추운 것을 끔찍하게 싫어했던 나는 가을이 다 가기도 전에, 겨울의 찬 바람을 맛보기도 전부터 춥다고 수선을 피우던 엄살쟁이였다.

겨울이 와도 한국과 비교하면 춥다고 말하기도 민망한 캘리포니아 남부에 살면서도 추위 엄살쟁이인 나는 온몸을 꽁꽁 싸맨 채 춥다고 엄살을 부리며 캘리포니아의 여덟 번째 겨울을 살고 있다.




한국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캘리포니아에도 겨울이 있다.

아무리 한국만큼은 춥지 않다고 해도 기온도 제법 떨어지고 쌀쌀한 바람이 불면 어깨가 저절로 움츠러든다.

오락가락하는 제법 을씨년스러운 날씨와 함께 겨울이면 캘리포니아에는 비가 제법 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불의 고리의 한편을 차지하는 캘리포니아는 사막 위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지진뿐 아니라  늘 가뭄과 고온으로 인한 산불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라 할 만큼 비가 드문 곳이다.


올겨울 그런 캘리포니아에 비가 계속 내렸다.

처음에는 여느 때처럼 겨울이면 오락가락하던 비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매주 이삼일씩 심지어 사나흘씩 비가 계속되는 날들이 몇 달째 이어졌다.

건기와 우기로 나눠지는 열대 지방의 날씨처럼 캘리포니아에도 우기라는 계절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비... 또 비 그리고 또 또 비.

급기야 홍수의 위험 경고가 뜨는 지역도 있을 정도로 많은 양의 비가 이어지기도 했다.


3월이 시작되었는데도 비 예보가 이어지고 있으니 늘 화창하고 쨍쨍한 날씨에 익숙한 이곳 사람들은 비에 멀미를 느낄 지경인 듯하다.

심지어 예년보다 기온도 낮아서 그런지 지난주에는 우리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눈발이 날리기도 했다.

캘리포니아에 눈발이라니. 게다가 폭설에 비상사태가 선포된 지역까지도 있었다.

캘리포니아에서 나고 자란 예순 넘은 지인이 자기가 어릴 때 눈 내린 적이 있던 후 처음이라 할 만큼 놀라운 일이었다.


오늘도 종일 구름 가득한 어두운 하늘 아래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어 나도 모르게 “춥다"는 말을 여러 번 내뱉었다.

2월이 끝나고 3월을 살게 되면 쨍쨍하고 뜨끈뜨끈한 캘리포니아의 햇살과 끝도 없이 파란 캘리포니아의 하늘을 다시 만나게 될 줄 알고 기대했는데 오늘도 하늘은 잔뜩 흐렸고 내일부터 또 비가 온단다.

늘 가뭄에 시달려 누런 들판과 메마른 돌산의 풍경에 익숙했던 이 곳에서 비는 고맙고 반가운 존재이다.

그렇지만 언제쯤 물러갈지 궁금할 만큼 연일 이어지는 비에 생활이 불편하고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몸도 마음도 으슬거리니 자꾸 불평을 하고 있다.


"3월인데 날씨가 왜 이래."

투덜대며 운전을 하는데 가물어서 바짝 말라버린 풀들로 황량하던 도로 옆 들판이 연일 이어지는 비와 함께 진한 초록으로 물들어 있었다.

초록색 들판 넘어 마치 누군가 말을 타고 끝없이 달릴 것만 같고 딸랑딸랑 방울을 울리는 하얀 양 떼가 목동을 따라 언덕을 넘어올 것 같은 푸르른 목장이 이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나무도 거의 없이 늘 황갈색이던 돌산이 초록으로 산림이 우거진 듯 울창해 보였고 그 산 넘어 저 멀리 있는 산 꼭대기에는 하얀 눈이 덮여있다.

마치 달력에서나 보던 아프리카 대륙의 킬리만자로 산의 만년설을 보는 듯하다.

푸르른 목장을 지나 초록이 우거진 짙푸른 산 뒤로 눈 모자를 쓴 산이 이어진 풍경에 내 눈과 마음이 감탄과 감동으로 가득 찼다.


메마른 들판을 초록으로 물들인 건 겨우내 계속된 고마운 비이다.
캘리포니아 남부에 살면서 눈덮인 산을 보는 호강을 하게 된 것도 고마운 비 덕분이다




생각해보니 나는 평생 처음 경험한다는 캘리포니아의 홍수 뉴스를 들을 만큼 많은 비를 캘리포니아에 산 지 8년 만에 경험하고 있는 운 좋은 사람이다.

평생에 두 번쯤 보았다는 눈 덮인 동네 산을 겨울 내내 그리고 봄을 기다리는 3월에도 여전히 지날 때마다 바라볼 수 있다니 정말 복도 많은 사람이다.

저렇게 초록 초록한 들판과 저 멀리 눈 덮인 산에 내려앉을 정도로 구름이 가득한 하늘을 맘껏 즐기면서 캘리포니아의 봄을 기다릴 수 있다니 정말 억세게 운 좋은 사람이다.


그러고 보니 꽃피는 봄은 언제 오냐고 투덜대며 빗방울과 함께 스며드는 겨울의 찬기에 내가 엄살을 떠는 동안 겨우내 오락가락했던 비는 이미 봄을 이곳에 뿌려놓았나 보다.

그러기에 저 멀리 눈 덮인 산 아래, 모든 것들이 이미 초록으로 물들어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일도 모레도 내린다는 그 지겨운 비는 저 초록 천지인 들판에 3월의 봄꽃들을 가득 피울 고마운 봄비가 될지도 모른다.




사막 한가운데 살고 있으면서 만년설을 얹은 듯한 저 멀리 산등성이와 초록 지천인 푸른 들판을 보면서 겨우내 같은 길을 달렸다.

그럼에도 끝이 없을 듯 이어지는 비가 마뜩지 않았던 엄살쟁이 나는 우둔하게도 이미 이곳에 가득했던 캘리포니아의 봄을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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