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하다 똥 밟은 날 이야기
그것이 무엇이라 말할 수 없는데 기분이 나쁘다.
기분 나쁘지만 참는 것이 나을 듯하다. 참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점점 더 끓어오른다.
그럴 때 어떻게 하세요?
살다 보면 사소한 일로 또는 작은 실수로 욕을 먹을 때가 있다. 나에게 화를 내는 사람이 아는 사람이라면 변명이라도 해서 서로 오해를 풀고 마음을 풀 수 있다. 그런데 난생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그런 일을 당한 뒤 그 앞에 얼굴을 들이대고 변명이나 하소연도 할 수 없을 때는 너무 속상하고 기분이 나쁘다.
특히 말도 아니고 손짓이나 몸동작으로 노골적인 무시나 욕설을 날리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는 황당함이 분노가 되어 밀려온다. 그리고 한참을 대책 없이 기분이 나쁘다. 차라리 말로 하는 게 낫지 무슨 뜻인지 다 알만한 손짓이나 몸짓으로 나를 모욕하는 일을 겪고 나면 처음엔 당황스럽던 것이 황당함으로 바뀌었다가 어디선가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나에게 모욕적인 동작을 날린 그 사람은 이미 사라진 뒤 혼자서 씩씩거리다가 침대에 누워서도 그 장면이 떠올라 기분이 나빠서 잠도 오지 않을 것 같다.
인생을 살면서 내가 한 행동이 그들을 기분 나쁘게 했을 수 있지만 그렇게 욕을 먹을 만한 것이 아닌 것 같은데 그런 취급을 받는 일을 겪으면서 나름 노하우를 배웠다.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주고받았을 말.
“그냥 길 가다 똥 밟았다고 생각해.”
똥은 또 무슨 죄인가 싶은 우스운 상황이지만 그 말이 상대방에게 들이댈 수 없는 나쁜 기분이나 끓어오르는 억울함을 해소시켜주는 고마운 말이 되기도 한다.
가끔은 어처구니없이 우스운 그 말이 무엇보다 위로와 위안이 될 때가 있다.
그래서 살면서 사소하지만 무엇이라 말할 수도 없는 기분 나쁜 억울함이 밀려들 때 나는 그것을 길을 가다 똥 밟은 것이라 여기기로 했다.
그게 뭐라고, 그 작은 몸짓이 뭐라고 나의 마음을, 기분을 그리고 나의 하루를 가끔은 나의 소중한 잠을 망치게 둘 수는 없는 일이다.
기분 찝찝하고 화도 나지만 길가의 잔디밭에 쓱쓱 문지르거나 수돗가에 가서 물로 닦고 나면 털어버릴 수 있는 그런 일들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미국에 와서 운전하다가 똥을 밟은 것 같은 일을 여러 번 겪었다.
어쩌면 내가 여자라서, 어쩌면 내가 아시안이라서 그들은 더 함부로 내 가는 길에 똥을 던졌는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생각했다. 그 더러운 똥을 함부로 싼 네가 더 한심한 것이다.
약간의 배려와 너그러움만 있었으면 이해해줄 수도 있었을 텐데….
그것도 가지지 못한 네가 더 나빠!
그렇게 그 사람들의 뒤통수에 대고 외쳐본다.
운전하다 똥 밟은 날 1.
주차장에서 차를 빼기 위해 주변을 살폈을 때 분명히 아무 차도 없었다. 그래서 차를 빼기 위해 후진을 한 뒤 기어를 옮겨 앞으로 가려는데 지나려는 차가 나 때문에 멈춰있던 것을 발견했다.
미안해하다며 손을 들어 올렸는데 그 운전자는 나를 보며 찡그린 얼굴로 두 팔과 손을 양쪽으로 벌리고 어깨를 으쓱하더니 쌩 지나갔다.
황당해진 나는 고개를 돌려 사라지는 그 차를 쳐다보았다.
운전하는 내내 그 운전자가 찡그린 얼굴로 두 팔을 양쪽으로 벌린 어깨를 으쓱하던 장면이 되풀이되었다.
나는 분명히 주변을 잘 살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달려온 차는 나 때문에 자기 갈 길이 막힌 것에 대해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동작을 통해 노골적으로 나를 비난한 것이었다.
이미 눈 앞에서 사라진 그 차의 꽁무니를 쳐다보다 다시 주행을 시작하는데 뭔가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너 재수 없어! ”
나는 공연히 운전대를 향해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걸로 내 발에 붙은 질펀한 똥을 털어버렸다.
운전하다 똥 밟은 날 2
친구네 동네에 들어서는데 횡단보도가 있는 것을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그런데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깜짝 놀라서 차를 세웠더니 백인 할머니가 손자 소녀를 데리고 길을 건너면서 내 얼굴을 빤히 본다. 너무 미안해서 손을 들어 올리며 미안하다고 했는데 나에게 삿대질을 하며 길을 건너는 내내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내가 보행자일 때도 나 같은 운전자들 때문에 놀랐던 일이 있던 터라 나는 공손하게 그 삿대질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할머니와 아이들이 길을 다 건너고 다시 엑셀을 밟으면서 운전대에게 한 마디 건넸다.
“저 할머니 성깔 보통 아니네. “
미안한 상황이니 할머니의 삿대질과 분노는 새똥쯤으로 가볍게 여기기로 했다.
운전하다 똥 밟은 날 3
‘저 앞 Stop Sign에서 우회전을 해야지.’
잠깐 섰다가 차를 출발시키는 순간 어쩌다가 내가 보지 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직진하는 차가 나를 살짝 비켜 쌩하고 지나갔다. 직진 차량을 발견 못한 것에 놀라 멈칫했다가 마음을 진정시키며 다시 엑셀을 밟았다. 그때 조금 아까 나를 지나간 차의 운전자가 창문 밖으로 왼팔을 내밀더니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미국인들이 “Fuck You”라고 말하는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리는 동작은 아주 심한 욕설이다.
그래서 미국에 올 때 아이들에게 손가락 조심하라고 단속을 하기도 했다.
장난으로라도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들거나 감정을 상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욕을 난생처음 들은 아니 본 나는 처음에는 무슨 수신호인가 했다.
그런데 백미러로 나를 쳐다보면서 다시 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리는 그 운전자의 뒤에서 운전을 하면서 깨달았다.
아까 내가 그 사람의 차를 보지 못하고 우회전하려고 해서 화가 난 것이었다.
얼굴이 화끈화끈 거리면서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내가 실수를 했지만 이게 그런 욕설을 들을 만한 일인가 싶어서 화가 났다.
나와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그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멀어질수록 점점 기분이 나빠졌다.
"나쁜 놈"이라고 운전대가 그 운전자 인양 한 마디 던져도 기분이 누그러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운전사가 내 앞에 있다고 생각하며 가운데 손가락을 한 방 날렸다.
누가 보면 안 되니까 운전대 아래에서 소심하게.
난생처음 손가락 욕을 날리고 나서 기분은 조금 나아지는 듯했지만 내가 그런 것을 따라 했다는 것에 뒤통수가 간지러웠다.
찐득한 똥 덩어리를 밟았는데 아무리 문질러 닦아내도 신발 바닥 틈새에 여전히 찐득한 그것의 잔재가 붙어있는 것 같은 찜찜한 기분이랄까?
그러고 보니 내 운전대가 불쌍하다.
내 발 앞에 똥을 던진 사람들 앞에서는 어쩌지도 못하고 혼자 소심하게 운전대에다 분풀이를 하고 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이 그 사람들은 이미 사라진 뒤인데도 그렇게 혼자 소심한 한 방을 날리고 나면 속이 조금은 후련해지곤 한다.
그 사람들이 던진 똥 때문에 나빴던 기분도 화도 사그라드는 듯했다.
남들이 싼 똥 때문에 욕먹는 운전대야, 미안하다.
그런데 네 덕분에 내 정신은 건강해지는 것 같다.
아뿔싸!
그런데 돌이켜 보니 나도 여기저기 똥 싸고 다닌 일이 여러 번 있었던 것 같다.
약간의 배려나 너그러움도 없어서 상대방의 실수나 잘못을 이해하기는커녕 비난을 하고 그들에게 모욕을 준 일이 셀 수 없이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들에게 욕 들어주는 운전대가 없어서 그들의 마음과 기분이 게다가 그들의 하루와 소중한 잠이 엉망이 되었으면 어쩌나 가슴이 덜컥한다.
나로 인해 똥 밟은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 중 이 글을 읽는 분이 있다면 이 자리를 빌려 사과합니다.
혹시 제가 속이 좁고 욱해서 허튼 말과 몰상식한 행동으로 맘 상하게 한 일이 있다면 정말 미안합니다.
내가 한 똥 같은 말과 행동으로 기분이 언짢았던 이들이 그 기분 나쁜 똥을 탈탈 털어버렸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