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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Feb 04. 2019

당신의 동서는 적인가요,  동지인가요?

모든 동서(同壻/同婿)가 동지(同志)가 되는 날을 꿈 꾸며


우리나라의 가장 큰 명절인 구정 설이 한국 날짜로 내일이다.

지금쯤 한국에서는 설을 쇠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가족들과 함께 고향으로 이동 중이거나 이미 아이들을 데리고 부모님 댁에 도착했을 것이다.

한국의 명절 풍경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대다수의 며느리들은 지금쯤 시댁에서 설음식을 준비하느라 바쁠 것이다.




한 가족의 큰 며느리가 되어 7년 전 미국에 오기 전까지 나도 명절이면 음식을 장만하거나 시댁 식구들과 시골에 내려가 어른들을 뵙고 오곤 했다. 우리 시댁은 제사를 드리는 집안이 아니라 거창한 음식 준비는 없었지만 어쨌든 명절에 며느리의 입장은 대동소이할 것이다.  

별로 대단한 큰며느리 역할은 하지 않았지만 큰 아들과 결혼을 하여 얻은 큰며느리라는 이름의 무게는 무엇 때문이라 말할 수 없는 어떠한 부담감으로 나와 늘 함께했다. 예전과 달리 요즘은 자녀들의 숫자도 적어져서 외며느리인 집도 많고, 무거운 책임감으로 집안의 대소사를 보살피는 큰 며느리의 의무감도 거의 사라졌다. 그렇지만 늘 뭔지 모를 사회적 책임감을 느끼며 살았고 태평양 건너 먼 미국에 살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내 마음 한쪽을 그것이 차지하고 있다.  

먼 미국에 산 다는 이유로 인사치레에 불과한 명절 인사와 약간의 용돈으로 명절을 대신하며 산지 7년이 넘었다. 내가 일곱 번의 설과 일곱 번의 추석을 전화 한 통과 용돈으로 체면치례를 하는 동안 같은 며느리인 우리 동서는 나의 몫까지 더해서 시어머니를 챙기고 아이들을 데리고 시골에 가서 어른들께 인사를 드려야 했다.

한국을 떠나온 시간이 길어질수록 멀리 있다는 핑계로 마음만 있을 뿐, 몸 편한 나는 이런저런 집안 애경사 (哀慶事) 때마다 둘째 아들에게 시집왔는데 나를 대신해 큰며느리 노릇까지 하느라 애쓰는 동서에게 미안할 뿐이다. 특히 명절이면 멀리 있음에도 시어머니께 덜 죄송할 수 있는 것은 다 동서가 있기 때문임을 절감한다.


그런 나에게  우리 동서는 그저 늘 고맙고 고마운 사람이다.     




동서(同壻/同婿) : 두 사람 이상의 남자 사이에 있어서나 여자 사이에 있어서, 그 아내나 그 남편들이 자매간이거나 형제간일 때에 맺어지는 관계를 이르거나, 또는 그러한 관계에 있는 사람을 일컫는 친족 용어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한 남자와 결혼을 통해 남편이란 사람과 함께 살게 됨과 동시에 낯선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는 그 낯선 가족이 사는 집을 시댁이라고 부른다.

그 남자의 부모님은 나에게 시부모님이 되었고 그 남자의 동생은 시동생이 되었다.

시동생이 결혼을 해서 낯선 여자를 데리고 시댁에 왔다.

남편의 가족 중에서 유일한 외부인은 나 하나였는데 또 다른 외부인이 가족이라는 관계 가운데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나와 그 낯선 여자는 동서지간이 되었다.

시댁이라는 새로운 가족 안에서 만난 그 여자는 나를 형님이라고 부르고 나는 그 여자를 동서라고 부른다.



한 남자가 결혼을 통해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그 남자는 결혼 때문에 떠나기 전까지 내가 살았던 우리 집을 처가댁이라 부른다

우리 부모님은 그 남자에게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되었고 내 여동생은 처제가 되었다.

여동생이 결혼을 해서 낯선 남자를 데리고 친정집에 왔다.

우리 가족 중 유일한 외부인이었던 남편과 새로운 외부인은 동서지간이 되었다.

내게 제부가 되는 그 새로운 외부인은 남편을 형님이라고 부르고 남편은 그 남자를 동서라고 부른다.




동서지간인 사람들은 한 가족 안으로 외부에서 들어온 동성(同性)의 낯선 존재들이다.

고로 기존의 가족들에 대한 같은 이질감과 함께 서로에 대해 끈끈한 동질감을 가질 이유와 조건이 충분하다.

한 가족에 들어온 같은 외부인으로서 그 가족의 일원으로 녹아져야 하는 동일한 상황에 처했기 때문에 뜻을 같이하고 생각을 함께 하는 동지(同志)가 될 수 있는 여건을 가진 사람들이다.  

동서인 사람들은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고 서로의 처지에 대해 깊이 공감해 줄 수 있는 입장인 것이다.


그러나 가족의 일원이 아니었던 두 사람이기에 서로의 마음과 처지가 저절로 이해될 거 같은 관계임에도 주변에는 동서 간의 문제로 어려움이 있는 가정이 많다.

묘한 비교의식과 경쟁의식, 그로 인한 형제와 자매들 간의 갈등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온다.

오히려 시누이나 올케, 처남들과의 관계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존재가 동서인 경우를 종종 보았다.




이십여 년 전, 내가 며느리가 된 지 삼 년쯤 되었을 때, 동서가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시댁에서 가족과 이방인 사이의 선상에 있던 나는 나와 같은 이방인이 가족에 들어온다는 것이 반갑기보다 부담스러웠다. 주변에서 친구들과 지인들의 결혼생활을 통해 동서 간에 여러 가지 어려움과 갈등을 겪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내가 어설프고 부족해도 며느리 하나이니까 시부모님께서 그러려니 넘어가 주실 거라 생각했는데 동서가 들어오면서 며느리 둘이 되니 비교대상이 되는 것 같은 묘한 긴장감과 알 수 없는 불편함이 느껴졌다. 다행히 우리 시부모님은 나와 동서에 대해 드러내어 비교하거나 서로에 대해 말을 하지 않는 분들이었다. 새로 들어온 동서도 말없이 가족의 일원이 되기 위해 며느리로 해야 할 일을 마다하지 않았고 열심히 가정을 돌보며 직장 일도 열심히 하는 야무진 사람이었다.  

덕분에 시간이 지나 둘 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낯선 가족에 들어온 이방인에서 적당히 버무려진 한 가족으로 무난하게 살아올 수 있었다. 처음에는 시댁 식구들보다 더 낯설고 어려웠던 관계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져 갈수록 조금씩 생각과 뜻을 맞춰가면서 어느 정도 시댁 동지가 되어왔다. 물론 같은 뜻과 생각을 가진 완벽한 시댁 동지(同志)라고 아직까지 자신할 수는 없지만 같은 시어머니를 모시는 며느리와 한 가족의 일원으로서 서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믿는다.




동서들 간의 관계는 사실 동서 두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다기보다는 주변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주변에 시어머니에게 늘 아픈 손가락이었던 시동생과 결혼한 동서를 가진 한 친구가 있다. 그 시어머니는 자신의 철부지 아들과 결혼해준 작은 며느리에게 늘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있어서 그런지 아쉬운 일, 힘든 일은 절대 내색을 하지 않고 그저 무엇이라도 더 해주려고만 했다고 한다. 그러니 힘들고 어려운 일은 오롯이 친구의 몫이 되었고 책임감이 강한 친구의 남편은 큰아들로 그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는 것을 당연히 여겼다.

동서가 들어오기 전에도 해왔던 일들이었건만 동서가 들어온 뒤, 참고 감당했던 그 모든 것들에 부당함과 억울함이 물밀듯이 친구를 덮쳐왔다. 집안 행사 때마다, 명절 때마다 상전처럼 받들려지는 동서를 보며 십수 년 넘는 세월을 며느리로의 짐을 여전히 혼자 감당해야 하는 입장에서 어찌 마음이 상하지 않을까? 시어머니의 차별이 친구의 마음을 갉아먹는다는 것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시간을 감수하면서 같은 며느리인데 자신과 전혀 다른 대접을 받는 동서를 지켜봐야 했던 친구가 시어머니뿐만 아니라 동서까지 몹시 미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예전에 같이 일한 한 동료 선생님에게 사람들이 말하는 좋은 집안에 학벌과 직업 좋은 형부가 있었다. 그런데 어렸을 때 만난  그 동료의 남편은 그 당시까지 안정된 직장이 없는 상태였다. 동료의 친정 부모님은 번번이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노골적으로 형부와 언니를 치켜세웠고 그 선생님과 남편을 은근히 무시했다. 장인, 장모님의 그런 모습에 형부도 점점 선생님 남편을 얕잡아보는 것을 선생님도 느끼고 있었다.

선생님 남편은 점차 처가댁에 가는 것을 싫어했고 동서 때문에 자신이 처가댁에서 차별받는다는 생각에 자신의 동서이자 처가댁의 보물인 그 사위를 매우 미워했다. 그리고 그 선생님은 부모님 뿐 아니라 그 사이에서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자기 남편이 노골적으로 무시받는 상황에 무심한 언니에게까지 깊은 서운함을 품고 있었다.  부모님의 태도가 두 사위 간의 관계를 어렵게 만들었고 자매간의 관계도 불편하게 만든 것이다.



우리 며느리들과 사위들이 불편한 동서관계를 벗어나 끈끈한 동지들이 되기 위해서는 부모의 배려와 지혜가 필요합니다.




살벌한 세상에서 아등바등 살면서 매일 맛보는 차별과 비교에 위화감과 자괴감으로 지쳐있는 며느리들과 사위들이 집에서라도 위로받을 수 있으려면 부모님들의 배려가 필요하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남들과 경쟁하며 전투적으로 살고 있는 사위들과 며느리들이 가족들 안에서는 전투복을 벗고 편안할 수 있으려면 부모님들의 지혜가 필요하다.


며느리들과 사위들이 경쟁자, 심지어 적이 될지 마음 맞는 동지가 될지는 부모들에게 달려있는 것이다.

시부모의 지혜로운 행동이 며느리들의 관계를 원만하게 만들 뿐 아니라 자신의 아들들 간의 형제 우애도 돈독하게 한다.

장인, 장모의 사려 깊은 배려로 사위들의 관계가 바람직하게 형성되면 자신의 딸들은 더 사이좋은 자매가 된다.   

그럴 때 동서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입장을 깊이 공감하면서 끈끈한 동지가 되어 갈 것이다.




이런 좋은 것을 깨달았는데 정작 나는 남매를 두었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과 결혼하면 가족이 될 며느리나 사위가 좋은 동서가 갖도록 도와줄 기회가 없겠다.

아마도 우리 아이들이 가정을 가질 즈음에는 동서관계라는 것이 매우 드문 것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혹시 결혼을 했는데 동서라는 존재를 가족의 일원으로 만난다면 동서와 경쟁자나 적이 아닌 동지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동서는 지금쯤 아이들을 데리고 귀성차량으로 막힌 도로를 달려 시댁에 가고 있을 것이다.

가족으로 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시댁에서 조금씩 더  동지가 되어가는 나와 우리 동서가 되기를,

고마운 동서에게 내가 좋은 시댁 동지가 되어줄 수 있기를 감히 꿈꾸어 본다.


동서에게 이번 설에도 애써주어 고맙다고 하트 뿅뿅 인사라도 보내야겠다.   



그와 함께

지금 며느리로서 시댁에서, 사위로서 처가댁에서 설을 함께 보내고 있을

세상의 모든 동서들이 동지(同志)가 되는 날이 오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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