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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Sep 24. 2018

문득 엄마 품이 그리운 날, 함께 읽어요.

엄마 덕분에, 그리운 엄마 품 덕분에 쓸 수 있었던 동시 한 편

작년 여름, 미주아동문학협회에서 개최하는 신인 문학상에 어설픈 기대감을 가지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응모했던 동시가 미주 아동문학 신인상 동시 부문에 당선되었다.

덕분에 한 번도 내 길이 될 거라 생각지 못했던 "글을 쓰는 사람들"의 끄트머리에 발끝을 살짝 얹을 수 있어설픈 초보 작가가 되었다.

내 서툰 글이 상을 받을 만한 것이었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고 감사했다.


엄마 덕분에 그리운 엄마 품 덕분에 상을 받았다.





< 엄마 안은 날 >


엄마를 안으면

엄마 냄새와 함께

엄마 마음이

나에게 오는 것 같아


콩닥콩닥

콩닥콩닥


이 소리가

내 것인지

엄마 것인지


내가 엄마 뱃속에 있던 날처럼


엄마를 안은 날

내 마음은

말랑말랑해진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나는 딸이 되기도, 엄마가 되기도 했다.


사춘기에 접어든 우리 큰 딸은 한 번 안아보려면 몇 번 사정을 해야 안아주는 둥 마는 둥이다.

그래도 몸이 아프거나 학교에서 힘든 일이 있던 날, 가만히 방에 들어가면 그런 날은 마음이 허전한지

 “안아줘” 라며 두 팔을 벌린다.

둘째인 아들은 막내라서 그런지 중학생이 되어서도 수시로  “엄마 Hug!”라며 와락 안기곤 한다. 아니다 그것도 요즘은 점점 뜸해지는 듯한 것이 이제 아들도 사춘기에 접어들려는 모양이다.

어릴 적에는 “엄마, 안아줘.”가 노래였는데. 가끔은 딸과 아들이 달려와 조그마한 두 팔을 활짝 벌리며 안기던 시절이 그립다. 그때 실컷 안아주고 또 안아줄 것을. 안아달라고 할 때가 맘껏 안아줄 수 있는 때였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어릴 때, 엄마를 안으면 엄마에게서 나는 엄마 냄새가 참 좋았다. 그 냄새가 참 따뜻하고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엄마 심장 박동 소리와 내 소리가 함께 울리는 느낌이 참 좋았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쑥스럽고 어색해서 횟수가 줄었지만 무엇엔가 서럽고 속상한 날이면 엄마의 품이 젤 그리웠다. 두 아이의 엄마로 엄마와 멀리 떨어져 살면서 제일 아쉬운 것은 삶무거움과 두려움에 흔들릴 때 괜찮다 나를 위로해줄 엄마 품에 안길 수 없다는 것이다.




열 달을 품어 낳은 아이들이 그 몇 배의 아니 몇 십배의 세월을 살아도 항상 그립고 안전하게 느껴지던 곳은 아마도 그 아이들생명이 시작된 엄마의 뱃속이 아닐까?

공부의 압박과 친구들과 관계의 문제, 보고 듣기만 해도 옥죄어오는 삶의 스트레스에 딱딱하게 굳고 차갑게 식은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꼬옥 안아주고 싶다. 어색해서 싫다고 몸을 비비 꼬더라도, 쑥스러워서 몸을 요리조리 뺄지라도 안아주고 싶다. 더 꼬옥.

서로가 서로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서로의 체온으로 딱딱하게 굳고 차갑게  식은 우리 아이들의 마음이 부드럽고 따뜻해져서 말랑말랑해질 수 있도록. 엄마 뱃속에 있던 날처럼.

어색해서 또는 쑥스러워서 안아주는 엄마를 피하는 척할지라도, 그 순간 그 아이에게는 아무런 위험과 아픔이 없이 안전하고 따뜻했던, 말랑말랑한 엄마 뱃속에서의 기억이 가장 위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추석이지만 엄마를 만나러 갈 수 없는 먼 곳에서

내가 쓴 동시에 내가 취했나 보다.

혼자 시를 읊으며 엄마와 엄마 품이 그리워 가슴이 울컥해진다.


이십 년 가까이를 엄마로 살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엄마의 딸이었던 때가 문득문득 생각나고 그 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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