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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Nov 23. 2018

다른 성(姓)을 꿈꾸었던 어느 박가(朴哥)의 깨달음  

자기의 성(姓)을 싫어한 한 박가(朴哥)가 즐거운 공원 씨가 되던 날

살다 보면 내가 가진 것이 싫어서 그것을 바꾸고 싶은 때가 있다.

다른 것을 갖고 싶다고 꿈을 꾸는 날들도 있다.

그런데 살다 보면 그 싫었던 것이, 바꾸고 싶었던 그것이 몹시도 고마운 날이 오기도 한다.




내 성( : Last Name/ Family Name)은 “박”이다.

나는 내 존재의 뿌리이기도 한 “박가(朴哥)”라는 내 성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마도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부터 내 이름 앞에 붙는 "박"이라는 성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박”이라는 성 때문에 내 이름이 덜 예쁘게 들리는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다른 성을 가진 친구들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아버지를 따른 자신의 성을 싫어한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면 이상하게 볼 것 같아서 한 번도 내 성을 싫어한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자라면서 사람들이 성을 붙여 내 이름을 부를 때나 내 성을 물어볼 때,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불편하고 싫은 기분이 들곤 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나는 한국인의 가장 흔한 성 중 하나인 내 "박"이라는 성에는 어떤 예쁜 이름을 붙여도 왠지 투박하고 촌스럽게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반면에 다른 두 가지 흔한 성인 "김"이나 "이"는 훨씬 부드럽고 세련된 느낌이 들었다.
어릴 적 내가 예쁘다고 생각했던 김세희나 이효진 같은 이름도 "박"이라는 성을 붙여 박세희, 박효진이라고 부르면 그 이름의 예쁜 느낌과 세련됨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김가(金哥)나 이가(哥)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성장하면서 조금씩 익숙해지고 무뎌지기는 했지만 “박”이라는 내 성에 대한 불편한 느낌은 늘 나를 따라다녔다.




그런데 작년 가을부터 나는 내내 못마땅했던 “박”이라는 내 성을 좋아하게 되었다.

아니, 심지어 아주 고맙고 자랑스럽게 여기게 되었다.


작년 가을, 나는 우리 학구 교육구의 임시교사(Substitute Teacher)로 일하기 시작했다.

 Kinder부터 12학년까지 수업에 못 오는 교사들의 빈자리를 대신해 학교에서 아이들의 하루를 책임지는 일이었다.

어설프고 서투른 영어를 하는 누르스름한 얼굴의 까만 머리 여자가  Substitute Teacher라고 했을 때, 아이들이 보인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흥미롭게 쳐다보기도 하고 반갑게 대해주기도 하였지만 가끔은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느낌을 맛보기도 했다.


처음 고등학교에 간 날, 담임교사가 아닌 Substitute Teacher가 있는 걸 안 아이들은 왠지 신이 난 듯했다.

아마도 내 키보다 한 뼘 또는 두 뼘도 더 큰 그 아이들에게 나는 오늘 수업시간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좋은 그런 의미의 존재인 데다가 어설퍼 보이는 아시안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 아이들과 한두 시간은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하는 임시교사로 담임교사가 주고 간 과제를 아이들이 수행하도록 도와야 하니 최소한의 긍정적 교감과 인간적 존중이 필요했다.

밖에서 만나면 학생인지 학부모인지 모를, 다 큰 서른 명 가까운 아이들이 내게 어떤 관심조차 없는 얼굴로 자기들끼리 은밀한 눈빛과 수군거림을 주고받고 있었고, 나는 아이들이 흥미를 갖고 내 이야기를 경청하게 할 무엇인가가 절실했다.


일단, 아이들의 냉소적인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최대한 밝게 인사를 했다.

“Good Morning!”

몇몇 아이들이 쳐다보았다.

“내가 퀴즈를 하나 낼게. 맞춰볼래?”

아이들이 수군거림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이것은 어떤 장소야. 거기에는 나무가 많고 잔디밭이 있어. 벤치에서 사람들이 쉬기도 하고 너희들이 친구들하고 놀거나  강아지와 산책을 하기도 하지.”

그때, 조용히 듣던 아이들 가운데 어떤 예쁘장한 금발머리 여자아이가 손을 들더니 외쳤다.

“Park?”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맞아. Park.  공원이야. 너 아주 똑똑하구나.”

아이들이 그 친구를 쳐다보며 웃었다.

“너희 주변에 공원이 많이 있지? 나는 그 공원들 중 하나야.”

무슨 말인가 어리둥절해하는 아이들 앞에서 칠판에 “Mrs. Park”이라고 썼다.

“나를 Mrs. Park(공원 선생님)이라고 불러줘.”

“아하~ “하더니 아이들이 와르르 웃었다.

그 뒤, 아이들은 내가 담임교사가 주고 간 과제를 안내하는 것을 잘 들어주었고 편안하고 밝은 분위기 속에서 수업을 마칠 수 있었다.

“Thank you, Mrs. Park.”

교실을 나서면서 몇몇 아이들은 친절하게 인사도 해주었다.

다음 시간, 다른 학생들이 들어왔을 때도 나는 똑같은 방법으로 인사를 했고, 출근하면서 우려했던 것과 달리 고등학교에서의 첫 날을 즐겁게 잘 지냈다.

그 후로 나는 내 소개를 할 때마다 나를 “공원 선생님”라고 소개했고 아이들은 그것을 좋아했다.

한 번은 전에 갔던 고등학교에 다시 임시교사로 간 날, 점심시간에 교정을 지나가는데 어떤 키 큰 남자아이가  “Hi, Mrs. Park.”하며 인사를 했다.

매일 다른 학교, 매 시간 다른 아이들을 만나고 있었던 나는 아이들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 아이는 내 이름을 기억하고 인사를 한 것이다.

그 아이 또한 수많은 임시교사를 경험하고 있었을 텐데 나를 기억한 것은 아마도 내가  “공원 씨”였기 때문일 것이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교실로 돌아가면서 기분이 무척 좋았다.


그것은 모두 내가 몇십 년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내 “박”이라는 성 덕분이었다.

(다른 박 씨들은 다른 영어 스펠링을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박이라는 내 성을 영어로 Park이라 써왔다.)

“Park”이라는 단어가 “공원”을 의미한다는 것을 오래전 처음 영어를 배우기 시작할 때 배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 후로 "Park"이라는 단어를 수백 번 보거나 듣고 써왔음에도 한 번도 그것이 내 이름의 일부라는 것을 연결시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 날 아침, 문득 그 두 가지가 연결되었고, 그것이 내가 임시교사를 하는 내내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 초등학교 특수학급의 보조교사로 일하면서도 가끔 나는 내가 공원 중 하나라고 소개를 하곤 한다.


그 날 이후, 내 성이 영어로 공원을 뜻하는 "Park"이라는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못마땅하게 여겨온 내 "박"이라는 성에게 고맙고 미안했다.



네 번의 십 년 세월을 살면서 세상에는 계속 좋기만 한 것도 무조건 나쁘기만 한 것도 없고, 좋은 일이 나쁜 일로 바뀌기도 하고 나쁜 일이 좋은 일로 바뀌기도 한다는 것을 배워왔다.

그래서 나이를 먹을수록 무엇인가를 단정 짓고 판단하는 일에 신중해야 함을 느낀다.

작년 가을 내가 경험한 했던 일도 그런 경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촌스럽고 투박하다고 치부하며 불만을 품었던 내 이름의 첫 글자 “박”이라는 성이 Park=공원이라는 것을 배운 지 삼십 년은 지나서야 나를 즐겁고 재미있는 공원 씨로 만들어주기도 하는 것이 삶인 것 같다.

예전에는 발음이 억센 것 같아서 듣기 불편하게 느꼈던 박 선생이라는 호칭이 지금은 너무도 듣기 좋고 들을 때마다 즐거운 공원 씨나 공원 선생님으로 바뀔 수 있었던 것은 그 작은 깨달음 덕분이었다.  




인생은  

평생,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 배우고 깨닫는 것이라는 인생 선배들의 말이 진실로 옳다고

오늘도 즐거운 공원 씨는 무릎을 치며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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