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마다 소풍 Oct 21. 2018

부럽지만 지지 않을 거예요.

나는 마음껏 부러워할 것이다. 그리고 내 삶을 살아갈 것이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누가 시작한 말인지 모르지만 언제부터인가 드라마에서도 지인들과의 대화에서도 듣곤 했던 말이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부러워하는 사람을 패배자처럼 취급하는 그 말이 불편했다.


누구든 부러워할 수 있다.

완벽하게 보이는 사람이라도 더 완벽해 보이는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순간은 있다.

나는 믿는다. 부러워한다고 지는 것은 아니다.

부러움은 자연스러운 사람의 감정 중 하나일 뿐이지 패배와 승리로 단정 지을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늘 누군가가 부러웠고 지금도 여전히 부러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렇다고 내가 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러웠던 그 사람의 삶은 그의 몫이고 나는 부러웠던 마음과 상관없이 내 삶을 살아왔다.


부러워하며 살았지만 나는 지지 않는 삶을 살았고

지금도 부러움과 상관없이 내 삶을 잘 살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앞으로도 나는 누군가를 부러워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의 삶이 아닌 내 삶을 살아낼 것이다.



 

어느 날,  딸아이와 차를 타고 가는데 딸아이가 말했다.


“엄마, 세상은 참 불공평한 거 같아. 미영이를 봐. 키 크지 예쁘지. 애들이 다 걔를 좋아해. 공부도 열심히 안 하고 아무 노력도 안 하는데 선생님들도 애들도 다 좋아해. 걔는 인생 사는 게 참 쉬울 거 같아. 그래서 나도 모르게 걔가 미울 때가 있어.”


한참 예민한 사춘기 고딩 딸의 이야기에 같은 마음을 품었던 오래전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에 공부도 잘하고 글도 잘 썼던 게다가 예쁘기까지 해서 몹시 부러웠던 친구가 있었다. 삽 십 년도 더 지나서 그 친구의 얼굴은 희미해졌지만 우리 반 아이들 모두 그 친구를 좋아했고 담임 선생님뿐 아이라 다른 선생님들도 그 친구를 예뻐했던 것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한 번은 그 친구네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는데 어린 내 눈에도 친구의 엄마는 무척 미인이었고 그 집 거실이 우리 집보다도 훨씬 컸다. 친구 혼자 쓰는 방에 들어갔을 때 예쁜 이불이 덮어진 침대와 세계명작이 가득 꽂힌 책꽂이가 신기했다. 그 친구의 모든 것이 부러웠지만 어린 마음에도 부러워하는 것을 들키는 것이 싫어서 아무렇지 않은 척 같은 반 친구로 적당하게 거리를 유지하며 지냈다. 가끔은 밝고 사교적이며 총명한 그 아이가 부럽다 못해 미워지기도 했는데 그런 마음을 품는 내가 너무 부끄러워서 나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삼심년도 더 지나서 떠올리는 것인데 지금도 열 살짜리 내가 품었던 시기심 가득했던 죄책감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고등학교 때 우리 반에는 키는 작고 통통한데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 부르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찰지게 말하는 재주가 있었고 명랑하고 활달하며 거침이 없는 성격에 다른 반 아이들에게까지 인기가 많았다. 선생님들이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눈에 드러나게 편애하던 시절이었는데, 선생님들은 공부와 전혀 상관없이 그 아이를 귀여워했고 가끔 일부러 노래를 불러보라고 시키곤 했다. 그러면 그 아이는 늘 그렇듯이 음치인 내 귀에도 근사하게 들리는 노래를 한 곡조 뽑곤 했다. 처음에는 부러워서 그 아이의 마음을 얻어보려고 애를 썼다가 나중에는 어리석은 질투심에  나 혼자 그 아이와 절교를 선언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오는 일이었지만 당시 십 대 소녀의 감성이 충만했던 나에게는 밤새 혼자 베갯잇을 적시며 울만한 심각한 일이었다.


열 살이던 시절에도 열일곱이던 시절에도 그 친구들과 같은 불공평한 혜택을 누려보지 못했고, 마흔이 훌쩍 넘은 이 나이에도 가끔씩 그런 상황에 맞닥뜨릴 때마다 그 답을 알 길이 없어 서글펐던 현실에 대해 딸아이가 나에게 질문을 했던 것이다.


세상을 살면 살 수록 더 이해할 수 없는 밑도 끝도 없는 불공평과 불공정한 상황에 대한 의문.

나이를 먹어 경험이 쌓일수록, 삶의 영역이 넓어질수록 더 많이 보고 겪게 되는 불공평과 불공정한 현실에서 맛보는 씁쓸하고 불편한 묘한 패배감.

우리 딸이 그런 현실에 마음이 상했다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벗어날 수 없다면 그런 상황 속에서 공정하지 못한 세상을 탓하는 대신 현실을 받아들이고  나에게 주어진 것들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내 삶에 대한 도리요 지혜로운 사람일 것이라 위로했다.




언제라도 어디에든 그런 사람은 꼭 있다.

이 세상에 나왔더니 예쁘고 잘생겨서 가만히 있어도 관심을 누리는 아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사랑받는 아이

똑같은 일을 해도 더 인정받고 똑똑하기까지 해서 쉽게 혜택을 받는 사람

애쓰지 않는데 항상 돋보이고 어느새 중심에 서있는 사람


반면에 나는

태어났더니 예쁘지도 게다가 똑똑하지도 않아서 눈에 띄어본 적 없는 아이였고

내가 애쓰지 않으면 알아봐 주지 않고 노력하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하는 학생이었다.

묵묵히 열심히 하지만 드러나지 못하고 누구도 알아봐 주지 않는 사람으로 살았다.


가끔은 부끄러운 시기와 질투에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억울하고 서글픔에 현실을 외면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거저 주어지는 것은 없었지만 노력하고 애쓰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성숙되어왔던 것 같다. 덕분에 나는 성실하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던 것도 같다.




돋보이지도 관심을 받지도 못했지만 나 스스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지혜를 얻었고  

내게 없는 것을 탐하는 대신 내게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법을 배웠으며

남다른 지능도 재능도 갖지 못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묵묵히 집중하는 삶을 살았다.



다음에 딸이 누군가가 부러워져서 서글픔에 젖어있을 때에는 내가 부러워도 지지 않고 살았던 비결을 알려주어야겠다.


딸아, 세상은 불공평하지만 그 불공평함이 공평함으로 바뀌는 순간이 있어.

바로 네게 있는 것에 만족해하고 감사하는 순간이야.


부러워해도 괜찮아. 그래서 그 사람이 조금 미워져도 괜찮아. 그렇다고 지는 것은 아니야.

네가 네게 주어진 삶을 꿋꿋하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네게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살아가면 돼.

그거면 충분해.

매거진의 이전글 다른 성(姓)을 꿈꾸었던 어느 박가(朴哥)의 깨달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