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야만 볼 수 있을 것 같은 아름다움은 항상 내 주변에 있었다.
지난 주말, 우연히 내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Laguna Beach라는 곳에서 펼쳐진 Elizabeth Turk라는 예술가의 Shoreline Project를 보게 되었다.
예술적인 삶과 거리가 있는 내가 조각가로서 그녀만의 독특한 예술의 세계를 펼치는 Elizabeth Turk의 거대한 예술 프로젝트를 직접 볼 수 있었던 뜻밖의 선물을 받은 주말이었다.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한 Laguna Beach는 일 년 내내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인 데다가 열린 공간인 해변에서 벌어지는 공연이다 보니 그것을 보기 위해 찾아온 수많은 사람들이 바닷가 산책로를 따라 빽빽하게 늘어섰다.
사람들 틈에 끼어 해변가 작은 언덕에 자리를 잡고 서니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황홀한 해변의 석양에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너무나 오랜만에 보는 자연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예술이 매일 이맘 때면 펼쳐질 텐데, 마음만 먹으면 닿을 수 있는 라구나 비치의 이 아름다운 석양을 보러 올 여유도 없이 살고 있었나 보다.
내게 주어진 것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여유 없음을 반성하며 석양에 눈과 마음을 맡기고 있는 사이 아름다운 오렌지 빛이 스러짐과 함께 어둠이 해변을 덮었다.
그리고 곧 흥겨운 북소리와 함께 불이 켜진 1000개의 우산들이 펼치는 군무을 볼 수 있었다.
Shoreline Project는 1000개의 우산을 든 1000명의 사람들이 흥겨운 북소리에 맞춰 해변의 밤을 작품 한 폭으로 만드는 행위예술이었다.
몇몇 전문적인 댄서를 제외한 대부분의 참여자들은 스스로 자원한 일반인들로 사전 연습 없이 Project의 기본적인 기준에 맞춰 각자 자유롭게 해변을 수놓았다.
독특한 문양의 1000개의 우산에 불이 켜지자 조금 전 평범했던 해변은 남태평양 어디쯤의 심해가 되었고, 그 장면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깊은 바닷속에서 온 몸으로 춤을 추는 황홀한 형광 생물들의 움직임에 넋을 빼앗긴 것 같았다.
어디에나 개성 넘치는 사람은 있는 모양이다. 공연이 끝날 무렵 짓궂은 참여자 중 한 명이 우산을 바다에 던져 불빛을 내는 우산이 파도에 넘실대는 것을 보며 웃기도 했다.
예측할 수 없는 돌발상황이 만들어내는 뜻밖의 재미, 그것이 열린 공연의 묘미일 수 있겠다.
하나둘씩 흩어지는 빛나는 우산들과 사그라드는 북소리를 뒤로하고 어둠을 뚫고 돌아오는 길,
아무런 노력이나 애씀도 없이 그저 그곳에 있었으므로 불타는 석양의 벅찬 아름다움을 눈과 마음에 가득 담아 올 수 있어서 감사했다.
눈부신 석양 뒤, 천 명의 사람들이 빛나는 우산을 들고 그들의 삶의 일부를 해변에 수 놓아주는 멋진 공연을 우연한 선물로 받아 흥겨운 북소리와 파도 소리 그리고 사람들의 살아있는 소리와 함께 펼쳐진 멋진 우산 쇼를 볼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사실 조금만 고개를 들면,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내가 사는 곳, 내가 서있는 곳에서도 언제든 늘 그 자리에 매일같이 찾아오는 자연이 만드는 예술작품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겠다.
무엇을 보느라 무엇을 찾느라 보지 못하고, 가끔은 보고도 못 본 척 살고 있는지……
늘 언제나 그러하듯이
오늘도 차 창 밖이나 동네 길목에서 마주한 이 아름다운 풍경은
제대로 바라봐주지도 않는 내 옆에 조용히 내려와 있었다.
공연뿐 아니라 Shoreline Project에 사용된 우산도 얻었던 횡재한 날이었다.
어느 비 오는 밤, 예술혼이 가득한 이 우산을 들고 천천히 걸어보리라.
나를 위한 나만의 포퍼먼스 "우산이 빛나는 밤에"를 꿈꾸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