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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Sep 16. 2018

오늘은 무엇을 먹어야 할까요?

하루 세 번씩, 때가 되면 찾아오는 고민. 무엇을 먹을까?

한 주가 마무리되는 금요일이 다가오면 우리 가족의 관심사는 주말에 한 번 하는 가족 외식.

무엇을 먹을지, 어디로 갈지 토요일 아침이면 아니 금요일 저녁부터 서로 얼굴만 마주치면 묻는다.

"이번 주 토요일 저녁은 뭐 먹어?"

"내일 저녁은 어디서 먹어?"

"거기는 별로야."

"나는 오늘 그거 안 먹고 싶은데..."

일주일에 한 번하는 외식이 즐겁고 신이 나야하는데 고작 네 명이 함께 무엇을 어디서 먹을지 정하는 것 고민스러운 일이 될 때가 종종있다.


엊그제 아침, 미국 학교에서 같이 일하는 Ms. C가 나에게  보통 집에서 무엇을 해 먹냐고 묻더니

어제 저녁에 치킨 요리를 했는데 애들이 "지난주에 먹은 거잖아."했단다.

자기가 식당 주방장인 줄 아는 것 같아 불끈 화가 났었다면서

셰프처럼 매일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내기를 기대하는 것이 어이가 없다고 하소연을 했다.

나도 그런 경험 너무 많다며 모든 엄마는 똑같은 고민을 하는가 보다라며 함께 웃었다.

우리 아이들도 가끔 식탁에 앉아서

"이거 지난주에 먹었는데 또 했어?"라고 할 때가 있다.

심지어 지지난 주에 먹은 것도 기억해서 또 먹는 거 별로라고 할 때면 꿀밤 한대 때려주면서

"북한 아이들은~"이라는 설교라도 날려주고 싶은 걸 꾹 참고 감사히 먹자고 교양 있게 넘어가기도 한다.


요즘 인터넷이나 유튜브를 보면 '5분이면 완성되는 건강요리', '너무도 간단한 영양 만점 도시락' 같은 타이틀로 아주 쉽게 다양한 요리를 척척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호객행위 같은 생글생글한 미소와 쿨한 모습으로 척척 후다닥 해내는 모습에 홀려서 몇 번 따라 해 보았다.

그런데 무슨 5 분?  무엇이 너무도 간단?

누군가 필요한 재료를 장 봐서 씻고 손질해준다면 나도 5분 안에 해낼 수 있고, 간단하다는 그 영양 만점 도시락을 매일 싸줄 수 있겠다.

하지만 실제 생활에선 장 보고 사 온 것들 정리하고 씻고 손질하고 쓰레기 정리하고 음식을 만들어 접시에 담는 데까지 5분의 열 배 아니 스무 배는 걸린다.

게다가 음식 만드느라 어질러진 것을 치우고 설거지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거기에 삼십 분은 더해야 한다.

가끔은  너무도 능숙하게 먹음직스러운 요리를 슉슉 만들어내는 요리 프로그램과 유튜브에서 도움을 받을 때도 있어 참 고맙지만, 그 때문에 아이들 눈이 높아져서 하루 세끼를 만들어 먹여야 하는 엄마로서 은근히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재료로 듣도 보도 못한 신선하고 맛깔난 음식을 뚝딱뚝딱 만드는 것이 일상인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 같은 역량을 갖지 못한 엄마라서 아이들에게 미안해질 때도 있다.




주부 생활 이십 년이 되어가는데도 여전히 고민스러운 것 중 하나가  "오늘은 뭘 해 먹나"이다.

예전에 학교에 근무할 때,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만나는 주부 여선생님들은 "오늘 저녁 뭐해먹을 거야?"라며 서로의 끼니를 궁금해했다.

그즉은 모든 주부인 여성들은 같은 고민을 한다는 것이다.

"뭘 해 먹어야 하나?"하는 끼니 걱정.


예전 우리 엄마가 어리던 시절은 먹을 것이 없어서 뭘 먹을까 걱정을 했단다.

요즘 엄마인 나와 주변 친구들은 무엇을 해 먹어야 할지 몰라 고민을 한다.

고작 밥 한 그릇이면 채워질 가족들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무엇을 먹여야 하나 고민하는,

매일 하는 그 사소하지만 엄마와 아내라 불리는 사람으로 감당해야 하는 그 일에서 벗어나고 싶은 때가 종종 있다.


성경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다.

그러나 끝도 없이 매일 매끼 밀려드는 끼니 걱정을 어찌해야 좋을까?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 있을 때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준 것처럼 매끼니 하늘에서 먹거리가 내려오지 않는 이상 엄마의 끼니 걱정은 성경 말씀도 해결해주지 못할 것 같다.


청와대나 백악관에 있는 대통령들도 이런 고민을 할까?

아니겠지. 전용 요리사가 알아서 해주겠지. 몸에 좋고 맛있는 것들로.

나랏일 국민일 세상일 같은 큰일을 고민하시는 대통령들은 이런 걱정 안 하고 살 것이다.

고작 끼니 걱정 같은 것은 할 필요도 없겠지.

중대한 나랏일 하다가 끼니때가 되어 식탁에 앉으면 촤라락 차려진 영양 가득한 제철 채소와 맛도 좋고 몸에도 좋은 음식들 앞에서 나랏일 걱정은 되겠지만 후루룩 냠냠 맛있게 먹겠지.

가끔은 나도 끼니 걱정 같은 것 말고 중대한 나랏일에 대한 고민 좀 하며 살면 좋겠다고 위험한 생각을 해본다.


나도 식탁에 앉으면 누가 차려준 밥상이 있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


누가 들으면 끼니 걱정 때문에 대통령이 부럽다는 게 우스울 수도 있지만

가족들의 하루 세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담은 생각보다 가볍지 않다.


전업주부로 살던 때에도

일하는 엄마로 살면서 퇴근하고 집에 들어설 때도

애들은 내 얼굴만 보면

"엄마, 저녁 메뉴는 뭐야?"

"엄마, 내일 아침은 뭐야?" 묻는다.

내 얼굴이 메뉴판 인양 집안에서 나와 마주치면 나에게서 메뉴를 읽고 싶어 한다.


미국에 와서 한 가지 질문이 더 추가되었다.

"엄마. 내일 점심 도시락은 뭐야?"가 그것이다.

아... 미국에 오니 학교 급식 주던 한국학교가 얼마나 그리운지.

학교 급식에 대해 불평했던 것을 진심으로 반성한다.


나도 언젠가는 오늘 아침, 점심, 저녁 식단 고민 없이 식탁에 앉으면 차려주는 밥을 먹으며 살고 싶다.

지금으로부터 삼십 년 전, 눈곱만 떼고 나가면 엄마가 차려주던 밥을 먹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그러면 엄마의 콩나물국이 짜든 싱겁든, 엊그제 먹었던 김치찌개를 또 끓여주든 아무 불평 없이 맛나게 먹겠다.

엄마의 밥상에 감사하기 전에 불평부터 했던 날들에 대해 반성한다.


엄마에게 전화해서 열심히 밥상 차려내면 반찬 투정하는 딸에게 서운했을 텐데 내색 한 번 않고 한결같이 이십오 년 넘게 매일 세 끼니를 차렸주었던 것에 고마웠다고 말해야겠다.

고등학교 때, 매일 도시락 두 개씩을 싸기 위해 애쓰셨던 것에 대해 감사했다고 말해야겠다.

나와 가족들을 먹이기 위해 매 끼니마다 "무엇을 먹일지"고민했을 엄마의 수고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깨달았다고 말해야겠다.



아... 내일 아침은 뭘 먹고, 내일 도시락은 무엇을 싸야 하나.

끼니 걱정 없는 대통령이 또 부러운 밤이다.


이제는 가족들이 나에게 내일 메뉴가 무엇인지 묻기 전에

나에게 오늘 무엇을 하고 싶은지, 또는 오늘 하루 무엇을 했고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물어봐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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