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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Jan 25. 2019

한국 아줌마의 미국 학교  취업 도전기, 그 시작

어줍은 영어로 미국 학교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 아줌마 취업 이야기  1



안녕하세요? 저 영어 진짜 못하는 한국 아줌마예요. 그런데 미국 학교에서 일해요.

어떻게 하냐고요? 유창한 영어는 안 되지만 대책 없는 용기와 아줌마의 뻔뻔함이면 되더라고요.



십삼 년을 한국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살았다.

그리고 캘리포니아라는 곳에서 오 년을 그냥 아줌마로 살았다.

아줌마로 사는 삶에서 벗어나 보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미국 학교에 취업,

지금은 미국 학교에서 특수학급 보조 교사로 일하고 있다.


혹시 미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 미국 학교에서 일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던 이들이 있다면

혹시 미국에서 학교를 다녀본 적은 없지만 미국 학교에서 일해보고 싶었던 이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좌충우돌 한국 아줌마의, 서툴고 어설펐던 미국 학교 취업 경험담을 들려주고 싶다.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새로운 시작에 작은 불씨가 되기를 감히 꿈꿔본다. 





미국 학교에서 일하게 되기까지

나는 가족과 한국 아줌마들의 안전한 틀 안에 안주할 수 없다는 간절한 투쟁의식을 키워야 했다.




초등학교 교사를 시작한 후 결혼과 육아 그리고 교사로 십삼 년을 바쁘게 살던 중

남편의 직장 때문에 휴직 후 미국 캘리포니아에 오게 되었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생활을 참 좋아했지만 좋아하는 것만으로 감당하기 힘든 여러 가지 어려움에 교사로 사는 것이 쉽지 않은 날이 점점 늘어갔다.

게다가 두 아이의 엄마 역할까지 병행하여 살면서 지쳐가던 내게 남편의 파견근무는 선물과도 같은 휴식을 허락해주었다.


내가 사는 학구에서는 3학년 이하의 아이들은 보호자와 함께 등하교를 해야 했다.

아침마다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하교시간에 마중을 가서 함께 집으로 걸어오는 시간은 두 아이와 나에게 서로 미국에 적응하며 경험하는 어려움과 소소한 학교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두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를 위해 주어진 시간들에 영어를 배우겠다고 무료 ESL  수업을 찾아 탐험하는 시간들은 즐거운 모험을 떠나는 것처럼 설레었다.

ESL 수업 시간에 다른 나라 친구들을 사귀고 그들과 어줍은 영어로 이야기를 하는 시간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나는 평생을 지방의 한 도시에서 살아왔고, 그 도시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제한된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왔다.

그런데 태평양을 건너 캘리포니아 와서 내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았던 우리나라 각지의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미국 땅이지만 한국사람들이 참 많았고 미국 사람들보다 한국사람들과의 교류가 더 편안하다 보니 나의 인간관계는 점점 폭넓은 국내적인 교류에 머무르게 되었다.

하지만 여러 모양새로 다양한 지역에서 서로 다른 모습의 삶을 살았던 새로운 한국 엄마들과의 끝도 없이 이어지는 수다모임은 그런 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신세계와 같았다.

그 신세계 속에서 여한 없이, 날마다 내가 따라갈 수도 없는 아이들 교육 걱정, 오지랖 넓게 남들 걱정, 더 나아가 우리나라와 미국 걱정 그리고 세계 평화까지 걱정을 하며 진짜 한국 아줌마 같이 살았다.   




진짜 아줌마다운 삶을 산 지 오 년쯤 되던 어느 날, 머리가 굳은 탓인지 영어 수업을 다녀도 영어는 제자리에 머무는 것 같은 답답함과 한국 엄마들과의 수다모임에서 돌고도는 사람들의 사적이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불편함, 내가 감당하기 힘든 대단한 엄마들의 교육열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에 마음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짜 아줌마로 사는 나의 삶에 대한 권태감과 무력감이 밀려들었다.

그러던 중 휴직이 만료되어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언젠가는 돌아갈 거라 생각한 학교에 사표까지 내고 나니 끈 떨어진 연이 된 듯한 기분에 우울증 비슷한 회의감이 찾아왔다.

누군가 들으면 팔자 편한 소리라고 할지 모르겠으나 당시 나는 나의 소모적인 삶에서 느껴지는 불안함과 내가 더 이상 사회에서 가치 있는 존재가 아닌 것 같은 자괴감에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무엇인가 생산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어딘가에 소속되어 내가 하는 일을 가치 있게 평가받고 싶었다.

물론 가정에서 엄마와 아내로 사는 것도 가족들을 위한 가치 있는 삶이다.

하지만 당시 나의 수고와 노동을 가족들이 점점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아서 우울하기만 했다.

남편과 아이들이 고맙다고 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지나가는 인사말일 뿐이지 나의 애씀에 대한 정당한 보상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내 삶은 그저 가족들을 위해 존재하는 아주 보잘것없는 것인 양 느껴졌다.

더 이상 소비만 하는 인간으로 사는 듯한 무력감이나 내 삶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것 같은 억울함에 나 자신을 맡겨 둘 수만은 없었다.


돈을 벌고 싶은 욕심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을 가치 있게 평가받고 수고한 대가에 정당하게 보상받는 삶을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내가 하는 수고와 노동에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생산적인 삶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와 함께 내가 하는 노동과 수고가 사랑과 고마움만이 아닌 세상의 가치로 평가되었으면 좋겠다는 강력한 욕구가 솟아났다.

간단히 말하면 다시 일을 해서 월급이란 것을 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집세와 인건비가 비싼 이곳에서 경제적인 부담감은 늘 있었기에 돈을 벌 수 있으면 좋은 일이었다.

무엇보다 그렇게 되면 내가 하는 일에 정당한 보상을 받는 존재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을 아끼고 아껴서 쓰며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었지만 지난 오 년 간 나는 늘 소비만 하는 사람이던 것 같았고 내 인생이 소비만 하는 삶인 듯했다.

가족의 일원에 갇힌 삶이 아닌 다시 사회의 일원으로 사는 생산적인 삶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엄마들과의 모임에 나가는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흔을 코앞에 두고 미국에 와서 여전히 서툴고 어설픈 영어실력을 가진 내가, 두 아이의 엄마로 살고 있는 나의 제한된 시간에 시작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즈음에 어쩌면 나도 미국 학교에서 Substitute Teacher로 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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