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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Aug 21. 2018

한국인이 결코  멕시코인보다 낫지 않다

의미 없는 키재기, 그들이나 우리나 어차피 미국에선 같은 이민자일 뿐.

나는 현재 미국 공립학교 특수학급에서 보조교사로 일하고 있다.

나의 어눌한 발음, 어색한 문장을 거리낌 없이 이해해 준 남다른 아이들 사이로, 나를 은근히 무시했던 멕시칸 소년 K는 나에게 미국 땅에 이민자로 사는 외국인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나도 이민자로 살면서 다른 이민자들을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 되지만, 미국이란 나라에 살면서 많은 한국인들이 다른 이민자들의 국적이나 국가적 위상에 기초해 의식적으로든 무위식적으로든 다른 이민자들을 비하하거나 무시하는 경우를 보곤한다. 나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사는 지역에 있는 많은 Mexican(멕시코인)들의 대부분은 노동력으로 삶을 유지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멕시코인들은 이곳의 주택 임대료가 비싼 까닭에 한 집에 여러 가족이 모여서 사는 경우가 많은데 친족들인 경우도 있지고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함께 사는 경우도 있는 듯하다. 소득이 적다 보니 맞벌이 가정이 많고, 부모들의 가정교육의 수준이 제각각이다. 물론 자녀들에게 미국 사회의 예의를 잘 가르치고, 자녀들의 교육에 열의를 보이는 사람들도 많지만, 학교에서 일하는 동안 나는 적지 않게 멕시코 가정의 아이들의 불량한 학업 태도, 사람에 대한 무례함, 기본적인 예절이나 공중도덕에 대한 의식 부족 등을 경험했다.

 

이 지역의 많은 한국 이민자들은 자녀교육에 매우 열심이고 이곳에서의 자녀들의 성공을 위해 헌신한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한국인들은 미국인들에게 완전히 동화되거나 존중받지 못하는 일이 존재한다. 그로 인해 한국인들이 스스로 느끼는 위화감과 타감을  타의적으로 때로는 자의적으로 투영하는 대상이 멕시코인들이 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부끄럽지만 내가 멕시코 사람들을 직접 경험하는 일이 적던 때, 나도 가끔은 부정적인 시선으로 그들을 보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학교 현장에서 일하면서 깨달은 것은 우리가 멕시코인들에 대해 품는 그런 부정적인 편견과 선입견, 배타적인 태도를 멕시코인들은 한국인을 비롯한 다른 아시아 이민자들을 향해 품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실 나에게 약간의 문화 충격이기도 하였다.  

 

아무래도 California(캘리포니아)에 사는 한국인들은 -내 생각에는 타 주에 사는 한국인들도 비슷할 거라 생각한다. –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여 그를 토대로 대체로 안정된 생활을 영위한다. 반면에 소위 3D 직업들은 대부분 멕시코인들이 담당하고 있으며 그들의 자녀교육에 대한 열의는 우리의 기준에 부족해 보인다. 학교에서 만나는 적지 않은 멕시코 학생들이 공부를 통해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지 않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의 눈으로 볼 때는 멕시코인들의 삶이 우리에게는 한심하게 느껴지는 경향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니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멕시코인들에 대해 무례한 감정을 드러내거나 그들을 무시하는 언행을 보이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같이 남의 땅에 들어와 사는 사람으로 서로의 처지가 도긴개긴인데, 괜한 우월으식으로 상대방을 폄하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사실, 그들이 없다면 이 곳에 사는 우리는 이 편안함을 누릴 수 없을 만큼 멕시코인들은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소소한 문제들, 도로공사나 쓰레기 처리, 심지어 동네 나무와 잔디 손질까지, 사람의 손이 필요한 일들을 책임지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멕시코인들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그들에게 별로 대수롭지 않은, 혼자 착각에 빠진 사람들일 뿐인 듯하다. 우리가 가치를 두는 남들보다 나은 성적, 열심히 일하여 받는 연봉 그리고 안정된 생활이 그들에게는 전혀 동경의 대상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악착같이 공부하고 일하는 한국인을 비롯한 아시안들이 그저 그들과 같은 이민자일 뿐이거나 오히려 자신들보다 별거 아닌데 잘난척하는 어쭙잖은 외국인들 일 뿐인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가 그네들에게 갖고 있는 감정이나 태도로 우리들 대한다.

 

그들의 시선으로 본다면,  우리는 태평양을 건너온 이민자이지만 그들은 울타리 하나 넘어온 이민자이므로 우선권은 원래 자신들에게 있었다고 생각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들이 볼 때 한국인의 억양이 담뿍 묻어나는 우리의 영어는 우스운 것이다. 자신들의 멕시칸 억양이 담긴 영어나 한국 아줌마, 아저씨들의 한국어 억양이 담긴 영어나 둘 다 어색하고 어눌한 영어인  것은 사실이니까.

 

사실 멕시칸들이 많은 이 지역에 살면서 그들은 노동집약적인 직업으로 우리보다 덜 풍족한 것 같은 삶을 살지만 미국 안에서 그들만의 문화를 즐기고 삶의 유쾌함을 누리며 사는 것을 종종 본다. 우리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미국인들의 먹거리, 삶의 방식, 심지어 축제에 그들의 것을 확장해가는 것을 체험한다.

 

 미국 공립학교 만나는 멕시칸 학생들은 학교에서 일하는 아시안 특히 영어에 모국어의 억양과 어조가 드러나는 나와 같은 상황의 직원들에게 간혹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지난 몇 달 같의 경험에서 나는 그들이 우리를 보는 눈이, 우리가 그들을 보는 눈과 같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그런 느낌이 충격으로 다가왔지만 점차 이해가 되었다. 어쩌면 그들이 이 땅에서 경험한 한국인을 비롯한 아시안들로부터 부정적인 대접을 받으면서 그들은 우리들에 대해 반감을 품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부모들의 적대적이거나 부정적인 감정은 보이든 보이지 않든 조금씩 자녀들에게 전이되는 것이니 학교에서 아이들이 우리들에게 보이는 태도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겠다.

 

그러고 보니 내가 미국 학교에서 맡은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 새삼 느끼게 된다. 아이들은 나를 통해 한국을 볼 것이고 내가 하는 말과 행동에서 한국인의 가치를 배울 것이다. 내가 그들의 피부색과 인종, 그리고 그들의 뿌리와 상관없이 긍정적인 감정과 따뜻한 태도를 보인다면 그들이 가진 한국인에 대한 생각도 아주 약간은 달라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해본다. 그런 생각이 드니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지고 내가 하는 일의 가치가 마구 올라가는 듯하다.

 

방학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가면 이 깨달음을 잊지 말자고, 주춤거리고 기다리지 말고 먼저 다가가 보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해 본다.  




K로 인해 느껴온 것들을 나열하기 시작한 글이 이렇게 스스로의 반성과 각오로 마무리되는 이 훈훈한 결말!

건강한 사고를 가진 나를 오늘도 응원한다!

 

   



미국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는 지역적 축제로 자리잡은 멕시코인들의 전통적인 축제 "Day of the Dead"

얼마전 흥행한 영화 "COCO"소재가 되기도 했다.

처음에는 좀 불편하게 느껴졌던 이 축제가 지금은 지역 주민들이 일부러 구경가는 행사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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