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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Aug 29. 2018

동해에서 Sea of Korea까지

한국사람들에게만 동해가 동해인 슬픈 현실

미국에 와서 제일 먼저 깨진 우물의 벽은 동해(East Sea)와 일본해(Sea of Japan)의 지도 표기에 대해 자각한 일이었다. 




미국에 와서 영어를 배우러 Adult School에 다닌 적이 있다. 미국에서 미국인들이 사용하는 영어를 배워보는구나 하는 기대감으로 간 첫 수업,  선생님께서 부교재를 나눠주시면서 뒤 쪽에 세계지도가 있다고 하셔서 펼쳐보았다. 나의 눈은 당연히 세계지도에서 우리나라를 제일 먼저 향했다.



그런데 이것은 무엇인가? 왠 'Sea of Japan'이라는 글씨가 우리나라 지도 오른쪽에 쓰여 있는 것이다.  한국에 살 때, 어디선가 가끔 우리는 동해(East Sea)라고 부르지만 다른 나라들은 일본해(Sea of Japan)라는 명칭을 사용한다고 듣기도 했던 것이 기억났다. 하지만 그때 나는 '우리 동해를 다른 나라가 일본해라 불러도 동해는 동해지'라는 생각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지났던 거 같다.


슬프게도 부교재 뒤의 세계지도에 Sea of China와 Sea of Japan만 있었다. Sea of Korea를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12년 동안 학교 다니면서 내가 배운 '동해'는 동해였고 그 어떤 다른 것이 될 수 없었다. 일본이 어쩌고 저쩌고 해도 우리 것은 우리 건데 뭘 걱정하나 싶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동해는 다른 나라사람들에게도 'East Sea'일 거라 믿으면 살았다. 그런 착각 속에서 안일하게 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순진함을 넘어서 무지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내 눈으로 직접, 그것도 영어를 배우기 원하는 여러 나라의 외국인들이 수업 시간에 사용하는 부교재에 실린 세계지도를 보고 나니, 언젠가 건성으로 듣고 잊고 있었던 동해 명칭에 대한 깨어있는 이들의 우려가 피부로 다가왔다.


미국에서 영어지도를 보며 영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은 우리가 '동해(East Sea)'라고 부르는 바다를 일본해(Sea of Japan)로 배울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 중에 동해를 'Sea of Japan'이라 부를 것이고, 자연스럽게 그들이 아는 사람들도 점점 그 이름에 익숙해질 것이다.


아니 그들의 언어로 배우는 세계지도에도 이미  'Sea of Japan'이라는 명칭으로 표기되어 그렇게 배워왔을 수도 있다. 우리가 다른 나라 지도에 "East Sea"라는 이름은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기도 전에 말이다.


수업 후 부교재를 선생님께 반납하면서 나는 동해의 명칭에 대해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내 부끄러운 영어로 여러 나라 사람 앞에서 섣불리 이야기를 꺼내 교실에서 논란이 일게 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 내가 미국에서 처음 사귄 일본인 친구가 내 옆에 있었다.


그다음부터 미국에서 지도를 보게 되면 나는 동해의 표기를 먼저 확인하곤 했다. 내가 봤던 모든 지도에는 그 바다가 'Sea of Japan'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 지도를 고쳐야 한다고 나설 수 있는 주변머리도 없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기로 했다.


미국 학교에서 공부하는 우리 아이들에게라도 그것은 'Sea of Japan'이 아니라 '동해(East Sea)'라고 기회가 될 때마다 이야기해줬다. 그리고 미국 서점에서 세계지도를 사자마자 지도의 'Sea of Japan'을 수정액으로 지우고 East Sea라고 고쳐 썼다.


거실 벽에 붙어있는 지도와 지구본에  써 있던 'Sea of Japan'을 지우고 'East Sea'리고 고쳐쓰고 혼자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내 일본인 친구의 딸은 우리 딸과 제일 친한 친구였다. 어느 날 우리 집에 놀러 왔다가 거실 벽에 붙어있는 그 지도를 보더니 "East Sea?"하고 되물으며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어색한 공기가 흘렀고 나는 일본인들은  Sea of Japan이라고 부르지만 우리에는 East Sea라고 부른다고 하며 어색하게 웃었고 우리는 더 이상 지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 후부터 나는 동해와 일본해 표기에 대한 글을 접할 때마다 관심 있게 읽곤 했다. 그러던  중 우리의 바다 이름 "East Sea"을 찾기 위해 여러 모로 노력 중인 분들이 계시다고 들었다.


그런데 근래에 동해라는 이름으로 수정을 요구하는  오류라는  기사를 읽고,  'East Sea'라는 명칭이 타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기사를 통해, 우리의 바다가 일본해여서는 당연히 안되지만, 동해일 수도 없다는 것에 공감했다.


위피키아 Wikipedia 지도에 나오는 Sea of Japan


우리나라에서는 그 바다가 동쪽에 있으니 동해라는 것이 이치에 맞게 느껴지지만, 지구 다른 편의 나라에서 볼 때는 '동해(East Sea)'가 동쪽이 아니라 서쪽에 있을 수도 있고 남쪽이나 북쪽에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주장에 정당성을 얻으려면 동해가 아닌 '한국해(Sea of Korea)'라는 이름으로 수정을 요청하는 것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논리적으로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내 것이었으므로 내 것이라 우긴다고 내 것이 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누구나 공감하고 타당하다고 여길 만한 것을 주장해야 그 주장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타당하고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나갈지라도 우리의 것을 우리 스스로 지킬 힘과 용기와 능력이 없으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은 얼마든지 남의 것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것이 슬그머니 남의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우리 것을 우리가 지키지 않으면 아무도 지켜주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에게 우리의 바다를 찾아주는 일은 앞선 몇몇 분들만이 할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인 것 같다. 오래전 혼자 흥분하며 속상해했던 기억을 떠올리니, 다시금 정의감과 공명심이 불타오르며, 나도 우리 집 지도의 이름만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 바다를 되찾는 일에 작은 보탬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무감이 느껴진다.



아름다운 우리 동해에게 'Sea of Korea' 라는 당당히 세계에서 인정받는이름이 붙여지기를...


해외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나에게 해당되기도 하는 것 같다. 안일하게 받아들였던 내 나라의 문제들을 외국에서 마주하게 되면서 우리나라의 바다까지 걱정을 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말이다.


지금도 미국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내 딸과 아들이, 그 아이들의 친구들이 Sea of Japan이라 표기된 지도를 보고 배우고 있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마음이 조급해진다.   




지금 우리 집 지도와 지구본 내 글씨로 East Sea라 쓰여 있는 그 바다가 공식적으로 'Sea of Korea'가 되는 날, 나는 그 이름을 지우고 새 이름을 써넣을 것이다. 아니 기쁜 마음으로 'Sea of Korea'라고 인쇄된 지도를 새로 사다가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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