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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Aug 10. 2018

곱창 좋아하세요?

고기보다 더 강력한 ‘무언가’가 필요할 때 찾아가는 마음의 약국

굳이 따지자면 난 육식파이다. 일본 고베 여행 중 내가 더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은 적이 있다. 더 열심히 살아서 돈을 많이 벌면 메뉴판의 가격 보지 않고 맘껏 고베규를 먹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의 인간이다. 그래서 명품 가방을 볼 때 보다 질 좋은 고기를 보면 더 설레고, 고기 잘 굽는 사람에게서 마성의 매력을 느낀다.     


육식러버인 내게 일반적인 고기가 커피라면, T.O.P는 단연 "곱창"이다. 신선도가 떨어지거나 자칫 손질을 게을리하면 혀가 그 상태를 먼저 알아차리는 예민한 존재다. 하지만 그 고비를 넘기고 나면 신세계가 펼쳐진다. 부위마다 다른 식감을 안겨주는 다채로운 매력, 입 안을 농락하는 쫄깃한 식감, 혀에 퍼지는 녹진한 고소함, 게다가 마무리 볶음밥은 곱창 코스의 화룡점정이다.  육식러버들의 만병통치약, 고기보다 더 강력한 ‘무언가’가 필요할 때 찾아가는 마음의 약국 같은 곳이 있다. 긴 웨이팅을 뚫고 착석을 하면 난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말한다.   

  

모둠 한 판이랑 맥주 하나요   


제주도에 (여행)가는 사람들이라면 흑돼지, 갈치조림, 회는 안 먹고 오면 서운한 음식들이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고만고만한 음식점들에 질린 자들에게 조심스레 권하고 싶은 곳이 있다. 노형동의 거대한 면세점 근처에 위치한 <규태네 양곱창>. 제주까지 와서 무슨 양곱창?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분명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들고 나는 거리에 위치해 있지만 관광객은 좀처럼 접근하기 쉽지 않은 분위기에 처음 갔을 때 좀 겁을 먹었다. 사실 지인인 도민분께서 이끌지 않았다면 난 결코 그곳을 평생 모르는 멍충이로 살았을 것이다.


오픈한 지 20년이 훌쩍 넘은 가게답게, 내부는 요즘 스타일과 거리가 멀다. 오픈된 주방을 중심으로 다찌석이 둘러 있고, 뒤쪽으로 신발 벗고 올라가는 좌식 두 테이블을 합해 수용인원은 최대 20명도 안 되는 작은 가게다. 곱창을 파는 가게라면 흔히 있을 수 있는 검은 기름때가 낀 테이블 대신 반짝반짝 윤이 나는 돌(?)로 된 테이블을 볼 때면, 주인장의 깔끔한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주인장의 깔끔한 성격은 음식에서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자리에 앉으면 보통 양곱창 모둠을 시킨다. 양, 곱창, 대창, 막창, 차돌로 구성된 세트 메뉴로 손님들의 고민을 덜어주는 고마운 메뉴다. 주문이 끝나면 빛의 속도로 밑반찬이 세팅되고 각 팀별로 전담 마크해 주시는 이모님이 하나하나 먹기 좋은 상태로 구워주신다. 엄마 새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날름날름 받아먹는 철없는 아기새에 빙의해 손님은 그저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된다. 모둠 곱창은 한국, 뉴질랜드, 미국 출신의 부속들이 각양각색의 매력을 뽐낸다.       


자칫 느끼할 수 있는 곱창이 끝도 없이 들어가는 숨은 조력자는 바로 상추 무침이다. 이 집의 시그니처인 상추 무침은 식초라고만 하기엔 뭔가 가볍고, 과일의 상큼함이 느껴진다. (물론 제조과정을 보지 못했으니 추측일 뿐) 한라산 소주와 상추 무침과 함께라면 얼마든 곱창을 먹을 수 있다. 뱃속에 여유가 있다면 꼭 추천하고 싶은 것이 곱창전골이다. 진하고, 고소한 곱창과 얼큰한 국물이 알콜 쓰레기인 나도 술을 먹게 만드는 마력을 가진 음식이다. 어쩔 수 없는 이방인 생활을 하던 제주에서 외로움을 달래 준 소중한 그곳, <규태네 양곱창>. 제주에 갔는데 혈중 곱창 농도가 떨어졌다면 <규태네 양곱창>의 양곱창으로 응급처치를 해보자.      

    




제주 <규태네 양곱창>처럼 외지인보다는 현지 로컬들에게 꽤 사랑받는 곱창집이 의정부에 하나 있다. 의정부역 뒤편 조그마한 먹자골목 초입에 위치한 <깡통 돌곱창>. 금요일 같은 경우, 퇴근하고 칼같이 달려와 5시 40분에 예약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는데 밤 11시에 먹었다는 전설의 그곳이다. 지옥의 웨이팅을 감안하고 치밀한 계산 하에 움직였다. 웨이팅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보통 주말, 피크 시간을 최대한 피해 음식점에 가는 편이다. 우선 방문 요일은 평일! 그리고 5시 40분 오픈이니까 오픈에 맞춰 입장한 손님들이 우르르 빠질 6시 조금 넘은 시각에 도착했다. 저 멀리 가게가 가까워질수록 가게 주변을 배회하는 사람들을 감지한 순간, 달려가 대기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앞에는 약 10여 팀이 있었다. 선방이다. 하지만 난 그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곱창은 주문부터 먹기까지 최소 20여분 이상이 소요되며 더군다나 곱창에 소주 한잔 하려는 이들이 넘쳐 났기에 회전율이 낮은 음식이라는 걸.     


결국 1시간 30여분의 기다림 끝에 가게 안에 입성할 수 있었다. 대개의 유명한 곱창집이 그러하듯 시끄럽고 덥고 깔끔하진 않다. 가게 안 여러 대의 에어컨은 최대로 가동했는지 하얀 입김을 토해내곤 있었지만 테이블마다 올라간 화구에서 뿜어져 내는 열기를 넘어서기는 무리였다. 실내 온도는 31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곳의 메리트는 단연 신선한 한우곱창이라는 점이다. 곱창 익는 소리, 열일하는 환풍기 소리,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 술에 얼큰하게 취한 손님들의 대화 소리에 가게 안은 늘 시끌시끌하다. 소음을 뚫고 주문을 하고 나면, 빛의 속도로 밑반찬이 세팅된다. 생간과 천엽, 생당근과 양파, 기름장과 간장 양념장. 마지막으로 선짓국이 오른다. 특별하지도 새롭지도 않은 익숙한 구성이다. 다만 신선한 생간과 천엽을 맛보고 나면 메인 스테이지에 오를 한우 곱창 모둠이 얼마나 신선할지 기대가 된다.     


뽀송한 얼굴의 직원분이 곱창이 가득 든 돌판을 들고 온다. 어느 정도 초벌이 되어 나오는 기존의 곱창집들과 달리 전혀 익히지 않은 생곱창이고 손님 테이블에서 익혀진다. 직원분의 현란한 가위질과 세심한 집게 춤이 이어진다. 중간중간 넘치는 기름은 식빵으로 닦아내며 열심히 굽는다. 꽤 긴 공복과 직원분의 현란한 손놀림에 현기증을 느낄 무렵! 드디어 먹어도 된다는 큐 사인이 떨어진다.     


이곳은 곱창이 다 익기 전까지 절대 손님의 손에 집게와 가위를 맡기지 않는다. 직접 접시 위에 올려주는 염통으로 본격적인 한우 모둠 곱창의 여정이 시작된다. 소의 심장인 염통은 간장 양념 샤워를 했는지 짭짤한 감칠맛이 입에 돈다. 뒤이어 대창, 곱창, 막창 등을 취향껏 먹으면 된다. 생곱창이라는 타이틀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입안에 넣으면 잡내 없이 톡톡 터지는 곱창들의 맹활약은 긴 웨이팅의 지루함을 잊게 만든다. 여기에 들깨가루가 들어간 부추 무침은 명품 조연이 되어 자칫 느끼할 수 있는 입안을 개운하게 만들어 준다. 한 판이면 2~3명은 충분히 먹을 넉넉한 양이다. 곱창 코스의 완벽한 마무리, 볶음밥까지 말끔히 해치우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불과 1시간 전, 나도 가게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무수한 웨이팅 손님 중 한 명이었던 사람이었다. 1분 1초라도 빨리 일어서 주는 게 더불어 사는 성숙한 시민의 자세다.


세상 사람들은 알까? 곱창이 이렇게나 위대한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곱창을 먹으며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한다는 자부심이 가슴 한편에 자리 잡는다. 몸 구석구석에 차곡차곡 쌓이는 내장 지방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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