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신변잡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사 Sep 18. 2018

60색 크레파스가 남긴 교훈

‘가장 좋은 때'를 기다리는 당신에게 전하고 싶은 말

      

     

그게 어떻게 우리 집까지 왔는지, 그 출처와 과정은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다. 부르기만 해도 벅차오르는 그 이름, <60색 크레파스>. 당시 큰언니, 작은 언니는 이미 크레파스 따위를 졸업한 고학년이었다. 아마 나와 동생을 위한 누군가의 은혜로운 선물이었을 것이다.

     

고작 9살이었던 나는 영롱하고 웅장한 60색 크레파스의 존재 자체에 몹시 큰 충격을 받았다. 그전까지 나에게 허락된 크레파스의 색은 고작 24가지뿐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색깔들이 이렇게 많았나 놀랍고 또 신기했다. 그리고 이내 그것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난 60색 크레파스를 보며 다음번 사생대회 1등 상은 내 것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나와 60색 크레파스의 인연은 딱 거기까지 였다.

     

당시 우리 집은 좋은 게 수중에 들어오면 언젠가 더 좋은 ’ 때‘를 위해 아껴 두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였다. 전쟁 후 모든 게 부족했던 시대를 살아온 부모님들 밑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무조건 아껴야 잘 산다고 믿고 살아오신 분들이었다. 그래서 60색 크레파스를 갖고도 쓰지 않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떼를 쓰지도 않았고, 아직 반항이라는 단어는 모르던 때다. 존재 자체로 찬란한 60색 크레파스는 9살 소녀의 손을 떠나 언. 젠. 가. 좋은 ‘때‘를 기약하며 어두운 다락방 구석 깊은 곳에 봉인되었다.

     

그 대단한(?) 60색 크레파스가 다시 세상 빛을 보게 된 건 10년도 훌쩍 더 넘은 때였다. 당시 우리 가족은 그동안 살아오던 오래된 구옥을 허물고 새집으로 짓는 계획이 있었다. 집을 짓는 동안 우리 가족은 임시 거처로 잠시 이사를 해야만 했다. 이사 디데이 며칠 전부터, 버릴 것과 새집으로 챙겨갈 것을 구분하는 작업들이 이어졌다. 한 가족이 10년 넘게 오래 머물렀던 작은 집에는 구석구석에서 무수히 많은 잡동사니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출처와 활용도를 알 수 없는 잡다한 물건들 사이에서 난 60색 크레파스와 재회하게 됐다.

     

처음 만났을 때, 나를 사로잡았던 찬란하고 영롱한 자태는 사라진 지 오래고 빛바랜 채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때 나는 새내기 대학생이었고, 크레파스를 쓸 나이를 훌쩍 지난 나이였다. 이게 여기 있었구나 싶어 피식하고 헛웃음이 나왔다. 60색이라는 고스펙을 가졌지만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도 못한 슬픈 크레파스. 우리 가족은 물론이고 주변에도 초등학생은 없었고, 또 있다 하더라도 요즘 초등학생들에게는 외면받기 딱 좋은 유물 같은 자태였다. 결국 60색 크레파스는 종량제 쓰레기봉투로 직행했다. 9살 소녀의 가슴을 뛰게 했던 60색 크레파스는 그렇게 쓸쓸히 인생을 마감했다.

     

인생은 역시 타이밍이구나

     

전성기 한 번 누리지 못하고 버려지는 크레파스를 보며 생각했다. 세상에 태어나 제때 제대로 쓰이지도 못하고 삶을 마감하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스포트라이트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혹시 나도 “그때”를 몰라 나의 전성기를 놓쳐 버리는 건 아닐까? 많은 질문들이 나를 괴롭혔다.

     

사람에게도 다 ‘때’가 있다. 그 ‘좋은 때‘를 알아차리는 방법은 오직 실패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때‘를 놓친 후회의 경험들이 쌓이면, ’ 좋은 때‘를 알아보는 눈썰미를 갖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때는 늘 ’ 지금’이다. 좀 더 완벽한 때를 기다리다가 놓쳐 버린 것들이 많다. 9살 때의 60색 크레파스가 그랬고, 17살의 첫사랑이 그랬고, 28살의 이직 기회가 그랬다. 더 좋은 때를 기다리며 다음을 기약했지만, 내 인생에서 그만큼 좋은 기회는 오직 그때뿐이었다. 완벽한 때란 없다. 모든 선택은 후회를 남긴다. 그저 덜 후회하는 때만 있는 것이다.

     


언제 올지 안 올지 모를 막연한 미래의 행복을 위해 미루는 일, 참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내 앞에 물냉면이 놓이면 맨 위에 다소곳하게 올라간 달걀 반쪽부터 먹기 시작했다. 좋은 건 나중으로 미뤘던 습관을 고치기 위한 작은 도전이었다. 물냉면 먹을 때 달걀을 먼저 먹으면 위벽 보호가 좋다는 거창한 의학적 효능은 후에야 알았다. 우선 그렇게 차근차근 불확실한 미래보다 지금에 집중했다.

     

어쩌면 내년 단풍이 더 예쁠 수 있다. 하지만 그때 내가 단풍을 보러 갈 여유와 시간이 될지 결코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올해 단풍을 보러 간다.

     

어쩌면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보다 다른 완벽한 누군가가 나와 더 잘 맞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그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지금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어쩌면 마흔 중반쯤에는 부모님을 유럽 5성급 호텔에 묵게 해드릴 경제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확실한 건 그때 부모님이 유럽을 가실만큼 체력이 정정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그래서 하루라도 더 건강하시고 거동 편하실 때 가까운 곳으로 자주 여행을 떠난다. 사소한 즐거움들로 가득 찬 시간을 함께 나누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알았기 때문이다.

     

더 큰 성공을 하면 더 큰 당연히 따라올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작은 성공이 주는 작은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큰 성공에 만족하지도 않는다. 왜냐 하면 그 성공보다 더 큰 성공이라는 다음 목표에 갇혀 버리기 때문이다.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더군다나 ‘좋은 때’라는 녀석은 훨씬 더 까다롭다. ‘정말 좋은 때’라는 유니콘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생각하는 모든 것이 완벽한 때는 결코 오지 않는다. 가장 좋은 때는 그저 바로 ‘지금‘일 뿐이다.  혹시 내가 성급하지 않을까? 다음이 더 좋은 기회가 아닐까? 조바심이 나고 헷갈릴 때는 우리 조상님들의 지혜가 응축된 그 말을 기억하자.


"아끼다 똥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전공과 직업에 대한 소소한 오지랖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