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간사이 여행 중 갔던 두 번의 뷔페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뷔페를 좋아하는 사람과 뷔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 나는 지극히 전자에 속한다. 다양한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뷔페 본연의 취지를 적극 이용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여행에서 한 번쯤 빼놓지 않고 들르는 중요한 먹부림 코스 중 하나가 바로 뷔페다. 미리 계획해 두고 간 곳은 아니지만 이번 간사이 여행에서는 운 좋게 개성 있는 두 곳의 뷔페를 맛볼 수 있었다.
이제는 도떼기시장이 된 아라시야마를 조금이라도 한적할 때 누리고 싶어, 이른 새벽부터 서두른 탓이었을까? 오전 10시, 우리는 아라시야마와 헤어질 준비를 했다. 보통의 여행자라면 이제 여행을 시작해도 무방한 시간이지만 우린 이미 오전 코스를 마무리한 것이다. 서서히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아라시야마를 뒤로 하고 우리는 무작정 교토역행 버스를 탔다. 오후 일정에 딱히 계획이 없던 터라 동행과 어디를 갈까? 잠시 고민을 했다. 그러다 지난 여행 때 인상 깊었던 오하라 쪽으로 마음을 좁혔다. 교토에 반나절밖에 머무르지 않았던 지인에게는 처음이었지만 나는 오하라에 가는 게 두 번째였다. 지난번 처음 오하라에서 준 감동을 잊지 못해, 교토역에서 부지런히 버스를 갈아 타고 오하라에 도착했다. 점심때가 살짝 지났기 때문에 우선 밥을 먹을 만한 곳을 찾았다. 오하라로 오는 도중 버스 안에서 몇 개의 음식점을 물색해 두었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1순위였던 Kirin (来隣)으로 향했다.
먼저 다녀간 선배 여행자들의 말대로 음식점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을 논길을 건너 작은 오솔길을 지나면 거짓말처럼 기린 카페가 나온다. 오래된 허름한 단층 나무 건물을 보니 왜인지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떠올랐다. 제철 채소를 이용한 요리를 주로 내놓는다는 사전 정보 때문일 것이다. 카페 문을 여는 순간 이 공기, 이 햇살, 이 냄새, 이 분위기는 나를 그대로 영화 <리틀 포레스트> 안으로 데려다 놓았다.
이곳의 대표 메뉴는 색색깔 아기자기하게 만든 오니기리(일본식 주먹밥)와 매일 메일 달라지는 <오늘의 스페셜 런치>였다. 오니기리는 한국사람 입맛에 호불호가 갈리기 쉽다 하여, 나와 동행은 <오늘의 스페셜 런치>를 주문했다. 직원 분께서 안내하시기를 오늘의 메뉴는 타코 라이스라 했다. 이곳에서는 메인 메뉴를 주문하면 오하라에서 생산된 채소를 이용한 뷔페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분지 지형인 오하라는 물이 맑고, 기후가 서늘해 채소가 맛있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주문하기 무섭게 곧장 뷔페가 차려져 있는 테이블로 갔다. 먼저 눈으로 스캔하고 맛만 볼 정도로 조금씩 접시 위에 담았다. 단호박, 고구마, 토마토, 양상추, 오이, 감자, 미즈나(한국명 경수채, 겨자과 일본 야채) 등등 온통 푸성귀 천지였다. 고기를 좋아하는 만큼이나 채소를 좋아하는 나에게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보통 일본에 가면 한국만큼 채소를 먹기 쉽지 않다. 사이드로 나오는 양배추 샐러드나 작은 접시에 나오는 절임 채소가 전부다. 간 또한 내 입맛에는 짜거나 달거나 느끼한 것들이 많았다. 보통의 일본 음식을 먹으며 느꼈던 갈증이 완벽하게 해소하게 해 준 음식이 바로 Kirin (来隣)의 음식이었다.
자극적인 양념 없이, 채소 본연의 맛을 살린 메뉴들이 가득했다. 각 채소의 맛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서 퍼 담고 또 퍼 담았다. 그중에서도 피망에 된장 양념을 채워 넣은 메뉴는 단연 베스트였다. 용량을 다해 먹었는데도 채소 위주의 식단이라 그런지 죄책감도 덜했다. 무엇보다 오하라를 한 바퀴 돌고 나면 속도 가벼워 질만큼 소화시키는데도 문제가 없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하나의 공간으로 압축해 놓았다면 아마 Kirin (来隣)의 모습이 아닐까? 악의 없고, 자연에 가까운 착한 맛이 보고 싶어 질 때, 오하라의 작은 카페, Kirin에 가고 싶다.
Kirin (来隣)
京都府 京都市左京区 大原来迎院町 114
이번 여행을 준비하기 전까지,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지명이 있다. 바로 와카야마. 수차례 간사이를 오갔는데도 오사카, 교토, 고베, 나라, 우지 정도만 알았지 그 외의 도시에 대해 무지했다. JR 간사이 와이드 패스로 여행을 하면서 이 패스를 이용해 최대한 멀리 갈 수 있는 도시를 찾다가 와카야마를 알게 되었다. 앞서 썼던대로 고양이 역장님을 만나기 위해 와카야마 역에서 이어지는 기시 역에서 오전 시간을 보내고, 점심이 되기 전 다시 와카야마 역으로 돌아왔다. 와카야마 시내 구경을 하기 전 점심을 먹어야 했다. 고베 하면 고베규, 사누키 하면 우동처럼 와카야마 하면 딱히 떠오르는 음식은 없었다. 구글맵을 뒤지다가 와카야마성 뷰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곳을 찾아냈다.
구글 지도에 의지해 해당 주소의 건물을 찾아보니 시청 건물이었다. 마침 일요일이라 정문은 닫혀 있었고, 친절한 할머니 덕분에 뒤쪽 작은 문을 통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14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모든 불이 꺼진 휴일의 어두컴컴한 시청 건물 내부에 밝은 조명이 켜진 공간이 보인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기분이다. 조심스레 두꺼운 철문을 열고 들어가니 널따란 뷔페식당이 나온다. 다른 차원의 세계로 들어간 만화 주인공이 된 것처럼 기대감과 설렘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곳엔 카메라를 덕지덕지 달고 있거나, 애써 신경 쓴 옷차림의 관광객들은 없었다. 그저 이제 막 점심 식사를 시작하는 동네 주민들로 북적였다. 오전 운동을 마치고 온 듯 츄리닝 차림인 할아버지, 근처의 시장에서 장을 보고 온 듯 각종 반찬거리가 가득한 장바구니를 든 아주머니, 가벼운 옷차림으로 손자, 할머니, 부부가 함께 한 3대 가족 등 꾸밈없고 수수한 사람들이 가득했다. 우리도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운 좋게 와카야마 성이 바로 보이는 창가 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곤 뷔페의 음식들을 훑었다.
앞서 말한 기린 카페(Kirin Cafe)의 음식이 영화 속 음식 같았다면, 14층 농원(十四階農園)의 음식은 가정식 백반에 가까웠다. 가라아게(일본식 닭튀김), 생선구이, 크로켓, 함박스테이크, 치킨가스 같은 육덕진 메뉴들도 있었고, 캐비지 롤, 김밥, 달걀찜, 크로켓 같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도 있었다. 각종 샐러드와 수프, 잡곡밥, 카레, 중화풍 라멘까지 평범한 일본 사람들의 대중적인 가정식을 한 번에 맛볼 수 있었다. 게다가 고사리 떡, 푸딩, 각종 케이크와 아이스크림, 커피, 주스 등 후식까지 마음껏 선택할 수 있었다. 물론 시판 제품을 이용한 것도 있겠지만 이곳에서 직접 만들었음직한 요리들도 상당수 있었다. 특별히 맛있다라기 보다 양과 종류에서 충분히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와카야마 성을 보면서 느긋하게 즐기는 식사는 단연 최고였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시 와카야마에 간다면 꼭 한 번 들르고 싶은 곳이 생겼다는 생각에 마음이 든든해졌다. 배와 마음 모두 든든하게 채운 우리는 다음 여행지로 발길을 재촉했다.
十四階農園
和歌山県和歌山市七番丁23 和歌山市役所 14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