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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Feb 25. 2019

메뉴 추천 부탁드립니다

낯선 음식점을 방문한 여행자를 위한 마법 같은 그 한마디  



2019년 새해가 되자마자 7박 8일 동안 일본 남부 가고시마에 다녀왔다. 제주도에 준하는 가까운 거리, 저렴한 비행기 티켓, 온화한 날씨, 곳곳에 늘어선 크로 작은 온천들로 한국 인들에게 가족여행, 골프여행, 효도 여행지로 유명한 곳이다.

     

가기 전, 여행지 결정하고 일정을 짜기 위해 자료를 찾을 때, 대부분의 후기들은 2박 3일의 일정이다. 길어야 근거리의 미야자키까지 묶어 4박 5일 일정 정도가 간혹 눈에 띌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박 8일이라는 긴 여행 일정을 짠 것은 이번 여행 메이트는 부모님이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처럼 빠릿빠릿하고 속도감 있는 여행을 하기엔 더디게 흘러가는 몸의 시계에 맞춘 결과다.

     

이번 여행은 막내딸과 함께 하는 겨울 방학을 겸한 여행이었다. 1일 1 온천이 핵심 콘셉트였고, 마지막 날 료칸에 예산의 1/3을 올인했기 때문에 나머지 날들은 줄일 수 있는 한 줄여야 했다. 그래서 숙소는 에어비앤비였고, 끼니는 마트에서 장을 봐서 아침, 저녁을 해 먹었다. 으르신(?)들을 모시고 낯선 땅을 다녀본 결과, 적절한 한식 투입은 여행 전체의 만족도를 높여 준다. 때문에 하루에 딱 한 번 먹게 되는 현지식, 점심 식사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예전처럼 꼼꼼히 준비하진 않았다. 다만 여행지마다 갈만한 곳 몇 군데를 구글맵에 체크해 둘 뿐이었다. 든든히 아침을 먹고 오전에 여행지 한 곳을 둘러보고 점심 식사 때가 되면 구글맵에 체크 해근 둔 근처 식당을 찾아간다. 그리곤 긴 고민을 하지 않고 주문받는 직원에게 마법 같은 그 말을 말한다.

     

“오스스메 오네가이시마스” (おすすめ おねがいします / 추천 부탁합니다)

     

[ 오스스메 신공 ]을 쓰게 된 건 한국의 블로거들이 다녀간 후 이곳이 일본인지, 홍대인지, 명동인지 모를 정도로 한국 여행객 판이된 음식점에 실망을 한 이후부터다. 물론 전부는 아니겠지만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음식점들은 그곳을 찾아오는 관광객 손님들을 위한 맞춤 서비스를 하게 마련이다. 현지어만 가득한 메뉴판에 외국어가 함께 표기되고, 관광객들의 입맛에 맞춰 맛도 분위기도 변하게 된다. 난 적어도 명동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굳이 비행기 타고 가서 먹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돈과 시간을 들여가는 곳에서 조금 더 현지의 맛과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관광객 친화적이지 않은 곳을 찾아가고 그곳에는 늘 현지어만 가득한 메뉴판이 날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현지어 까막눈인 내가 택할 수 있는 것이 바로 [ 오스스메 신공 ]이다. 살짝 웃으며 이야기한다.

     

“니혼고 와까리마셍. 오스스메 오네가이시마스”  

(日本語わかりません おすすめ おねがいします / 일본어 못해요 추천 부탁합니다)

     

그러면 직원 중 10명이면 10명 다 이 음식점에서 제일 자신 있는 음식을 추천해주기 마련이다. 내 입맛에 맞으면 럭키인 거고 맞지 않으면 “현지인들이 좋아하는 맛은 이런 거구나 “ 체험에 의의를 두고 돌아서면 된다.

     

이번 가고시마 여행 중 [ 오스스메 신공 ]으로 성공한 음식점 몇 곳이 있다. 이 음식점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서민적인 맛과 합리적인 가격! 그리고 꾸미지 않은 서민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이다. 굳이 이곳들을 찾아간다면 분명 실망할 위험이 크다. 가고시마를 여행하다 마침 식사 때가 되었는데 이 음식점들을 지나게 되면 한 번쯤 가볼만한 곳들을 소개한다.

 

가고시마에서의 첫 식사, 사츠마지(さつま路)



가고시마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공항 내 코인 라커에 짐을 던져두고 제일 처음 도착한 곳은 기리시마 온천 마을이다. 공항에서 시내버스로 30분 정도 달려 마루오(丸尾) 버스정류장에 내렸다. 곳곳에서 하얀 온천의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걸 보니 온천마을이 왔다는 걸 실감했다. 이곳은 앞서 선배 여행자들의 말대로 큰 기대를 하고 갔다가는 큰 실망할 만큼 소박한 온천 마을이다. 버스정류장 바로 앞의 온천 시장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료칸과 온천들이 늘어서 있다.    

     

버스로 이동하는 동안 구글맵으로 점심을 먹을 만한 근처 식당을 검색했다. 1순위였던 가고시마의 농산물을 사용한다는 야끼니꾸 집은 마침 휴일이었다. 2순위로 눈에 뜨인 가고시마 향토 요리 식당은 11시 30분에 문을 연다. 둘러보면 5분도 안 걸릴 온천시장에서 온천수로 익힌 옥수수와 고구마도 사 먹고 족욕도 했다. 도보 10분 거리의 폭포를 둘러봤는데도 아직 점심 식사 때가 되지 않았다. 인천에서 오전 6시 50분 가고시마행 비행기를 탔으니 오전이 한없이 여유로웠다. 소박한 동네를 산책하다 보니 어느덧 점심식사 때가 되었다.

     

11시 20분쯤 사츠마지(さつま路) 식당 앞으로 향했다. 온천이 넘쳐나는 동네라 그런가? 작은 음식점 앞에도 작은 족욕탕이 마련되어 있다. 기다리는 손님들을 위한 배려일 것이다. 손을 살짝 넣어 물 온도를 체크해 보니 유황냄새와 함께 뜨끈한 물이 느껴진다. 제대로 된 온천이었다. 식사 후 예정이었던 첫 온천에 대한 기대감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11시 30분. 영업 시작 시간이 되자 직원분이 문을 열고 나와 손님을 안내했다. 우리 가족은 첫 번째로 입장했다. 깔끔한 외부와 달리 내부는 어두웠고 오래된 세월의 흔적들이 켜켜이 내려앉은 모양새였다. 한 켠에는 음소거된 티브이에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다다미로 된 좌식 테이블을 둘러싼 벽에는 주류 회사에서 배포한 듯한 일본 전통 의상을 입은 여성이 담긴 빈티지한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주방 입구에는 쇼케이스에 각종 해산물들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다.

     

자리에 앉으니 두꺼운 도자기 컵에 뜨거운 차와 함께 메뉴판을 건네준다. 몇 개의 사진과 함께 오직 일본어만 가득한 메뉴판을 보니 아찔해진다. 손님이 메뉴를 고를 시간을 주기 위해 돌아서려는 직원분을 붙잡고 물어봤다.

     

“니혼고 와까리마셍. 오스스메 오네가이시마스”  

(日本語わかりません おすすめ おねがいします / 일본어 못해요 추천 부탁합니다)

     

직원은 싱긋 웃으며 몇 개의 메뉴를 추천해 주었다. 긴 설명도 함께 해주었지만 일알못인 나는 조용히 끄덕이다 촉이 오는 메뉴를 택했다. 텐푸라 정식 1개와 흑돼지 조림 정식 1개, 샛줄멸 회가 들어간 정식 1개. 이렇게 3가지 메뉴를 주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테이블 위에 3개의 메뉴가 차려졌다.

     


메인 메뉴를 제외하고 밥과 반찬은 같은 구성이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밥과 구수한 된장국에 곁들여 나온 문어 초회, 다시마조림은 입맛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내가 몫으로 시킨 덴푸라 정식은 튀김이었음에도 채소는 채소대로 새우는 새우대로 재료 자체의 향과 맛이 살아 있었다. 첫 손님이어서 그런지 깨끗한 기름에 튀긴 덕인지 잡내 하나 없었고, 튀김옷은 더없이 바삭했다. 가고시마의 대표 요리라는 흑돼지 조림과 샛줄멸회가 들어 있는 정식은 부모님 몫이었다. 치아가 별로 좋지 않은 아빠님이 드시기에 무리 없을 만큼 푹 졸여져 살은 부슬부슬했지만, 물렁뼈는 엄마께 양보(?)하셨다. 된장과 간장이 뒤섞인 듯 달달 짭조름한 흑돼지 조림은 그 후 몇 번 더 드셨지만, 이곳에서 드신 흑돼지 조림이 최고라고 하셨다. 회를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니라 샛줄멸회는 맛보지 못했지만, 엄마는 좀 비리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비린맛도 없고 쫄깃하고 신선했다고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맛이 어땠나? 부모님께 소감을 여쭤봤다. 엄마는 이미 일본 여행 경험이 있었기에 그다지 걱정이 되지 않았다. 일본 여행이 처음인 아빠의 평이 궁금했다.

     

“뭐 나쁘지 않네...”

     

음식에 관한 칭찬이 인색한 편인 아빠에겐 비교적 호평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 7박 8일 간 식사 때마다 하게 될 고민의 무게가 한 결 가벼워졌다. 시작이 좋다. [ 오스스메 신공 ] 덕분에 일본 음식에 대한 기분 좋은 첫인상을 얻게 되었다.       

        

さつま路

일본 〒899-6603 Kagoshima-ken, Kirishima-shi, Makizonochō Takachiho, 3885

  +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사츠마지를 검색해봤는데 가고시마 시내 큰 음식점만 후기가 있었다. 기리시마의 사츠마지가 그곳의 분점인지, 아니면 동명의 식당인지 일알못은 알 수 없다.




으르신들의 성지, 소바차야 후키아게안 덴몬칸점
そば茶屋 吹上庵 天文館店



가고시마 시내 최대의 번화가인 덴몬칸 한가운데 위치해 있는 소바집이다. 남규슈 일대에 15개의 체인점을 가지고 있는 소바 전문점이라고 한다. (가고시마 역 아뮤플라자 식당가나 가고시마 시내 곳곳에 지점이 있다)

     

우리 가족이 도착한 것은 1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 약 10분 정도의 대기 시간을 보낸 후에야 식당 안으로 입성할 수 있었다. 내부는 생각보다 넓었다. 커다란 일본식 화로를 둘러 테이블이 있고 그 외에는 일반적이 좌석들로 빼곡했다. 그 좌석들은 대부분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들이 자리 잡고 계셨다. 손님들의 평균 나이는 아마 65세는 훌쩍 넘지 않았을까? 노년의 손님들로 가득한 음식점에 들어서니 마음이 편해졌다. 지난 여행의 경험들을 볼 때, 여행자들로 붐비는 식당 보다, 현지인 그중에서도 어르신들이 많은 식당은 실패할 확률이 낮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이 선택하는 식당은 세련된 맛과 서비스는 없지만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고집스러운 현지의 맛을 볼 수 있다.

     

손님들의 연령대만큼, 직원 분들의 연령대도 높았다. 우리 테이블을 담당했던 직원분 역시 엄마 또래쯤으로 보였다. 빠른 손놀림으로 뜨거운 차와 메뉴판을 주시고 잰걸음으로 사라지시는 그분을 보니 이곳에서 일한 연륜과 경력이 느껴졌다. 메뉴판을 붙잡고 한참을 씨름하다 아빠는 소바 정식, 엄마는 튀김 우동을 택했다. 고만고만한 메뉴들 사이 도저히 결정을 못한 나는 직원 분께 추천 메뉴를 부탁드렸다. 그분의 선택은 <우동나베>였다. 면은 우동면과 메밀면 중 선택할 수 있는데 나는 메밀면을 택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각 테이블마다 놓인 커다란 도자기 그릇 안의 하얀 무절임을 꺼내 접시에 담았다. 가고시마의 특산물 중 하나인 무로 만든 츠게모노였다. 짜지도 달지도 않은 슴슴함이 매력이었다. 짜지 않다 보니 손바닥만 한 작은 접시에 담긴 무절임은 채우기 무섭게 사라졌다. 그렇게 몇 접시를 먹었을까? 아까 그 직원 분이 환한 얼굴로 커다란 쟁반을 들고 우리 테이블로 돌아왔다.

     

펄펄 끓는 큼지막한 도기 냄비에 우동이 담겨 나왔다. 표고, 반숙 달걀, 어묵, 새우튀김, 찰떡 등이 푸짐하게 들어 있었다. 받자마자 수저로 국물을 떠서 한 모금 마셨다. 과하지 않은 짭짤 달달한 국물 안에 감칠맛이 가득했다. 메밀면이라 우동면보다 얇아 뚝뚝 끊겼지만 얇은 만큼 면 안에 국물이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 뜨거운 국물을 마시고, 후루룩 면을 먹었다. 가끔씩 떡이며, 새우튀김이며 고명을 먹어 입을 환기시켰다. 가끔씩 츠게모노로 입의 뜨거운 열기를 식혔다.

     

제주도보다 남쪽이라 따뜻하겠지 하고 가고시마를 얕잡아 본 탓에 가져온 옷들은 얇은 것들뿐이었다. 그 얇은 옷들을 겹겹이 껴입어도 파고드는 겨울의 냉기를 피할 수 없었다. 몸 곳곳에 스며있는 찬 기운이 뜨끈한 우동 나베 한 그릇으로 눈 녹듯 사라졌다. 뜨거워 혀가 델까? 후후 불어 가며 먹다 보니 어느새 바닥이 보였다.

     

하... 하얗게 불태웠어


우동나베 한 그릇을 말끔히 비우고 나니 난 마치 치열한 경기를 마친 선수처럼, 거친 숨을 내뱉으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그렇고 그런 음식들 사이 헤매고 있는 반도에서 온 여행객에게 우동나베라는 따뜻한 위로와 응원을 건넨 직원 분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吹上庵天文館店


일본, 〒892-0842 Kagoshima-ken, Kagoshima-shi, Higashisengokuchō,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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