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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May 16. 2017

<야매 축덕의 라리가 겉핥기 탐방> 2탄

봤어 내가 봤어 우리 형 뛰는 거…



두근두근 떨리는 가슴을 안고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안으로 입장한다. 거대한 관람객 무리에 휩싸여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흘러간다. 세계적인 구단의 경기이니만큼 보안이 엄청 철저할 줄 알았는데 티켓 검사 두 번, 가방 검사 한 번?? 정체구간인이 부분을 지나고 나면 한 결 수훨 하다. 스페인어는 1도 모르니 중간중간 있는 관계자들에게 물어 물어 내 자리가 있는 게이트 안으로 들어간다.


안으로 들어가니 내가 VR 세계에 와 있는 건 아닐까?라는 착각에 빠질 듯 장대한 광경이 펼쳐진다. 주말 새벽이면 졸린 눈을 부여잡고 지켜보았던 그곳. 내 생애 쌩눈으로 볼 수 있을까? 상상도 못 하였던 그곳! 그저 와~~ 세상에~~ 연신 감탄사가 방언처럼 터져 나온다. 가난한 여행자는 겨우 80유로짜리 3층 구석의 자리를 얻었을 뿐인데 한눈에 경기장이다 들어온다. (물론 선수들의 얼굴은 코딱지만 하게 보이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 구역엔 외국인이라고는 나와 일행뿐. 게다가 여자는 아빠 따라온 여자 꼬맹이 빼곤 없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뜨내기손님들도 아니다. 자리에 착석하기 까지서로 악수며 인사를 하기 바쁘다. 아마도 연간 회원권을 가진 축덕들 이리라. 그러다 보니 이 낯선 이방인의 등장에 신기해하는 눈빛이 가득하다. 털북숭이 마드리드 아저씨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착석했다.


자리에 앉아 경기가 시작되기까지 엄청 사진을 찍어댔다. 평소 사진 찍는 걸 그다지 즐기지 않는 편인데 여기서만큼은 연신 셀카를 찍어 댔다. 동양 여자애들 둘이 와서 미친 듯이 사진을 찍고 있는 게 웃겼는지 주변 아저씨들이 하나 둘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우리 셀카 안으로 들어왔다. 이 상황이 당황스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해서 “너넨 어디서 왔니?” “왜이 경기를 보러 왔니?” “누굴 응원하는 거야?” 더듬더듬 대화를 이어간다. 시즌권을 끊어 놓고 경기 때마다 오는 이 아저씨들을 표현하자면 흔하긴 하지만 딱 이 말이 들어맞을 듯싶다. “레알 마드리드를 내 몸처럼 사랑하는 사람들” 하루 일과는 레알 TV 보며 잠들고, 일주일의 피로는 경기를 보며 풀고, 1년 스케줄은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그야말로 레알 때문에 숨 쉬고 레알 때문에 죽는 척할 수도 있는 팬들!! 게다가 경기 보면서 먹으라고 군것질 거리를 건네준다. 이 순간, 이 공간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이 털북숭이 스페인 아저씨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구나. 실로 놀라웠다.


그런데 진짜 놀라운 건, 우리의 공무원 형! 호날두의 플레이를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피치 위에 선수들이 올라와 몸을 풀기 시작할 때, 다들 약속이나 한 듯 미어캣이 되어 이리저리 선수들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인다.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호날두다. 그의 터치 하나 슛 하나에 사진 기자들의 플래시는 쉴 새 없이 터지고, 팬들의 탄성이 터져 나온다. 나도 그 안에 섞여 그의 발끝, 표정, 근육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관찰했다. 물론 3층이라 잘 안보이니까 중계 전광판 화면을 집중했다. 매 경기 이런 뜨거운 관심과 응원을 받으며 뛰는 기분은 어떨까? 잠시 그라운드 위의 선수가 되어 상상해 봤다. 상상만 해도 짜릿하고 황홀하다. 그래서 수많은 축구 꿈나무들이 라리가에서 뛰는 꿈을 꾸겠구나…

경기 시간이 다가올수록 구장 내의 분위기는 후끈 달아오른다. 꼬맹이 손자부터 백발 할아버지까지 한 목소리로 부르는 응원가… 그리고 팔이 떨어져 나가도록 흔드는 깃발이며 머플러며 ‘레알 마드리드 FC’가 적힌 모든 것들이 거대한 파도처럼 출렁이는 풍경! 마치 영화 <레알> 속의 한 복판에 내가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휘슬이 울리고, 경기는 시작되었다. 빅경기가 아니라 그야말로 방관의 자세로 관람을 하겠다 마음먹었는데, 이게 웬걸~ 열혈 원조 팬들 사이에 있으니 없던 얕았던 덕심이 급충만 해진다. 스페인어라 그 뜻은 정확히 모르지만 욕은 분명하겠구나 싶은 뉘앙스의 단어들을 내뱉는 뜨거운 형제들을 보니 이 땅이 괜히 ‘열정의 나라’로 불리는 게 아니구나 싶다. 보통 사람은 TV에서 보이는 게 실물보다 1.5배 뚱뚱하게 나온다고 하는데, 시차 없이 쌩눈으로 본 라리가의 경기는 과장 많이 보태서 화면으로 볼 때 보다 150배 정도 빠르게 느껴졌다. 자로 잰 듯 틈이 없는 패스, 빛의 속도인 공수 전환, 게다가 빛나는 별들까지… 축구 게임을 하지는 않지만 축구 게임에서나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플레이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게다가 내 눈앞에 호날두가 뛰고 있다고! 베일이 뛰고 있다고!! 감독 지단이 지휘하고 있다고!!! 현대 축구 역사에 있어 기점이 될 인물들을 한눈에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또 감사한 일이다.


뜨거웠던 전후반이 끝나고 경기는 레알 마드리드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비록 공무원, 우리 형이 골을 넣지 못한 흔치(?) 않은 경기지만 그래도 괜찮다. 내 인생에 두 번은 없을 레알 마드리드 경기 직관을 했으니 여한이 없다. 호날두가 뛰는 경기를 봤으니 그걸로 됐다. 호날두와 베일이 하이파이브를 하는 걸 봤으니 그걸로 됐다. 지단이 웃었으니 그걸로 된 거다. 경기장을 빠져나오니 비는 부슬부슬 내린다. 뜨거운 열기를 식히라는 하늘의 뜻이었을 텐데… 열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열혈 팬들은 도로를 가득 메우고 미쳐 다 부르지 못한 응원가를 목청이 터져라 부른다. 그렇게  승리에 취한 팬들의 흥분과 환호가 좀처럼 식지 않았던 마드리드의 밤은 깊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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