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검열을 부르는 마법의 단어들
한창때에 비해 많이 내려놓긴 했지만 ‘개복치형 인간’이라는 나의 천성은 변하지 않는다. 예민 지수가 100에서 한 60 정도로 내려왔을 뿐, 여전히 크고 작은 외부의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남들의 시선이나 평가에 의연해지기 위해 열심히 단련 중이다. 또 세상에는 다양한 생각과 의견이 존재한다고 머릿속에 의식적으로 주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에 가시가 걸린 듯, 마음에 걸려 자꾸만 나를 찌르는 말들이 있다. 그 단어들을 들을 때마다 스스로 혹독한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
언제부터 이 말이 통용되었는지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개인적으로는 2000년대 싸이월드 ‘갬성’이 한창 유행하던 시절이 지나간 후부터 심심치 않게 들렸다고 느낀다. 온라인에 박제된 감성의 흑역사를 마주할 때 이불 킥할 것 같은 기분을 [오. 글. 거. 린. 다]라는 말로 표현하곤 했다. 먹고 살기가 팍팍해져서 그런 걸까?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런 걸까? 그 전까지만 해도 ‘낭만’으로 분류되던 표현과 말들이 ‘오글’라는 단어로 헐값에 매도되고, 상대방의 말문을 막아 버렸다. 낭만을 사치로 여기는 시대는 '낭만' 대신 ‘무심한 듯 시크하게 ‘라는 단어를 낳았다. 최대한 이성적이고, 건조한 감정 표현이 세련된 것인 양 치켜세웠다.
시대의 흐름에 지극히 순종하는 난 ’ 오글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 지울 수 없는 흑역사를 만들지 않기 위해 감정을 배제하고 냉정하게 접근하고 표현했다. 이런 마인드 때문에 20대, 30대를 지나며 점점 더 감정이 딱딱해졌다. 말랑말랑해야 할 머릿속이 늘 경직됐고,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사람이 되었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게 되면 점점 뭐든 시큰둥해지고, 무덤덤해진다. 그런데 중년이 되기도 전에 이렇게 경직된 사람이 되면 노년의 나는 얼마나 꼬장꼬장한 할머니가 될까? 싶어 섬뜩했다. ’ 현명하고 귀여운 할머니‘가 되겠다는 나의 야심 찬 장래희망에 빨간 불이 켜졌다. 그제야 나도 누군가에게 ’오글거려 ‘라는 한마디 말로 생각의 팔다리를 자른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전부 무심하고 시크한 사람만 있다면 그곳은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는 감정의 사막일 뿐이다. 반사회적인 ’ 악’만 아니라면 굳이 시작부터 싹을 자를 필요는 없다. 좀 오글거리면 어떠랴? 뭐든 지나고 보면 유치하고 촌스럽게 마련이다.
얼마 전, 세대 간의 차이와 갈등에 대한 글을 브런치에 올린 적이 있다. 그 글들은 SNS를 타고 여기저기 공유되어 내가 가끔 가는 커뮤니티 게시판에 까지 등판했다. 예상치 못한 재회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내 머리 아파서 낳은 자식 같은 글을 전혀 다른 곳에서 만났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줄줄이 달린 댓글을 보다 잠시 머리가 멍했다.
필자가 꼰대네
그 커뮤니티의 주 활동층인 다수의 20대가 보기에 중년에 가까운 내 글이 꼰대의 허튼소리처럼 느껴졌나 보다.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나이가 어리거나 지위가 낮은 사람들에게 낡은 사고방식을 강요하며 시대착오적 설교를 늘어놓는 ‘꼰대질’ 그 자체였던 것이다. 해당 글에도 썼듯 20대 후배들에게 난 이미 충분히 ‘꼰대’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별다를 것 없는 꼰대 선배가 되기 싫어서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 일을 떠안아도 뭘 하든 난 기승전‘꼰대’가 됐다.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이 자신들보다 나이가 많으면 ‘꼰대’라고 통칭하며 귀를 닫아 버리고, 상대방의 생각의 팔과 다리를 잘라 버린다는 현실이 씁쓸할 뿐이다.
사람은 다 자기 경험의 한계에 갇히게 마련이다. 요즘 젊은 층 곁에 얼마나 많은 꼰대들이 존재하고 또 그 꼰대들 때문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지독한 꼰대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쓴 댓글에 짠함이 느껴졌다.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이 낳은 결과일 뿐이다. 청년들의 짐은 덜어주지는 못하겠지만, 짐은 더하지는 않도록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뭘 해도 난 꼰대겠지? 그래도 최악의 꼰대는 되지 말자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