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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Sep 06. 2019

나는 내가 둘이었으면 좋겠어

내가 나를 안아 줄 수 있게


 
십여 년 전, 우연히 본 다큐 속에서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신입 패션 디자이너가 했던 말은 꽤 오래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사회 초년병 시절, 일을 배운다는 이유로 내가 뭘 하는지, 왜 하는지도 모른 채 시간에 정신과 몸을 맡기고 흘러갈 때가 있다. 회사에서야 정신이 없어 내가 어떤 상태인지 가늠할 수 없었고, 깊은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와서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내 상태는 어떤지? 하루 종일 내팽개쳐둔 나와 마주하게 된다.


다큐 속 그녀 역시 하루 종일 먼지 가득한 원단 시장과 공장을 돌며 선배 디자이너들의 요구를 대신 전달하고 잡일을 처리했다. 자정이 다 되어서야 자신의 작고 허름한 자취방에 돌아온 병아리 디자이너는 멍하니 앉아 있다가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나는 내가 둘이었으면 좋겠어.
내가 나를 안아 줄 수 있게...



가라앉은 침전물처럼 한참을 웅크리고 앉아 있더니 자리를 털고 일어나 책상 위에 앉았다. 그리곤 언젠가 멋진 디자이너가 될 날을 꿈꾸며 펜을 들어 스케치를 했다. 솜씨 좋게 슥슥 그리더니 티셔츠 안에 들어갈 캐릭터 도안을 만들어 냈다. 똑같은 얼굴을 한 사람 둘이 긴팔로 서로를 껴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장면에서 다큐를 보던 나는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직종은 달랐지만 나도 그녀와 비슷한 또래였고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었다. 다큐 속 그녀가 나 같았고, 나도 그녀처럼 내가 애처롭고 안쓰러워 나를 꼭 안아주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초짜 시절. 뭐가 나의 일이고, 어디까지가 나의 몫인지 세심하게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었다. 선배들은 귀찮게 굴지 말고 눈치 있게 알아서 배우길 바랐다. 하지만 앞서서 하면 니맘대로 하냐고 혼을 내고, 안 하면 니 할 일도 모르냐며 혼을 냈다. 뭘 어쩌라는 건지... 서럽고 괴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그때의 난 어리석었다. 사회에서 인간미를 바라다니... 풋내기에 바보였다. 회사는 학교가 아닌데 내 코 닦아주길 바란 것이다. 각자 다 감당하기 버거운 일들이 쌓여 있는데, 선배고 후배고 없다. 사회는 그저 나 하나 살아남기에 급급한 각자도생의 현장일 뿐이다.  


그 사실을 까맣게 몰랐던 나는 사회생활 3개월 만에 내가 사회 부적응자가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내가 원해서 간 직종인데도 과연 이 길이 맞나? 끊임없이 나한테 물었다. 재능은 영 없어 보였고, 즐거움도, 보람도, 미래도, 그렇다고 페이도 어느 하나 날 만족시키는 건 없었다. 세상과 나는 물과 기름처럼 영원히 섞이지 못할 거 같은 어둡고 불안한 날들이 이어졌다. Go냐 Stop냐 사이에서 우물쭈물하는 하다가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괴로움이 쌓이면 습관이 되고, 또 무뎌진다. 그 사이 제법 일이 손에 익었고, 후배도 생기게 됐다.


사회 부적응자가 3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나름대로 ‘나를 안아 주는 방법’을 하나 둘 찾았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소화 능력이 좋을 때라, 한참 스트레스를 받으면 엄청 매운 짬뽕 한 그릇을 먹고 잠을 청했다. 짬뽕을 먹을 때는 혀를 태우는 듯한 매운맛 때문에 심각한 고민을 할 여유가 없다. 그렇게 배가 두둑해지면 어김없이 잠이 몰려온다. 1시간이든 한나절이든 자고 나면 이전보다 확실히 고민에서 멀어져 별게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때로는 없는 시간을 쪼개 밤 10시 건 11시 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동기들을 만났다. 고만고만한 머리라 뾰족한 해결방법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고민을 털어놓으며 “나만 ㅂㅅ이 아니구나”, “사람 사는 거 다 똑같구나”라며 서로서로 위로하고 위로받곤 했다. 스스로를 제일 홀대하던 내가 나를 대접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짬뽕이, 잠이, 그리고 동기들이 또 다른 내가 되어 괴로워하는 나를 따뜻하게 안아 주었다. 후배들이 줄줄이 딸린 지금도 몸과 마음이 괴로운 날이면 생각한다. 날 안아주고 쓰다듬는 건 뭘까? 근래에는 걷기와 글쓰기에 꽂혀 있다. 꾸준히 나를 위한 시간을 갖고 내 안의 연약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뭘 원하는지 귀 기울이는 시간을 갖는다.


언젠가 인터넷에 도는 짤을 하나 보고 빵 터진 적이 있다. <5초 만에 자신의 평소 식단이 정상인지 비정상인지 판단하는 법>에 혹해 클릭했더니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오늘 내가 먹은 식단을 최애가 먹었다고 생각해 보라는 말... 나에게는 그 말이 나의 최애는 ‘나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말처럼 들렸다.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나 자신을 대접하는 일에 소홀했다. 소홀을 넘어 무신경한 적도 많았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 서투를 수밖에 없다. 서투르고 모자란 나도 나고, 언젠가 성장할 미래의 나도 나다. 나의 오늘을 인정하고, 부족한 점은 채우고, 지쳐 있으면 뜨거운 응원을 건 낼 사람도 나다. 결국 나의 짱팬은 내가 되어야 한다.




그때 그 병아리 디자이너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그녀가 바라던 대로 멋진 디자이너가 되었을까? 아님, 일찌감치 다른 길로 들어섰을까? 뭐가 됐든 그녀가 원하던 삶을 살길 바랄 뿐이다. 당신의 한마디 덕분에 나는 영원한 짱팬, 나를 가지게 되었으니. 이 자리를 통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고마워요.

당신의 날들이 원하는 만큼 빛나기를 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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