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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Sep 09. 2019

서른 살의 샤넬백

지금까지 무사히 살아온 자신을 위한 셀프 선물


이 시대의 여성에게 ‘서른’이란 무엇일까? 모든 것이 그렇지만 지나고 보면 별 거 아닌데, 지나기 전까지는 막연하고, 두렵고 또 궁금하다. 나의 서른도 마찬가지였다. 손에 쥔 건 없는데 여자 인생은 서른에 결판이 난다는 듯, 세상은 날 몰아붙였다.


그 무렵 제2의 사춘기를 겪는 듯 혼란스러워하던 또래 친구들은 각자 서른을 맞이하는 특별한 기념식을 거행했다. 누군가는 퇴사를 하고 긴 여행이나 어학연수를 떠났고, 누군가는 결혼을 했고, 또 누군가는 꾸역꾸역 다니던 회삿일을 정리하고 본가가 있는 지방으로 내려갔다. 각자 서른을 기점으로 또 다른 인생을 시작하는 듯했다.

  

여러 친구들 중 대기업에 다니던 A는 ‘샤넬백‘을 택했다. 집을 제외하면 인생 최대의 지출이었다. 평소, 명품에 관심이 있었던 친구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샤넬백이 어울릴 패션을 즐기는 친구도 아니었다. 혼수품 목록에나 있을 샤넬 2.55 모델을 택했는지 의아해 A에게 물었다. 그녀의 답은 의외로 심플했다.



그냥 무사히 서른까지 살아온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야


당시, 우리가 한참 서른을 상상할 때는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서른을 맞이하거나 지나가던 많은 ‘언니’들이 있었다.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브리짓’,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이’, 미드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 등등이 있었다. A는 그중 아마도 ‘캐리’의 영향을 받았을지 모를 일이다.


누군가의 선물이 아닌 내가 사는 ‘샤넬백’에는 여러 의미였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성공한 여성의 전리품이자, 자기만족의 대변이었다. 당시 대리쯤의 직책이었던 A. 그녀는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자신을 위한 격려의 ‘지름‘이자, 앞으로 이 샤넬백이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희망의 ’ 지름‘으로 샤넬백을 택했다.


그날 이후 1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우리는 수없이 만났지만 A가 샤넬백을 매고 나타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A는 대기업에 몸담고 있긴 해도 엔터테인먼트 파트라 옷차림이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었다. 그래서 늘 스니커즈의 청바지 차림이었고 어깨에는 에코백을 둘러매고 있었다. 어느 날 문득 서른 맞이 셀프 선물, 샤넬백이 떠올라 ‘그 행방'에 대해 물었다.


"샤넬백? 옷장에 곱게 잠자고 있지.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고,

샤넬백도 매 본 사람이 맨다고 샤넬백을 들고나갈 일이 없어.

이놈의 인생." 


어쩌다 중요한 자리에 샤넬백을 매고 나가려고 해도 어울릴 만한 옷이 없었고, 평범한 자리에 매고 나가기엔 샤넬백은 존재감이 너무 컸다. 그저 옷장 안에 박혀 한 두 번 꺼내 보며 자신의 서른 언저리를 돌아보는 추억템이 되었을 뿐이란다. 그렇다고 샤넬백을 산 걸 후회하진 않는다고 했다. 서른 무렵 샤넬백을 사지 않았다고 해도 그만한 돈은 뭘로 든 나갔을 테고, 샤넬백이라는 현물로 남았으니 괜찮다고 했다. 시간을 돌린다 해도, 샤넬백이 빛도 못 보고 옷장에 박혀 있는 상태를 안다 해도, 서른의 A는 똑같은 선택을 할 거라고 말했다. 서른의 샤넬백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오지 못했을 거라고 했다. A에게 샤넬백은 단순히 명품백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샤넬백’은 미래를 위한 삶의 원동력이었고, 기분 좋은 인생의 중간 성적표였다.



A에게 샤넬백이 있다면 나에게는 ‘여행’이 있다. 개미처럼 차근차근 푼돈을 모아 시간이 나면 부리나케 떠났다. 여권의 출입국 도장이 채 마르기도 전에 떠났다. 명품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명품 가방 수 없이 살 돈으로 참 여기저기 많이도 다녔다. 출장이 아니라면 비즈니스를 타본 적도 없고, 저가 항공사 비행기 좌석에 몸을 구겨가며 더 자주, 더 멀리 떠났다. 누군가는 그 나이 먹도록 제대로 된 명품 하나 없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명품 가방이 어울릴 옷도 없고, 명품 가방을 메고 나갈 중요한 자리도 별로 없는 사람이다. 대신 신상 명품을 얘기하는 것보다, 아직 사람들에게 덜 알려진 보석 같은 여행지에 대해 더 신나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다. 명품 가방은 없지만 여행지에서 쌓은 나름의 ‘명품 경험’이 있다.


성인이 된 후 가장 나에게 큰 영향을 끼친 것을 꼽으라면 단연 ‘여행’이다. 생각의 그릇도, 시야도 한없이 좁던 나를 바꾼 건 ‘여행’이었다. 여행을 통해 스스로를 칭찬하는 법, 처음 보는 타인과 격 없이 어울리는 법, 갑자기 생긴 문제 앞에 당황하지 않고 대처하는 법, 상대방의 호의를 의심 없이 그저 호의로 받아들이는 법 등등 삶의 진리와 인생 꿀팁을 수많은 여행을 통해 얻었다. 여행을 알기 전과 후, 분명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나 역시 A처럼 서른 언저리로 돌아간다고 해도 다시 ‘여행’을 택할 것이다. 나에게 ‘여행’은 미래로 향해 달려가기 위한 삶의 원동력이었고, 기분 좋은 인생의 중간 성적표였다.


누구나 삶의 원동력이 필요하다. A의 ‘샤넬백‘처럼, 나의 ‘여행’처럼 말이다. 삶의 원동력이 있었기에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을 꾹 참고 버틸 수 있었다.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일어나 지옥철에 몸을 싣고 회사로 향한다. 후배들에게 치이고, 선배들에게 까여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쭉 들이킨 후 놓을 뻔한 이성의 끈을 재빨리 붙잡는다. 도망치고 싶은 현실을 꾹 참고 견뎌야 한다. 그래야만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는 ‘여행’을 떠날 자금과 여유가 생긴다.


남들이 시키는 대로, 남들이 바라는 대로, 남들이 가라는 대로 목적도 없이 가다 보면 결국 ‘왜‘라는 원론적인 벽에 부딪히게 된다. 여행이란 삶의 원동력을 찾기 전, ’왜‘라는 벽에 부딪혔을 때 적지 않게 당황했다. 성적은 상위권은 아니어도 학교, 선생님, 부모님,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바라는 대로 어긋남 없이 살았는데 막상 부딪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난 우물 안 개구리였고, 세상 둘째가라면 서러운 쫄보였다. 그제야 남들이 원하는, 바라는 삶이 아닌 내 마음이 시키는 일들을 찾아 하기 시작했다. 부딪히고 깨지면서 나의 즐거움을 찾아갔다. 힘들고 괴로울 때, 언젠가 떠날 ’ 여행’이 나를 포기하지 않도록 이끌었다. 덕분에 난 이 자리에서 뭐라도 되는냥 거의 매일 여행에 관한 수다를 글로 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참 가혹하다.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는데도 나태 지옥에 빠지진 않을까?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을 한다. 이제는 좀 그 채찍을 저 멀리 던져 버릴 때도 됐다. 애처로운 당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꼭 묻고 싶다.

지금까지 무사히 살아온 자신을 위해 어떤 선물을 주었나요?
당신 삶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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