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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Oct 08. 2020

먹는 일엔 늘 진심인 편, 그런 내가 왜?

식욕부진 타파를 위한 몸부림을 가장한 다짐



이번 가을, 난 말(馬)이 되긴 글렀나 보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 계절이 왔는데 통 입맛이 없다. (라기엔 바로 직전의 글이 카레에 관한 내용이었다.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순간이라도 땡기는 음식이 생기면 메모해 뒀다가 식욕이 사라지기 전에 먹으려고 노력한다. 그렇게라도 ‘애써서’ 먹다 보면 잃어버린 입맛을 찾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보통 아침에 일어나 밥그릇에 밥을 1/3 정도 담는다. 냉장고에서 꺼낸 몇 가지 반찬을 곁들여 꾸역꾸역 씹는다. 맛을 느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딱 허기만 지울 정도의 양이다.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이때 먹지 않으면 아마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의식적으로라도 아침에 눈을 뜨면 목구멍으로 밥부터 밀어 넣는다. 잠을 털어낸 자리에 제정신이 채워지기 전에.

     

입맛을 잃어버린지는 꽤 됐다. 아마 본격 시작은 코로나 19 사태가 심각해진 후쯤으로 기억한다. 활동량은 줄어드는데 먹는 양은 그대로면 당연히 군살이 붙는다. 살이 찌는 걸 방지하기 위해 식이 조절을 하기 시작했다. 서서히 먹는 양이 줄었다. 영원히 꺼지지 않을 활화산 같던 식욕이 슬그머니 사그라졌다.


비슷한 시기에 코로나 19 여파로 일까지 마음처럼 풀리지 않았다. 또 동시에 책 출간을 준비하면서 난생처음 하는 할 일을 더듬더듬 해내야 했다. 그래서였을까? 구내염 수포들은 사라질 생각을 안 한다. 주인 허락도 없이 몇 달째 상주 중이다. 이 수포들 덕분에 뜨겁고, 맵고, 시고, 짠 음식은 더 멀리하게 됐다. 자극적인 음식을 제외하고 나니 먹을 게 별로 없었다. 그간 내가 얼마나 성깔 있는 음식들을 즐겨 먹었는지 그 입안 ‘불법 점거자’들 때문에 알게 됐다.      


먹는 일엔 늘 진심이었던 나. 잃어버린 입맛을 찾기 위해 최근에는 음식에 관한 영화나 드라마, 책을 자주 본다. (식도로 많은 양을 밀어 넣는 폭식 콘텐츠 제외) 원래도 음식 관련 콘텐츠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젠 목적이 한층 선명해졌다. 먹음직스럽게 보이기 위해 공들여 찍고, 고심해 만든 작품들을 보면 미동도 하지 않던 뇌와 위가 ‘자극‘을 받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데 의도와 달리 음식보다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에 눈과 마음이 머물렀다.      


화려한 프랑스 요리가 펼쳐질 줄 알았던 영화 <줄리 & 줄리아>. 이 영화에서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든든한 응원을 등에 업고 자신이 선택한 길을 뚜벅뚜벅 걸어갔던 두 시대의 여성, 줄리와 줄리아의 인생에 꽂혔다. 드라마 <심야식당> 시리즈에서는 인생의 쓰고, 짜고, 달고, 신맛을 가슴속에 하나씩 품고 사는 도쿄 사람들의 인생이 보였다. 어젯밤,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에세이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 떠나는 아내의 밥상을 차리는 남편의 부엌 일기>. 책 속에서는 암 투병 중인 아내를 위해 요리를 하며 써 내려간 남편의 메모 속에서 누구나 언젠가 맞이하게 될 끝, 그리고 떠나는 자와 남겨진 자가 만들어내는 삶의 그림자가 느껴졌다.      


어쩌면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배를 채울 음식이 아니라 인생의 방향을 알려줄 내비게이션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음식보다 그 음식을 만들고 먹는 사람들의 삶에 눈이 갔나 보다. 마치 가방을 사야겠다 마음먹으면, 세상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가방에만 눈이 가는 것처럼. 아직 내 인생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열심히 걸어가야 한다. 그런데 한 치 앞을 모르겠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한참 우왕좌왕 중이다.


인생을 한 그릇의 ‘밥’을 완성해가는 과정으로 치면 나는 어디쯤 와 있는 걸까? 쌀을 불리는 시간은 지난 거 같고, 아마 뜸 들이는 시간쯤 될까? 고슬고슬하게 알맞게 익은 밥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성급하게 뚜껑을 열면 설익고, 오래 놔두면 밥이 아닌 떡이 된다.


영화 속, 드라마 속, 책 속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어쩌면 이 ‘뜸 들이는 시간’도 기회일 수 있다. 속까지 제대로 익히려면 센 불이 필요한 게 아니다. 잔열로 수분이 밥알에 잘 스며들게 해야 한다. 삶의 온기가 식지 않도록 나를 따끈하게 그리고 살뜰히 보살펴야 한다.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것도 아니게 되니까. 머리를 무겁게 하는 고민은 멀찍이 미뤄두고, 몸부터 움직이기로 했다. 머리보다 몸이 단순해서 몸이 움직이면 마음은 따라오기 마련이니까.


내일은 밥공기에 밥을 원래 양보다 반 주걱 더 담아야겠다. 목으로 넘어가든 안 넘어가든. 이게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니. 그렇게 뭐든 차근차근 시도하면 언젠가 내가 원하는 뭔가에 닿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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