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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Oct 12. 2020

그 많던 저자 증정본은 어디로 갔을까?

저자 증정본 중 가장 멀리 떠난 책의 주인에 대한 이야기


지난 8월. 출간일 즈음 출판사에서 보낸 저자 증정본이 집에 도착했다. 묵직한 박스를 안고 내 방으로 향하는 동안 걱정이 앞섰다. 박스의 무게는 만만치 않았고, 그 무게는 고스란히 마음을 짓눌렀다. 이 많은 책을 다 어쩌나 싶어서. 박스를 열어보니 1쇄 20부, 2쇄 5부 총 25부의 저자 증정본이 해맑게 웃는 얼굴로 나를 반겼다. 반가움도 잠시, 다시 현실적인 고민에 휩싸였다. 그다지 난 화려한 인맥의 소유자가 아니다. 또 일찌감치 출간 소식을 전했던 지인들은 이미 사전 예약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25권의 저자 증정본은 생각보다 빠르게 자신의 제 주인을 찾아갔다.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은 물론 이 책을 완성하기까지 시간과 공간을 내어주고 물질적, 심리적 도움을 줬던 사람들의 품을 향해 하나 둘 떠나갔다. 시국이 시국이라 직접 만나지 못하고 대부분 우체국 택배로 책을 보냈다. 한동안 우체국에 출석 도장을 찍는 게 매일 아침의 일과였다. 며칠 지나니 우체국 직원은 내용물이나 어떤 종류로 보낼 건지 묻지도 않았다. 봉투의 크기만 보고도 척척 알아서 진행해 주셨다.오전에 보내면 24시간 후엔 전국 어디든 도착했다. (대한민국 우체국 만세!!)      




띠링! 발랄한 알림 소리와 함께 카톡으로 사진 하나가 도착했다. 눈이 시리게 파란 하늘 아래 황금색으로 물든 벼가 일렁이는 사진. 그 한가운데 내 책이 있었다. 내가 보낸 저자 증정본 중 가장 멀리 간 책. 전라남도 끄트머리의 작은 마을에 사는 '귀농 요정 J'가 보내온 인증샷이었다.      


한동안 잊고 있던 J의 존재를 다시 떠올리게 된 건 이번 책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에피소드 뮤즈‘ M 덕분이었다. 함께 수다를 떨던 중 불쑥 J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생각해보니 J도 한 에피소드의 작은 주인공. J에게도 이번 책의 지분이 있으니 보내야겠다 마음먹었다.


몇 해 전, 진행하던 프로젝트의 팀원 충원을 위해 마련했던 면접에서 처음 J를 만났다. M의 지인 추천이었다. 여러 지원자 중 고심 끝에 J를 합격시켰다. 요령 피우거나, 힘든 일을 피하고자 꾀를 내던 비슷한 연차의 지원자들과 달랐다. 분명 초면이었는데도 성실함과 열정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까무잡잡한 얼굴 안에 유독 빛나던 눈빛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눈빛으로 말을 한다면 J의 눈빛은 엄청난 수다쟁이였다. 평소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실제 본인의 모습과는 정반대로.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방법은 서툴고 투박할지 몰라도, 그 누구보다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일했던 J. 속도는 더딜지 몰라도, 올바른 방향으로 한 계단 한 계단 성장해 가는 게 눈에 보였다. 프로젝트 안팎의 보이지 않는 적들과 싸워가며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져 갈 때, 그런 J를 보면 힘이 났다. 내겐 황량한 사막 같았던 사무실에서 J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여러 복잡한 사정이 생겨서 아쉽게도 프로젝트 중간, J와 헤어져야만 했다.      


아예 도시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간다고 했다. 말리고 싶었다. 분명 이 고비만 넘기면 좋은 결과를 얻을 재질의 친구였기에.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이고 내 욕심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신중하게 고민하고, 또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린 J의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해 주는 것뿐. 그렇게 헤어진 우리는 각자 ‘삶’이라는 철로 위를 쫓기듯 내달렸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 뒤에 비겁하게 숨어서.       


M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혹시나 하고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J의 이름과 고향 이름을 쳐서 넣었다. 곧, 몇 개의 기사가 떴다. <청년 농업인> <스마트팜> <청년 창업농> 류의 제목이 붙은 지역 신문 기사였다. J처럼 소중한 귀농 인재를 놓칠 기자들이 아니다. 기사 사진 속 J의 얼굴은 서울 시절보다 한층 더 까무잡잡했고, 수줍게 웃고 있었다. 그 수다스러운 눈빛은 여전했다.         


곧바로 카톡을 뒤져 J와의 채팅창을 열었다. 몇 해 전 명절 인사를 한 게 끝이었다. 긴 침묵을 깨고 툭 카톡을 보냈다. 잘 지내냐고. 네가 생각나서 메시지 보낸다고. 고향이긴 하지만 손에 익지 않은 새로운 일을 해내고 있을 널 조용히 응원하고 있었다고. 네가 새로운 분야로 도전했듯 나도 그사이 새로운 도전을  했다고. 그 결과물로 책이 나왔다고. 여러모로 쉽지 않을 시간을 보내고 있을 네게 위로와 응원을 담아 그 책을 보내고 싶다고.     


메시지 창에 1은 없어졌는데 한동안 답이 없었다. 덜컥 겁이 났다. 부담스러웠던 건가? 괜한 연락을 한 건가? 차단당한 건가? 그래 기억은 각자 다르게 적힌다. 나만 좋았던 인연이면 어쩌지?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사이 긴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 안에는 바로 옆에서 말을 하듯 J 특유의 말투가 글자에 고스란히 스며 있었다.


본인이 먼저 연락해야 하는데 먼저 연락 주셔서 미안하고 또 감사하다는 말. 출간 축하한다는 말. 저자 증정본 감사히 받고 주변에 선물 많이 하겠다는 말. 비록 텍스트 메시지지만 어떤 톤과 뉘앙스로 얘기했을지, 4D로 느껴졌다. 그렇게 서로 안부를 묻고, 응원을 건네고 짧은 대화를 마쳤다.      


얼마 뒤,  J는 책을 잘 받았다고 인증샷 보내왔다. 카톡 속 그 사진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어떻게 하면 책 사진이 잘 나올까? 황금 들녘 앞에서 이리저리 고심해서 정성을 다해 찍었을 J의 모습이 그려졌다. J는 그런 친구였다. 뭐든 늘 진심이었던 사람. 요령이나 꼼수보다는 정직과 성실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 살아남아야’ 하는 서울보다 어떻게든 ‘살아가는’ 고향이 더 어울리는지 모르겠다.      


카톡 프로필을 눌러보니 마지막으로 봤을 때 보다 제법 머리가 길었다. 프로젝트 내내 봤던 시멘트 빛 얼굴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치열한 서울살이가 남긴 피곤함에 찌든 회색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햇병아리 농부가 된 J의 얼굴에서는 새로운 일에 대한 설렘과 기분 좋은 고단함이 배어났다. 땀을 흘린 만큼 성실한 결과로 돌아오는 농사일. 분명 쉽지 않겠지만 J의 성향에 맞는 그 일을 잘 해내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코로나 시국이 잠잠해지면 J의 고향으로 여행을 가겠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 지역의 특산품인 한우를 먹으러 가겠다고 했다. (사실 한우는 거들뿐, 꼬꼬마 농사꾼의 실물을 영접하러 가고 싶다.) 그동안 난 한우를 원 없이 사주는 능력 있는 작가가 되어 보겠다고 허풍반, 진심반 다짐을 던졌다. 덧붙여 J에게는 부농(富農)이 되어 그 지역에서 갈만한 한우집을 싹 다 사전 답사해 놓으라고 미션을 안겨줬다. 부농과 대작가의 만남... 우리, 다시 만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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