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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Oct 21. 2019

오래된 즉석 떡볶이집이 사라졌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집 근처 전통시장 한 귀퉁이, 오래된 즉석 떡볶이집이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들른다면 거짓말이고 ‘즉석 떡볶이‘가 먹고 싶다 생각이 들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떡볶이집이다. 1년에 3~4번쯤 가는 그 집은 춘장 베이스의 신당동 스타일 즉석 떡볶이를 파는 가게다. 개업한지는 17년이 지났고 나는 한 10년 전부터 오갔다. 동네 맛집으로 공중파 방송에도 출연했고, 떡볶이 찐덕후들 사이에서는 한 번쯤 들러 봐야 할 숨은 성지로 알음알음 소문이 난 곳이다.
 
오래된 역사만큼 교복 입은 채 까르르까르르 수다를 떨며 떡볶이를 먹던 학생들 자라 결혼을 해 임신으로 부른 배를 안고 오거나 또 아장아장 걷는 자식의 손을 잡고 오기도 했다. 머리에 서리가 내려앉은 중년의 커플도 나란히 앉아 떡볶이 국물 볶음밥 누룽지를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는 흔하디 흔한 오래된 즉석 떡볶이집이다. 이 집의 가장 큰 매력은 가성비다. 요즘 같은 시대에 떡볶이 1인분에 2000원, 라면이나 튀김만두 등 각종 사리를 다 넣어도 2명이 1만 원 한 장이면 탄수화물 파티를 하며 제법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몇 해 전부터는 연세 많은 어머니를 대신해 중년의 아들이 도맡아 운영했다.


얼마 전, 그 근처를 무심코 지나다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그 떡볶이집 앞까지 갔는데도 보여야 할 간판이 보이지 않았다. 떡볶이집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고 그 자리에는 낯선 베트남 식당이 들어서 있었다. 순간 머리를 커다란 망치로 맞은 듯한 충격이 몰려왔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와 사라진 떡볶이집의 행방을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을 뒤졌다. 오랜 검색 끝에 실마리를 찾았다. 지역 맘 커뮤니티에서 나처럼 그 떡볶이집의 행방을 묻는 사람이 쓴 게시물의 답글에서였다.


오래된 즉석 떡볶이집의 인기는 예전 같지 않았다. 세상에는 늘 새롭고 신기한 음식들이 넘쳐났다. 입맛이 바뀐 사람들의 관심에서 그 떡볶이집의 존재감은 점점 흐릿해져 갔다. 추억으로 가끔 찾는 단골들만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영업 적자가 계속되자 아들 사장님은 오랜 고민 끝에 폐업을 결정했다고 한다. 워낙 노후된 건물이었기 때문에 장소 이전을 했을 거라는 일말의 희망을 품었던 단골들의 기대와 달리, 그 떡볶이집은 영영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세상에 널린 게 떡볶이집이고, 매일 새로운 떡볶이집이 생긴다. 차돌박이를 올리고, 통 오징어튀김을 올리고 또 어떤 곳은 치킨을 올린다. 치즈는 디폴트, 화려한 비주얼에 중무장한 세련되고 자극적인 맛의 떡볶이 집들이 득세다. ‘요즘 스타일‘의 떡볶이를 호기심에 몇 번 갔더라도 결국 돌아오는 곳은 오래되고 허름한 그 떡볶이집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돌아갈 곳이 없다. 그 맵지도, 달지도, 짜지도 않은 황금 밸런스의 즉석 떡볶이를 영영 먹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뜨거운 떡볶이를 종잇장만큼 얇은 차가운 단무지에 싸 먹는 그 묘미를 더 이상 느낄 수가 없게 됐다.


늘 그 자리에 있을 거라는 밑도 끝도 없는 믿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또‘ 오래된 친구를 떠나보냈다. 제대로 된 작별 인사조차 하지 못한 채. 나의 소홀함과 무신경함이 만든 결과다. 사람, 사랑, 인연, 기회 등등 지금까지 살아오며 그동안 나는 참 많은 것들을 떠나보냈다. 그리고는 영영 다시 만나지 못했다. 내가 좋아했고 사랑하는 많은 것들의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보기만 했다. 돌아서서 밀려드는 뒤늦은 후회에 매번 몸서리쳤다. 있을 때 잘할걸, 곁에 있을 때 더 표현할걸, 고마웠다고 잘 가라고 마지막 인사라도 제대로 해줄걸... 이제는 쓸모도 없는 말들을 작게 내뱉으며 스스로를 원망했다.


헤어짐은 늘 당황스럽다. 하지만 헤어짐의 경험들이 쌓이면서 이제는 어떻게 이별의 아픔을 추슬러야 하는지, 또 어떻게 해야 내가 덜 아프고 빨리 그 고통에서 벗어 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에 스킬이 생겨도 매번 아프다. 대다수의 이별은 큰 전조 없이, 예고 없이 찾아온다. 마음의 준비를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란 없다. 그래서 곁에 있을 때 한 번 더 돌아보고, 더 표현하고, 일말의 후회가 남지 않도록 노력한다.


어느 노래의 가삿말처럼 ‘지구에는 공기 때문인지 유통기한’이 있다. 무엇이든 언젠가는 끝이 있게 마련이고, 그게 당장 오늘 일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을 바꾼 이후, 내 곁의 모든 것들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불확실한 미래를 기약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악착같이 즐기고, 느끼고, 표현하고, 감사한다. 시간이 없다는 말은 마음이 없다는 말이다. 그만큼 절실하지 않다는 뜻이다. 시간은 내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간절한 사람이 만드는 게 시간이다. 시간이 없다는 말로 게으름을 피우기에는 내게 주어진 시간이 한없이 짧다.


이 떡볶이집이 문을 닫으면서 더 이상 짠단의 황금 밸런스를 갖춘 즉석 떡볶이를 먹을 수 없다는 게 물론 아쉽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나는 이미 먹고 싶을 때, 언제는 가서 배가 가득 찰 때까지 충분히 즐겼기 때문이다. 이제는 영영 사라져 버린 그 떡볶이의 맛이 내 혀와 뇌에 깊게 남겨져 있다. 이제 곧 추운 겨울날이 되면 분명 생각날 것이다. 떡볶이보다 사리가 많던 보글보글 끓는 즉떡 냄비를 앞에 두고 수다를 떨며 그 맛을 즐기던 순간을... 하지만 추억이 선명하게 남아 있어서 그 떡볶이 집이 사라진 게 마냥 슬프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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