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라면', 맛있게 끓이는 방법
누군가의 말처럼 라면이 세상에서 제일 건강한 음식이면 얼마나 좋을까? 맛은 물론 싸고 쉽고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라면은 스마트폰과 함께 인류가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칼로리와 나트륨, 그리고 탄수화물의 공격 때문에 애써 자제하는 편이다. 예전처럼 튀긴 밀가루 면이 소화도 쉽지 않고, 늘어나는 뱃살과 마음의 죄책감 때문에 10번 라면이 먹고 싶으면 그중 2~3번으로 나와 타협하며 살고 있다.
먹는 환경, 불 조절, 배고픔의 정도, 면의 익힘 정도 등등 맛있는 라면을 완성하는 무수한 조건이 있다. 그중에서도 라면의 맛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건 물의 양이다.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을 것이다. 집에서 간단하게 1~2개 끓일 때 말고 MT나 단체 모임에서 대용량의 라면을 끓일 때, 면은 퍼지고 국물은 밍밍한 최악의 라면을 먹었던 기억. 라면에게 죄를 짓는 행위다.
3개 이상의 라면을 끓일 때는 1개당 라면에 필요한 물의 양을 그대로 곱하면 라면 냄비는 한강이 된다. 그래서 라면 회사에서는 라면 전용 계량컵을 만들기도 하고, 자체에 물 용량 눈금이 표시된 냄비를 내놓는 주방용품 회사도 있다. 공부 좀 했다는 과학자(?)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인류가 맛있게 라면을 먹을 수 있도록 머리를 싸매고 각종 공식과 이론을 탐구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복잡한 과학자들의 연구 말고, 싱겁지도 짜지도 않은 내 입맛에 딱 맞는 라면 물 양의 황금 비율을 맞추는 방법을 나는 알고 있다. 일반적으로 내가 라면 끓이는 방법은 이렇다. ① 먼저 넣고 싶은 양의 물을 냄비에 담는다. ② 거기서 2/3 정도를 남기고 버린다.(대부분의 라. 알. 못 들은 물을 넘치게 담는 편이다). ③ 물을 끓으면 면을 넣는다. ④ 수프로 간을 조절한다. ⑤ 적당히 익으면 완성.
많은 사람들은 라면이 맛없어지는 결정적 이유가 물이 때문이니까 물의 양을 조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물론 그렇게 생각했었다. 평소 나는 라면의 면을 위주로 먹고 국물은 거의 먹지 않는다. 먹지도 않을 라면 국물을 몇 번이고 한강 수준으로 끓여 낸 이후, 기름 둥둥 라면 국물을 싱크대에 그대로 흘려버리면서 지구에 미안했다. 이게 뭔 짓인가 싶었다. 그 이후 아예 국물을 버리는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먹을 만큼의 국물을 만들기 위해 고민했다. 그래서 국물은 최소화하고 수프 양을 조절해 라면을 끓였다. 이렇게 끓여도 맛에 큰 변화가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그냥 생각 없이 남들이 끓이는 방식 그대로 따라 끓이며 먹지도 않을 라면 국물을 만들어 냈다. 라면 봉지 뒷면에 쓰여있는 조리법만이 진리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건 가이드일 뿐 라면은 내 입맛에 맞는 방법은 내가 찾아가는 거였다. 물 대신 수프로 맛을 조절하면서 나는 실패 없이 내 입맛에 맞는 라면을 먹게 되었다. 세상 모든 일은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쉽기도 하고 또 어렵기도 하다.
인생이 한강물이 된 라면처럼 맛이 없어지는 이유 역시 양 조절을 못해서다. 내 인생이 즐겁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어떤 맛의 수프가 얼마만큼의 양이 들어가야 하는지 대부분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실패를 거듭하며 내 입맛에 맞는 ‘인생이라는 라면‘을 끓여 가는 중이다.
1년에 한 번씩 연말이 되면 만나는 친구 모임이 있다. 고만고만한 고민들을 안고 살아가는 또래 친구들이다. 학번만 같을 뿐, 직업도, 사는 곳도, 사는 환경도 제각기 다르다. 연말이라는 핑계로 시간을 잡지 않으면 얼굴 보기 어려울 정도로 다들 열심히 산다. 며칠 전 오랜만에 만나 와인을 한 잔씩 앞에 두고 밤새워 이야기를 나눴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열심히 살아온 M이 왈칵하고 눈물을 쏟았다. 작년에 이어 2년 연속이다. 그전까지 내가 느낀 M은 분명 자기 세계가 확실하긴 하지만 생기발랄하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몇 년 사이 한 겨울바람에 바싹 마른 무청 시래기처럼 몸도, 마음도 빳빳하고 꺼칠하고 또 힘없이 바스러진 느낌이었다.
어렵게 가진 아이는 병치레가 잦아 늘 좌불안석이고, 생활력도 책임감도 없는 남편이 답답하다고 했다. 눈도 연봉도 한참 낮춰 어렵게 재취업에 성공했지만 원래 하던 일에 비해 환경도 열악하고, 대우도 아쉽다고 했다. 단순 시급 계약직의 현실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중이라고 했다. 게다가 친정아버지는 은퇴를 하셨고, 동생들도 여러 이유 때문에 고정 수입이 없는 상황이라 모두 경제적 문제로 힘들어한다고 했다. 그래서 친정식구들은 자기만 바라보고 있다고 했다.
M이 말한 팩트만으로 파악된 그녀의 상황은 어느 하나 숨구멍이 없게 느껴졌다. 눈물이 가득한 M의 얼굴은 그녀의 삶이 얼마나 괴롭고, 우울한지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엄마이자 아내, 딸, 그리고 맏언니의 책임감이 M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그런데 M이 말을 하면 할수록 나와 다른 친구들은 이 상황이 과하다 싶었다. 우리는 연신 머리를 갸우뚱거렸다. 이게 이렇게 혼자 짊어질 일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이 우리의 대화 사이를 조용히 오갔다. 미묘한 눈빛을 교환하던 우리는 말했다.
꼭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네가 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고.
그러다 너 무너진다고.
곧이어 ‘너만 병신 아니야 ‘라는 주제로 한참 각자 삶의 불행 배틀을 겸한 자기 고백이 이어졌다. 이력서 100번 쓰고도 변변한 직장을 못 얻었던 A. 하루아침에 권고사직을 당한 B, 사이코 팀장 때문에 공황장애 직전까지 간 C. 양아치 같은 회사가 퇴직금 안 주려고 온갖 치사한 방법을 다 써서 소송 준비 중인 D. 친정엄마와 육아 방식 차이 때문에 의절 직전까지 갔지만 아이 맡길 때가 없어서 다 포기해야 했던 E 등등 어느 사람이 낫다, 모자라다를 따질 수 없을 만큼 각자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악착같이 살아가고 있었다. 겉으로는 애써 담담한 척, 괜찮은 척 살고 있었다.
그들이 버틸 수 있는 이유는 각자 자신의 도망갈 구석을 하나씩 마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몰두할 수 있는 취미로 유리공예를 배웠고, 또 누군가는 개미같이 푼돈을 악착같이 모아 여행을 떠났다. 또 누군가는 고민을 길거리에 내던져 버리기 위해 매일 2시간 넘게 걸었고, 또 누군가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맛있는 케이크 한 조각을 챙겨 먹었다. 그런 시간들로 잠시 도망쳐서 망가진 자신을 추스르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어 현생으로 돌아왔다.
한참 얘기를 했는데도 M은 텅 빈 얼굴로 빈 와인잔만 만지작거렸다. M은 분명히 열심히 살았는데 돌아오는 건 늘 더 큰 고통과 괴로움뿐이라 버틸 수 없을 만큼 힘들다고 했다. 우리의 불행 배틀에도 여전히 자신만이 가장 힘들다는 기조는 변하지 않다. 본인은 완벽한 피해자고 세상은 자신을 버렸다고 말했다. 답답함이 최고치에 차오른 우리는 입을 모아 말했다.
네가 힘들지 않다는 게 아니야. 분명 누가 겪어도 힘든 상황이야.
절대 변하지 않는 상황에서 네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아.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그 상황을 조금 다르게 보는 것뿐!
세상 모든 일은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쉽기도 하고 또 어렵기도 하잖아?
힘들다, 괴롭다고만 자꾸만 원망하며 굴 파고들수록 문제만 커져.
너를 추스르고 네가 온전히 너로 서 있을 힘이 있어야
네가 사랑하는 아이도, 남편도, 친정가족도, 일도 모두 잃지 않을 수 있어
그러기 위해서 잠시 신경도 끄고, 거리도 두는
너만의 시간을 가져야 해. 꼭!
그러면 분명 힘든 네 상황에 작은 변화들이 생길 거고
그 변화가 모여 널 다시 일으켜 줄 거야.
M이 언제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올지 모르겠다. 그날 밤의 대화가 얼마나 그녀의 마음에 박혔을지 알 수 없다. 결혼 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던 M은 작가가 되고 싶어 했다. 지금은 그런 말랑한 감수성은 과거에 박제당한 채, 먹고사니즘에 발목 잡힌 채 (본인 피셜) 지긋지긋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녀가 끓여야 하는 ‘삶이라는 라면’을 꼭 남들이 말하는 대로, 봉지 뒷면의 방법대로만 끓여야 한다는 강박을 부디 내려놓길 바란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언젠가는 꼭 자신의 입맛에 맞는 방법을 꼭 찾게 되길 친구로서 뜨겁게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