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유불급 자기 확신에 대하여
팀원들끼리 몰래 A 팀장님을 부르는 별명이 하나 있다. ‘답. 정. 너’. 답은 정해져 있고 너희는 실행만 해. 이게 그와 함께 일할 때 팀원들이 똑같이 느끼는 감정이다. A 팀장님과 오래 일했던 사람들은 안다. 애써서 아이디어를 내고, 의견을 관철시키려 노력해 봐야 소용없다는 걸. 결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강철 철벽 같은 A 팀장과 일할 때는 팀원들이 해야 할 일은 단순하다. 그저 멀찌감치 물러서서 A팀장이 내는 아이디어에 적당히 손뼉 쳐 주고, 우쭈쭈 하며 넘어갔다. 이런 분위기는 자연스레 팀원들은 소극적이게 만들었고, 그런 팀원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A 팀장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나 없으면 어쩌려고들 그래...
내가 이렇게 수저로 떠서
입에 까지 넣어 줘야 해?
내가 사원이냐?
나도 팀장인데 좀 쉬엄쉬엄 일하자.
요즘 친구들은 아이디어가 없다니까 “
앞에서 빙그레 웃으며 네네 하던 팀원들은 뒤돌아 썩은 미소를 짓는다. 팀원들의 아이디어를 들을 생각도 없이, 회의가 시작되면 자신의 의견이 정답인 양 우르르 쏟아내는 A 팀장. 회의는 브레인스토밍의 장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역할 분담하는 시간일 뿐이었다. 경력이 고만고만한 조무래기들이 아이디어를 내봤자 수십 년 차 팀장의 눈에는 하찮고 모자란 게 당연하다. 후배들의 의견을 읽씹 하는 게 A 팀장의 일이다.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두드리며 더 나은 방향으로 결과를 내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해 가는 게 사회생활에서 경력을 쌓는 방법이다. 하지만 제대로 의견에 귀를 기울일 생각조차 없이 자신의 의견만이 정답이라고 강요하는 팀장이 존재하는 환경에서 소나무처럼 꿋꿋하게 의견을 내는 강철 멘탈 팀원은 없었다.
사람에게는 인정의 욕구란 게 있다. 사소하고 모자라도 내 의견이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이 들면 다음 아이디어를 낼 때 조금 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그렇게 부딪히고 받아들여지고 하다 보면 언젠가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 탄생하게 된다. 하지만 자기 확신이 충만한 A 팀장은 팀원들의 능력을 인정하는 게 용납되는 사람이 아니었다. 마치 영역을 빼앗기는 게 두려운 늙은 사자처럼 모든 권한을 악착같이 움켜쥐고 있었다. 그게 본인을 힘들고 외롭게 만들었다.
언젠가 A 팀장과 외근을 갔다 사무실에 복귀하기 전, 단둘이 밥을 먹은 적 있다. 잠시였지만 A 팀장은 자신이 지키고 있는 그 자리의 외로움과 괴로움을 나에게 털어놓았다. 막연히 짐작만 했지, 그분의 입으로 직접 듣게 될 줄 몰랐다. 자기애와 자기 확신이 가득한 A 팀장이 건넨 뜻밖의 커밍아웃에 난 잠시 멈칫했다. 그 누구보다 일을 사랑하고, 인정받는 걸 좋아하는 A 팀장은 본인도 힘들고, 팀원들도 성장할 수 없는 이 악순환을 깰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 나에게 물었다.
팀장과 팀원 사이에서 허리 역할을 하는 나는 양쪽의 입장이 어느 정도 다 이해되는 위치에 있다. 그래서 솔직히 그간의 사무실 분위기에서 느낀 생각들을 조심스레 말했다. 성과로 인정받고 싶고, 좋은 결과를 내고 싶은 마음은 팀원들도 팀장님 못지않다. 까이더라도, 주눅 들지 않고 자꾸 입을 뗄 수 있는 유연한 분위기 조성이 필수다. 사회가 학교가 아니니 빠르고 정확한 결과물을 내야 하는 팀장님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기다림의 시간에 투자를 하지 않으면 평생 팀장님은 감당하기 버거운 일의 무게에 허덕일 것이고, 팀원들도 성장하지 못할 거다. 지금은 서툰 헛스윙을 하는 팀원들도 자기 확신을 갖게 되면 멀지 않아 안타도 치고, 곧 홈런을 치는 날도 올 것이라는 말로 대화를 끝냈다.
그래서 난 주변 사람들에게 묻는다. 누군가는 나의 질문이 줏대 없고 귀찮게 느껴질 것이다. 선택의 책임은 내가 지지만 그 결정에 도달할 때까지 나만의 독단과 독선은 아닌지 꼼꼼히 살핀다. 그래서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과정이 더디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다수가 인정하고 공감하는 결과물을 얻곤 한다.
나는 살 수만 있다면 내가 가진 돈을 다 털어서라도 사고 싶은 게 ‘자기 확신’이다. 자기 확신이 부족한 나는 나의 생각이, 나의 의견이, 나의 결정이 맞는지 늘 의문이다. 회사마다, 사람마다, 환경마다 상황이 다르고 해결 방법이 다르니 어느 게 정답이다 콕 집어 단언할 순 없다. 어떤 상황에서는 A 팀장의 방법이, 또 어떤 상황에서는 나의 방법이 정답일 수 있다. 하지만 A 팀장님도 나도 다 ‘자기 확신’이라는 단어를 문제 해결의 ‘키‘로 두고 있는 건 마찬가지다.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은 자기 확신을 갖는 게 가장 아름다운 결론이겠지만 현실적으로 득도한 성자가 아닌 이상 그런 마인드를 갖기란 불가능하다. 독고다이로 혼자 일할 게 아니라면, 팀으로 일을 해야 한다면 이렇게 내가 가는 이 길이 맞는지, 얼굴을 맞대고 점검하는 시간이 필수다. 그리고 나의 안팎에 있는 존재들에게 물어야 한다.
나 제대로 하고 있는 거 맞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