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글쓰기의 꼼수
물론 나도 그랬다. 글쓰기를 하면 좋다는데, 그래서 뭘 쓰고 싶긴 한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모니터 안의 깜빡이는 커서는 얼른 쓰라고 재촉했고, 뭐라도 결과물을 내라고 나를 호되게 채찍질했다. 그럴 때면 모니터 속의 켜 놓은 한글 창처럼 머리도 티 없이 맑고 깨끗한 백지가 되고 했다. 새하얀 창을 켰다가 끄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아까운 시간만 흘려보냈다. 처음부터 뭔가 대단한 결과를 낼 욕심이 부른 참사였다.
그래서 생각나는 대로 쓰기 시작했다. 완성도야 둘째 치고, 우선 글쓰기 자체에 대한 마음의 부담부터 내려놓아야 했다. 그렇게 제멋대로 쓰기 시작하니 요령이 생겼고, 즐거움이 생겼다. 쓰는 즐거움을 알게 되니 글로 하고 싶은 말이 많아졌다. 수다쟁이가 됐다.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하루에 2~3시간은 무조건 앉아 썼다. 일이 생길 거 같으면 전날 미리 다음날의 분량을 비축해 뒀다. 겨울잠을 앞둔 다람쥐처럼. 그렇게 쓴 글들을 하나 둘 카카오 브런치에 올리기 시작했고, 꾸준히 쓰다 보니 수많은 마법 같은 일이 내게 찾아왔다.
‘글쓰기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은 초심자들에게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편한 손님이다. 하지만 자꾸 만나다 보면 친해지고, 또 매력을 알게 된다. 아래의 방법이 글쓰기의 정답은 아니겠지만 요령이자 꼼수는 확실하다. 나는 이 방법을 통해 글쓰기의 두려움을 확실히 해소했다. 지난날의 나처럼 글쓰기가 막연한 당신이 이 글을 통해 조금이라도 그 막연함을 털어내길 바란다.
① ‘글감’이라는 총알 장전하기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잡지를 볼 때 앞에서부터 보는 사람과 뒤에서부터 보는 사람. 나는 후자에 속한다. 크고 화려한 각종 광고가 넘쳐나는 앞쪽보다는 (물론 광고가 있긴 하지만) 별자리 운세와 에디터들의 소소한 후기를 보는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이다. 난 늘 이런 식이다. 웅장하고 대단한 것보다 작고 사소한 것에 더 마음을 쓰는 천생 개복치. 그게 바로 나다. 구멍이 작은 촘촘한 그물을 던져 물고기를 잡듯 세심한 눈과 예민한 감각으로 걸러낸 크고 작은 생각들은 글감이 되어 스마트폰 메모장에 쌓였다.
글감은 대부분 출퇴근 길이나,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TV를 보거나,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남들의 SNS를 염탐할 때 나온다. 단어나 문장일 때도 있고, 때로는 이미지인 경우도 있다. 생각나는 대로 메모장에 적어 두거나, 캡처를 해 놓고, 밑줄을 그어 놓는다. 하지만 그중 글로 다시 태어나는 건 채 10%도 되지 않는다. 대부분은 이걸 왜 기록해 뒀는지, 어떻게 글로 구성할 것인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도 그중 살아남은 약 10%의 글감은 글로 다시 태어난다. 단순한 단어들은 문장이 되고, 다시 한 편의 글이 된다.
글감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사냥꾼의 마음으로 촉을 바짝 세우고 있어야만 한다. 산책길에 만난 그루밍 하는 길고양이의 모습을 보고 관리하는 사람의 꾸준하고 부지런한 노력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느낄 수 있다. 툭 던지는 친구의 하소연 한마디에 꽂혀 한 편의 글을 완성한 적도 있다. 자세히 그리고 천천히 둘러보면 내 주변에 글감은 널리고 널렸다.
② 글 쓰는 근육 키우기
많은 작가들이 하는 말 하는 ‘글 잘 쓰는 요령’이 하나 있다. 글은 머리로 쓰는 것도, 손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의 힘으로 쓰는 거라는 말. 엉덩이로 버티는 힘이 결국 좋은 글을 만들어 낸다는 말이다.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프리랜서 나는 보통 출근 시간보다 2~3시간 전에 일찍 나와 집 근처 도서관이나 사무실 근처 카페에서 주로 글을 쓰곤 했다. 떠나야 할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2~3시간 안에 보통 A4 용지 한 장 반에서 두 장을 글로 채웠다. 물론 전날, 메모장 속 글감을 선택해 어느 정도 글의 방향과 구성을 머릿속에 스케치해둬야 2~3시간 안에 가능한 일이다. 글 쓰는 시간은 무조건 고정해두고 2~3시간 이상은 투자한다. 책상에 앉으면 머릿속에 그려둔 순서대로 글로 옮기고, 팩트 체크를 하고, 맞춤법 검사를 한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해 본 사람들은 안다. 근육의 크기는 덤벨의 무게가 아닌 운동 횟수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꾸준함은 ‘동기’라는 근육을 만들어 낸다. 하루에 10분이건, 1시간이건 무조건 정해진 시간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쓴다. 시계보다 더 정확하게 시간을 지키던 철학자 칸트 정도는 아니어도 하루 중 일정 시간을 글 쓰는 시간으로 빼뒀다. 투자하지 않고 저절로 얻어지는 건 없다. 머릿속 그리고 일상 속에 글 쓰는 습관을 들이면서 글 쓰는 근육의 힘이 조금씩 조금씩 늘어나는 것을 느낀다. 그 근육의 힘이 모여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생각들을 글자로 만들고, 결국 한 편의 글로 완성시킨다.
③ 누구도 훔쳐 갈 수 없는 나만의 이야기 담기
나만 보는 일기라면야 뭘 쓰는 무슨 상관일까? 하지만 누군가가 읽어주길 바라며 세상에 내놓는 글을 쓴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최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충분히 있어야 하고 독자가 공감해야 할 포인트가 최소 20%는 있어야 한다. 뜬구름 잡는 애매모호한 이야기는 있어 보일지는 모르지만 결코 공감을 얻을 수 없다. 소설, 영화, 드라마가 아무리 실감 나게 잘 쓰고, 잘 만들었다 해도 결국은 제삼자가 만든 가공의 이야기다.
내 이야기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본인이 직접 경험한 순간의 기억과 그때 느낀 감정 하나하나를 진솔하게 쓰다 보면 글은 풍성해진다. 구체적이고 섬세한 기억일수록 좋다. 실제 경험과 사례가 덧붙여졌을 때,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쉽다. 빈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듯 읽는 사람이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도록 쓰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관심 분야, 혹은 잘 아는 분야에 대해 쓸수록 이야기가 풍성해진다. 나는 초반에 주로 여행에 대해 집중적으로 썼다. 다른 분야에 비해 비교적 경험과 생각이 많았기에 가능했다. 그렇게 여행에 대한 잡다한 추억과 생각을 글로 쓰다 보니, 요령이 생겼다. 어떤 내용에 독자들이 반응을 하고, 또 내가 만족스러운지 접점을 찾게 되었다. 또한 글의 양이나 방향, 메시지 등 적절한 루틴에 대해서도 파악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글은 보다 유리창만큼이나 투명해서 글쓴이의 진심이나 진정성이 금세 독자들에게 들키고 만다.
장황하게 쓴 글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내 이야기를 꾸준히 쓰다 보면 서서히 글쓰기에 대한 막연함은 사라진다’ 대신 그 빈자리에 글쓰기의 즐거움이 채워진다. 온전한 한 편의 글이 아니어도 좋다. 한 문장이라도 좋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을 위해 내년 크리스마스쯤에는 풍성한 ‘글 선물’을 나에게 안겨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