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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Nov 21. 2019

돈과의 분리불안에 대처하는 어느 프리랜서의 자세

슬프지만 내가 찾은 방법은 이것뿐


십수 년째, 사회생활을 했지만 난 내 통장을 배불리 먹여 본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과식을 해 본 적이 없다. 불쌍한 내 통장은 늘 배가 고팠다. 집이나 차를 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명품을 사며 사치를 부린 것도 아닌데 내 경제 상태는 늘 아슬아슬했다. 지금은 일을 하고 있지만 당장 내일 일이 끊길 수도 있는 불안정한 날들이 이어졌다. 아무리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해도 윗선에 앉은 고용자들의 한마디에 프로젝트는 엎어지고 날아가기 일쑤였다. 약속했던 페이는 늘 그놈의 부. 득. 이. 한 사정 때문에 쉽사리 후려치기 당했다. 그마저도 빚쟁이처럼 악다구니를 쓰고 조르고 졸라야 겨우 내 몫을 챙길 수 있었다. ‘우아’와 ‘여유’는 프리랜서의 인생에 존재하지 않는 단어다.


당장 몇 개월 후 내가 어떤 상황에 놓일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았다. 마치 겨울잠을 자는 다람쥐처럼 최소한의 에너지만을 이용해 사는 생활이 계속 됐다. 머지않을 봄날을 기다리며 아끼고 쪼개고 나눠 쓰지 않으면 언제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를 일이다. 통장이 가난하면 마음도 가난해진다. 여유는 마음에서 나올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주머니에서 나온다. 커피 한 잔을 마실 때도, 식당에서 메뉴를 고를 때도 한 번 더 심사숙고한다. 내가 이렇게 ‘여유‘를 부릴 상황인가?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는다.


이름만으로 브랜드가 되는 상위 0.1%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프리랜서에게 돈과의 분리불안은 숙명이다. 가만히 앉아 있다고 나를 챙겨 주는 사람은 없으니 몸을 움직여 내 존재를 어필해야 한다. 고만고만한 경쟁자들 사이에서 선택받기 위해서는 온리원이 아닌 이상 가성비 좋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 자의든 타의든 허리띠를 졸라야 살아갈 수 있는 프리랜서. 평생을 프리랜서 타이틀을 달고 살면서 생긴 능력 중 하나가 경제적 여유가 없어도 삶의 즐거움을 찾아내는 것이다. 통장의 여유가 없다고, 마음까지 가난해지고 싶진 않았다.


프리랜서의 장점이자 단점은 내가 내 인생의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다는 점이다. 삶이 헝클어졌을 때, 내가 나를 주체할 수 없을 때 나는 주로 여행을 떠난다. 일종의 도피성 긴급조치다. 성수기의 화려함은 없지만 비수기의 한적함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비수기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은 가격이다. 성수기의 반값이면 누리고 싶은 것을 다 누릴 수 있다. 비수기 때 아예 영업을 하지 않는 곳들을 미리 파악해 둬야 하는 귀찮음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 귀찮음 보다 한적함과 가격적 메리트가 크기 때문에 나는 비수기 여행을 즐긴다.
 
여행을 떠날 여유조차 없을 때는 일상 속에서 눈을 돌린다. 적은 비용을 투자하고도 큰 만족을 누릴 수 있는 포인트들을 일상 곳곳에 널어둔다. 뻔한 산책코스 말고, 기분전환이 되는 걷기 좋은 길. 잔 단위로 위스키를 마실 수 있는 한적한 싱글 몰트 바. 시끌벅적한 힙플레이스보다 골목 구석의 작고 허름한 공간에서도 1초의 정적도 허락하지 않는 수다 친구까지... 비용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텅 빈 나를 채워주는 존재들이 있어 나의 분리불안은 점점 희미해진다.


없다고 징징거릴 게 아니라, 있는 상황을 어떻게든 누리는 방법을 찾는 게 정신건강에 이로웠다. 돈과의 분리불안이 밀려온 상황이 전전긍긍한다고 해결되지 않았다. 또한 하루아침에 뚝딱 돈이 생기는 일은 결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슬프지만 내가 찾은 정답은 그것뿐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난 일상 속에 흩뿌려둔 하찮은 보석들을 주워 내 주머니에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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