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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Feb 24. 2020

좋아했던 음식점의 맛이 변했을 때

내가 변한 건지, 네가 변한 건지... 그래 뭐든 변하는 거지

학창 시절, 즐겨 듣던 라디오 프로그램의 DJ는 식재료답지 않는 형광 보라색을 가지고 있어서 가지가 싫다고 했다. 나 역시 가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색은 둘째치고 그 물컹한 식감 때문에 결코 친해질 수 없다고 생각한 식재료 중 하나가 바로 가지였기 때문이다. 가지 요리하면 살짝 쪄서 결대로 찢은 후 각종 양념을 넣어 무쳐 먹거나 양파를 넣고 볶아 먹는 게 전부인 줄 알았다. 이런 가지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을 깨준 곳은 바로 연남동의 유명 중식당 <H>다. 그곳의 대표 요리, 가지 튀김을 먹고 가지라는 식재료를 다시 바라보게 됐다. 겉은 바삭하면서도 한 입 깨물면 가지 본연의 향과 채즙이 쭉 입 안 가득 퍼진다. 가지도 이렇게 먹으면 되는 거였구나. 그래서 내 머릿속에는 [ 가지 요리 = <H> ]라는 공식이 박혔다.


언젠가 절친들과의 단톡 방에서 ‘가지’ 얘기가 나왔고, 다음번에 <H>에 가서 가지 요리를 먹자는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가지 튀김을 먹겠다고 거세게 몰아치는 눈보라를 뚫고 <H>에 모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으레 그랬던 것처럼 가지 튀김과 군만두 그리고 병맥주를 시켰다. 우리가 가지 튀김을 시킬 걸 알았다는 듯 패스트푸드점 뺨치는 빠른 속도로 우리 테이블에는 가지 튀김이 올라왔다.


기분 탓일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비해 양은 좀 줄어든 것 같았지만, 고급 보석처럼 반드르르한 윤기를 뽐내는 먹음직스러운 자태는 변함없었다. 먼저 맥주 한 모금을 마셔 입안을 촉촉하게 적시는 것으로 가지 튀김을 영접할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뜨거운 가지 튀김을 한 개 집어 후후 불어 와작 하고 한 입 베어 물었다.

 

어? 이거 뭐지?


지금까지 내가 먹어왔던 <H>의 가지 튀김과 같은 듯 달랐다. 겉보기에는 분명 양이 줄어든 거 빼고는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였는데 맛에는 빈틈이 많이 느껴졌다. 예전에 비해 깊은 맛은 사라지고 허전하고 단편적인 맛뿐이었다. 좋게 말하면 깔끔한 맛이고, 솔직히 말하면 원래의 깊은 맛은 물에 희석된 듯 옅었다. 갸우뚱해 같이 온 일행들의 반응을 살폈다. 이곳에 처음 발을 들인 A와 B, 둘은 신나게 먹고 있었다. 반면 종종 이곳의 가지 튀김을 먹어 온 나와 C는 흔들리는 동공을 애써 붙잡으며 물음표 가득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나 : 맛... 괜찮아?
A&B : 굳이 여기 가지 튀김 먹자고 한 이유를 알겠네. 가지도 이렇게 먹을 수 있구나! 
C : 음... 내 입에는 좀 변한 거 같아. 맛이 얕아졌달까? 
나 : 그렇지?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군.


처음 만난 가지 음식의 신세계를 즐기고 있는 A와 B에게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아 미안했다. 하지만 그냥 넘어가기에는 맛의 빈틈이 확실히 컸다. 노포를 좋아하는 이유는 고집스럽게 맛을 지켜가기 때문이다. 세월이 켜켜이 쌓여 완성된 언제 가도 변함없는 그 맛. 그게 좋아 노포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면 어떤 의심 없이 선택하곤 했다. <H>가 리모델링을 감행했을 때도 이렇게 큰 맛의 구멍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런데 대체 왜일까? 주방장이 바뀐 걸까? 소스의 양념을 하나 빠뜨린 걸까? 주방장의 컨디션에 문제가 있는 걸까? 아니면 내 입이 변한 걸까?


주변을 둘러봤다. 테이블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고, 가지 튀김은 각 테이블 한가운데에서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하지만 방금 자리를 뜬 옆 테이블 상황은 우리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나 보다. 물론 둘이 먹기에는 여러 종류의 음식을 시키긴 했지만 그들은 이곳의 스테디셀러인 가지 튀김을 반 이상 남겨두고 떠났다. 어쩌면 우리와 같은 마음을 안고 <H>의 문을 나섰을지 모를 일이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익숙한 걸 찾게 된다. 입던 옷을 입고, 만나던 사람을 만나고, 가던 곳을 가고, 먹던 것을 먹는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는데 점점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그대로인 것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뭐든 변한다. <H>의 가지 튀김처럼 자세히 들여다보면 뭐든 크고 작은 변화들이 진행 중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듯.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분명 변해간다. 이 순리를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화된 과거만 끌어안고 ‘왕년에‘ 타령만 하는 꼰대가 된다. 우리는 ’ 꼰대‘라는 단어에 모든 세대가 경기를 일으키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아마 난 마지막으로 조만간 한 번 더 <H>에 가볼 것이다. 이번이 단지 이 날만의 문제인지, 아니면 정말 맛이 변한 것인지 확인해 보기 위해서라도 꼭 다시 <H>에 가봐야겠다. 다시 갔을 때, 이 전에 느꼈던 허전한 맛을 똑같이 느껴진다면 가지 튀김을 먹기 위해 <H>에 가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대신 <H>의 가지 튀김을 대체할 새로운 음식점을 찾아 나서는 즐거운 숙제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게 변한 <H>의 가지 튀김에 대처하는 나의 변화된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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