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신변잡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사 Mar 04. 2020

어른이 여러분! 세상은 결코 공평하지 않아요

원망의 구렁텅이에서 날 구해준 캐슬 공주 이야기


20대의 나는 늘 화가 나있었다. 이 빌어먹을 세상은 왜 나에게만 이토록 불친절할까? 불만이 가득했다. 내 열심의 결과는 늘 나를 배신했다. 반면 있는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잘난 자식들은 승승장구했다. 그때 난 그들 곁에 들러리처럼 서서 영혼 없이 박수를 치며 속으론 세상을 원망했다.


한창 세상을 향한 분노가 들끓던 그때, 나를 정신 차리게 해 준 사람이 있다. 그녀의 별명은 ‘캐슬 공주’였다. 서초의 **캐슬이란 이름의 고급 아파트에 살았고 아빠가 사줬다는 외제차를 끌고 출퇴근을 했다. 소위 말하는 강남 출신 금수저였다. 캐슬 공주는 얼굴은 하얗고, 미소가 예뻤으며 그 누구보다 성실했다. 모두에게 친절했고 난 그녀가 화내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한마디로 부족함 없이 자란 사람 특유의 여유와 배려가 넘치는 친구였다. 그런 ‘캐슬 공주’를 싫어하는 사람은 회사 내에 단 한 명도 없었다. 부잣집 딸에 대한 편견이 만든 비웃음과 삐딱함이 뒤섞인 별명이었지만, 어느새 우리는 ‘캐슬 공주’를 진짜 공주처럼 우러러보고 있었다.


반면 나는 어느 시간에 타던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는 악명 높은 ‘지하철 1호선’에 몸을 싣고 출퇴근을 하는 경기도민이었다. 내가 먼저 밟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밟히고 만다는 생존의 법칙을 ‘지하철 1호선’에서 배웠다. 그곳에서는 의자를 사수하기 위한 눈치싸움, 생존 공간 확보를 어깨싸움, 공공재도 아닌 내 몸에 손을 대려는 변태들과 눈싸움이 일상이었다. 출근길부터 전쟁을 치른 나는 산발 직전의 머리와 인류애를 상실한 분노가 충만한 상태가 된다. 너덜너덜한 반건조 오징어 꼴로 사무실에 도착한 내게 봄꽃처럼 해사한 미소를 내뿜는 캐슬 공주가 싱그럽게 인사를 하곤 했다.


출근길엔 고급 외제차로 강변북로를 달리며 우아하게 음악을 들으며 서서히 텐션을 올렸을 캐슬 공주 . 그녀가 고상하게 에너지를 가득 채워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나는 편도 1시간 30분의 험난한 <꼬리칸 생존 게임>을 벌이고서야 겨우 사무실에 도착했다. 우린 태생도 다르고, 계급도 달랐고, 출발점도 달랐다. 당시 생각이 어렸던 난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죽도록 노력하면 ‘열심’으로 극복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수많은 성공신화의 주인공들이 이뤄낸 것처럼. 언젠가 그녀가 쥔 것들을 넘어서는 결과를 손에 거머쥘 거라 믿었다.


하지만 내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늘 조급했고 무언가에 쫓겼던 나에 비해 캐슬 공주에게서는 늘 여유도 자신감도 넘쳤다. 그런 우리의 마음가짐의 차이는 고스란히 일의 결과로 나타났다. 내가 전전긍긍하고 아등바등하는 사이, ‘캐슬 공주’는 저만치 앞서 나갔다. 풍부한 경험이, 촘촘한 인맥이, 넓은 시야가 먼저 그녀를 ‘좋은 성과‘ 앞에 데려다 놓았다.


사람은 다 자신이 경험한 딱 그만큼의 눈을 가지게 된다. 대학시절에 내가 용돈이라도 벌기 위해 학기 중에도 아르바이트를 놓지 못하고 진상 손님과 대거리를 할 때, 캐슬 공주는 어학연수를 떠나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모인 사교 파티장에서 와인잔을 부딪혔다. 내 몸과 마음이 터미널에 붙은 허름한 음반가게 갇혀 있는 사이, 캐슬 공주는 글로벌 인재로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그 경험의 차이는 시야의 차이로, 시야의 차이는 생각의 차이로, 생각의 차이는 성과의 차이로 드러났다.


그러던 어느 날 모두가 사랑했던 그녀, 캐슬 공주가 다른 팀으로 발령이 났다. 그녀의 능력을 알아본 부장님은 새로 꾸리는 TF팀으로 캐슬 공주를 모셔가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녀와의 송별회를 하던 밤, 캐슬 공주가 비어 있는 내 잔에 술을 따라 주며 말했다.


너무 애쓰면서 살지 마.
힘들잖아...
몸도 챙기면서 해...


나는 안다. 캐슬 공주의 말에는 악의가 1도 없다는 사실을. 그저 몸을 사리지 않고 일하는 나를 향해 직장 동료가 할 수 있는 걱정과 위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더 높은 곳을 향해 훨훨 날아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격한 응원의 박수를 치며 생각했다.


내가 몰랐네. 아니 인정할 생각이 없었네.

세상은 원래 공평하지 않다는 .”


많은 사람들이 ‘공평‘, ’ 평등‘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피를 흘리는 이유는 ’ 세상의 저울‘은 원래 늘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힘과 노력을 통해 세상의 저울을 평평하게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그 세상의 진리를 늦게나마 인정한 후에야 내 안에서 용암처럼 들끓었던 세상을 향한 분노와 원망이 사그라들었다. 세상이 공평할 거라는 덧없는 희망을 지웠다. 내 열심히 부족해서 생긴 결과라고 자책하고, 스스로에게 더 가혹하게 채찍질하는 일을 멈췄다. 그러고 나니 내 삶에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잔잔한 평화와 진정한 고요가 찾아왔다.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쌓은 투혼과 헝그리 정신이 대접받는 시대는 애초에 끝났다. 지금은 브런치를 먹으며 누린 여유와 낭만을 더 가치 있게 여기는 시대다. 우리는 ‘악착같음’은 ‘열심’이 아닌 ‘구질구질함’으로 해석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대신 ‘힘을 뺀 유연함이 강함을 이긴다’는 새로운 진리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몸과 마음에 느슨한 여유와 탄력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쉽게 무너지지 않고, 또 엎어질 지라도 금세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다.


캐슬 공주와 나의 인연은 딱 거기까지였다. 같은 업계에서 일하고 있지만 그 후 오며 가며 한 두 번 스치듯 안부 인사를 나눈 게 전부다. 얼마 전, 그녀는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건너 건너 들었다. 어쩌면 이제 ‘공주‘보다 ’ 여왕‘이 더 어울릴 위치가 된 그녀. 심성이 곱고, 유능했던 캐슬 공주에게 걸맞은 해피엔딩이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난 여전히 세상을 원망하며 지냈을 거다. 편협했던 나를 구원해준 ’ 캐슬 여왕’에게 이 글을 통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언제나 보는 사람마저 행복하게 만드는 ’캐슬 여왕‘의 환한 미소가 영원하길 빈다.


매거진의 이전글 좋아했던 음식점의 맛이 변했을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