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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Mar 26. 2020

‘가난’이 송곳처럼 튀어나올 때

합리적 소비자인 줄 제대로 착각한 실패 회피 주의자의 고백


2016년 11월부터 함께 해온 나의 오랜 친구, 스마트 폰이 이상 신호를 보냈다. 이어폰을 끼고 몇 걸음 걸으면 툭 하고 이어폰 잭이 빠졌다. 고무줄이 늘어난 팬티처럼, 조임이 하나도 없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충전을 할 때야 고정을 하고 있으니 문제가 없었는데 외부에서 이동하며 음악을 듣거나 동영상을 볼 때면 시도 때도 없이 빠졌다. 자꾸만 탈출하는 이어폰 잭 때문에 음악에도 영상에도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아픈 그 녀석을 데리고 A/S 센터를 찾았다. 수리 담당 직원이 내 오랜 친구의 이곳저곳을 세심히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오래된 녀석 치고 관리를 잘하셨네요...

근데 부분 수리가 불가한 부분이라

전체 수리하면 44만 원 나오겠네요.” 


처음엔 귀를 의심했다. 44만 원... 44만 원... 흔들리는 동공을 애써 감추며 금액을 조용히 반복해 읊조렸다. 반쯤 정신이 나간 나를 간파한 직원은 위로의 말을 건넸다.


“아무래도 수리보다는 조금 더 쓰시다가 새로 사시는 게...

오늘은 점검만 한 거니까 별도의 수리비는 없습니다.”


직원은 웃고 있었지만, 그가 말한 금액을 듣고 난 결코 웃을 수 없었다. 직원은 친절했지만, 그가 내뱉은 금액은 결코 친절하지 않았다. 44만 원. 예상치 못한 황망한 숫자 공격에 한동안 얼떨떨했던 나는 겨우 정신을 붙잡았다. 그리고 직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후 ‘고맙다’고 인사를 한 후 A/S 센터를 나왔다. 국내 스마트폰 이용자의 평균 교체주기가 2년 8개월이라는데, 그 이상 썼으니 이 친구도 기대 수명 이상 버텼다. 하지만 난 아직 내 오랜 친구를 보낼 마음도, 여력도 없다.


요즘 삶의 모토가 그야말로 ‘존버’다. 코로나 19의 여파로 준비하던 프로젝트가 올 스톱됐다. 언제 다시 프로젝트가 재개되리라는 기약도 없고, 보장도 없다. 많은 프리랜서들처럼 나 역시 끝이 보이지 않는 보릿고개를 버티기 위해 한껏 허리띠를 졸라매는 생활을 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 44만 원이라는 계획에 없던 지출은 적지 않은 타격이 된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안갯속을 걷는 상황에서 (물론 약정 할부겠지만 불필요한) 목돈 지출이 필요한 스마트 폰을 무작정 바꿀 순 없다. 이어폰 잭 부분을 제외하면 내 오래된 친구에게 별다른 문제는 없다. 작년 초 배터리를 교체했기 때문에 쌩쌩하다. 메모리 용량도 넉넉하고, 속도도 빠르고, 무엇보다 손에 익은 그 사이즈와 매뉴얼을 바꾸고 싶지 않았다. 이 친구가 생을 다할 때까지는 내가 먼저 손을 놓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삶은 변수X변수X변수와의 싸움이다. 난 방법을 찾아야 했다. 지금까지 유선 이어폰을 사용하고 있었고, 이 이어폰이 망가지면 다음번에는 무선 이어폰을 사야겠다 계획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일찍 유선에서 무선으로 갈아타기로 했다. 1순위는 역시나 사과 브랜드 계열의 공기 팟. 수리비 44만 원 보다야 저렴했지만, 당장 다음 달에 입금될 돈이 미지수인 상태에서 선뜻 결제 버튼을 누르기 어려웠다. 결국 다시 검색창에 #가성비, #무선_이어폰이란 단어를 쳐 넣었다. 오랜 검색 끝에 무선 이어폰 입문자에게 제격이라는 ‘대륙의 실수’ 타이틀을 단 무선 이어폰을 손에 넣었다. 단 돈 몇만 원에 지난 몇 주간의 고민을 해결했다. 이 과정 속에 이렇게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케케묵은 ‘가난 
주머니  송곳처럼 
불쑥 튀어나오는구나!


정확히는 가난한 자의 습관이 불쑥 튀어나왔다. 카페에 가서 생각 없이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려다가도 몇 백 원 저렴한 <오늘의 커피>를 주문하며 생각한다. 맛에는 큰 차이 없잖아? 마트에서 이런저런 물건을 고르다가 결국 집는 건 PB상품. 그리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제조사가 같으면 질에는 큰 차이 없잖아?

 

물론 난 끼니를 걱정할 만큼 절대적 빈곤은 아니다. 가난이란 언제나 상대적이다. 100만 원을 가진 사람은 101만 원을 가진 사람보다 가난하다. 가난하지 않은 사람은 가난한 사람보다 더 많은 선택권을 갖는다. 내 선택권 안에 <공기 팟>과 <은하수 버즈>와 <대륙의 실수> 중 하나를 고르는 것과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대륙의 실수>를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은 다르다.


비싸다고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고, 싸다고 나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싼 건 싼 이유가 있고, 비싼 건 비싼 값을 한다. 그래서 결제 버튼을 누르기 전, 오랜 시간 블로그의 후기들을 뒤지고, 실구매자의 상품평을 정독하고 가격비교를 한다. 실패의 확률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통장도 마음도 가난한 자의 발버둥이다.


무언가를 사야 할 때, 난 꽤나 신중한 편이다. 가격, 성능, 활용도, 내구성, 성분, 디자인, 만족도, 브랜드의 도덕성 등등 수많은 항목에 OK 사인이 떨어진 끝에야 굳게 닫힌 지갑이 겨우 열린다. 편의점에서 젤리 하나를 고를 때도 가격 대비 양은 적절한지? 유해한 성분이 많이 들어간 건 아닌지? 경쟁 제품에 비해 나은 점이 1개라도 더 있는지? 꼼꼼히 살핀다. 그게 합리적 소비인 줄 알았다. ‘프리미엄’, ‘골드’란 이름이 붙여 번드르르하게 포장한 제품을 호기심에 집었다가도 ‘마케팅 상술로 현혹하는 것일 뿐이야’라고 스스로를 설득한 후 제자리에 내려놓는다.


마케팅의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은 내가 ‘현명한 소비자’에 한 발짝 더 다가간 것 같아 뿌듯한 기분이 차오르기도 했다. 현명한 소비자.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신중’이라는 이름으로 소모하는 시간 포함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불필요한 지출은 막았지만 대신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역시 세상 모든 일은 다 얻을 수도 없고, 또 다 잃을 수도 없다.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빠른 결제를 하는 사람은 ‘상암동 열린 지갑’이라는 별명을 가진 후배 M이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는 남는 물건이 없을 만큼 물욕이 충만한 친구다. 그녀의 쇼핑 스타일은 단순하다. ① 필요하다-> ② 꽂힌다 -> ③ 산다. 혹은 ① 예쁘다 -> ② 사야 할 이유를 만든다 ③ 산다. 딱 두 가지 패턴만이 존재한다. 금수저가 아니기에 새 물건을 얻은 대신 비어버린 통장 잔고를 채우기 위해 다시 부지런히 몸을 굴려 일을 한다. 일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다시 쇼핑으로 푼다. 우린 서로의 쇼핑 스타일을 이해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M이 부러웠던 적이 있다. 오래 고민하지 않고 쉽게 결제를 해서가 아니라, 실패한 쇼핑에 자책하지 않고, 재빨리 다음 쇼핑으로 넘어가는 그 담대함이 부러웠다. 많이 사봤으니 많은 실패를 맛봤지만, 또 그만큼 성공을 맛본 횟수도 많다. 난 실패를, M은 성공을 중점에 두고 쇼핑을 했다. 난 실패의 맛을 피하기 위해, M은 성공의 맛을 보기 위해 쇼핑을 한다. 쇼핑에 있어 실패는 실패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실패라는 경험이 쌓이면 좋은 물건을 고르는 눈과 자신감이 차오른다는 걸 M과 함께 쇼핑하며 알게 되었다.


 ‘실패’라는 공포를 피하기 위해 스스로가 만든 지독하고 복잡한 검열이 싫고 귀찮아 쇼핑과 점점 더 멀어지는지 모르겠다. 문제는 이 성향이 쇼핑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가난이 만든 습관은 사람을 쪼그라들게 한다. 마음의 폭도, 생각의 크기도, 행동의 반경도 비좁게 만든다. 이런 성향이 차곡차곡 쌓여 날 도전을 회피하는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들었다. 그 악순환을 끊어야만 했다. 먼저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주머니 속 송곳처럼, 가난의 습관이 튀어나올까 전전긍긍하는 마음을 버렸다. 대신 실패보다 성공을 바라보며 조금 더 과감히 도전하고 또 부딪혀 보기로 했다. 그래야 ‘가난’이라는 주머니 속 송곳이 점점 뭉뚝해지다가 결국 닳아 없어질 테니. 그래야 회피하는 삶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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