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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Mar 16. 2020

코로나 19 시대에 대처하는 프리랜서의 자세

프리랜서와 코로나 19... 그리고 길고양이  


우리 가족은 내가 초등학생 때 이후로 반려 동물을 키운 적이 없다. 금붕어와 고양이 각 1번, 그리고 1~2번 강아지를 키운 게 전부다. 요즘 사람들처럼 신경 써서 애지중지 키웠던 것도 아니다. 그 시절 많은 가정들이 그랬듯 산책은커녕 집 한 귀퉁이에 묶어두고 잔반을 먹이며 키웠다. 해피, 방울이, 네로... 이름은 달랐지만 하나 같이 우리 가족의 부주의 또는 갑작스러운 병으로 녀석들을 떠나보냈다. 그 후 우리 가족은 더 이상 애완동물을 집에 들이지 않았다.


노령견(묘)이 될 때까지 오래 곁에 두고 키운 적이 없어서인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물의 노화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 귀여운 생김새가 평생 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새 나도 ‘늙는다’는 게 뭔지 아는 나이가 되어서 일까? 운동하러 나간 길에 주인과 산책하러 나온 강아지나 거리를 배회하는 길고양이의 얼굴을 볼 때면 생각이 많아진다. 수북한 털 사이로 얼굴에 세월이 묻어나는 노령견(묘)을 볼 때면 “이 친구... 아니지 이 어르신도 몸 여기저기가 쑤시는 나이겠구나” 짐작한다.


푸석한 털, 흐릿한 눈빛, 느릿한 걸음, 무덤덤한 표정, 푸짐한 군살까지... 나이 든 인간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반면 어린 강아지나 고양이는 동글동글한 두상, 호기심 가득한 눈, 가벼운 몸놀림, 윤기가 반지르르한 털을 가지고 있다. 역시나 나이 어린 인간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다. 똥꼬 발랄한 녀석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입가에 미소가 절로 스민다.


사람보다 더 야무지게 옷을 챙겨 입고 개모차에 앉아 산책을 즐기는 반려견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아무리 나이 든 개라도 주인이 애지중지 보살핌을 받는 개들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그 안에서 여유와 편안함이 느껴진다.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바깥공기를 마시며 산책을 하는 노견의 얼굴에서는 여유를 넘어 해탈한 성인(聖人)의 자애로움까지 풍길 정도다.


반면, 차가운 도시의 거리를 집 삼아 떠도는 길고양이들의 얼굴 안에는 삶의 고단함과 찌든 피로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작은 소음에도 부리나케 눈치를 보며 도망치는 길고양이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나 개에 비해 평균수명이 분명 낮을 수밖에 없는 팍팍한 삶을 산다. 개모차 안의 개들보다 훨씬 어린 나이일 텐데도 ‘생기’나 ‘여유’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느냐가 털의 윤기에서, 눈빛에서, 표정에서 드러난다.

그렇게 개와 고양이의 얼굴을 한 참 보고 난 후, 집에 돌아와 거울 앞에 섰다. ‘과연 나의 얼굴에는 어떤 흔적들이 남아 있을까?‘ 생각하며 천천히 내 얼굴을 살폈다.


관리와 사랑을 듬뿍 받은
반려견의 얼굴일까?
생존의 피곤함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길고양이의 얼굴일까?


몇 주 전, ‘코로나 19‘로 인해 준비하던 프로젝트가 올 스톱되면서 평소보다 잠도 많이 자고, 여유시간이 많아졌다. 내가 끙끙거린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기에 마음을 놓으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공간이 제한적이긴 하지만 평소 미뤄두었던 일들을 하나 둘 소화하며 여유롭지만 빈틈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말과 행동에 애써 여유를 채우고 있지만 1N년차 프리랜서의 얼굴 안에는 오랜 불안이 겹겹이 쌓여 있다.


분명 예전에 비해 동동거리는 마음도 사라졌고,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진리도 알아차린 지 오래다. 하지만 긴 야생(?) 생활이 남긴 뿌리 깊은 버릇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프리랜서는 자신의 몸을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그 누구도 입에 먹을 걸 떠 먹여 주지 않는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그대로 굶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길고양이처럼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뒤지든, 자애로운 캣맘들이 가져다주는 사료를 찾아 발품을 팔아야 한다. 여기저기 눈치를 보며 영역싸움을 하고, 비바람을 막아 줄 공간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원해서 얻은 자유로움은 아니지만 어쨌든 자유로움을 가진 대신 안락함과 여유는 포기해야 한다.


햇빛 따뜻한 오후, 재개발 지구의 낡고 오래된 주택 지붕 위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는 길고양이를 본 적 있다.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혼자 여유를 즐기고 있는 길고양이의 얼굴에서는 행복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한참 늘어지게 자다 일어나 기지개를 쭉 켜고 그루밍을 하는 길고양이를 한참 보고 있자니 길 생활이 마냥 애처롭기만 한 건 아니 아니구나 깨달았다. 적자생존의 법칙이 정직하게 적용되는 거리에서도 나름의 낭만과 여유는 분명 존재한다. 그것을 스스로 챙기지 않으면 그 누구도 채워주지 않는다. 지붕 위의 길고양이는 그 진리를 온몸으로 내뿜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폭주하고 있는 ‘코로나 19’의 여파는 최소한 상반기까지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 걸음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안갯속의 날들을 계속되고 있다. 불안한 마음이야 예외 없이 모두 똑같을 것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의 문제 때문에 머리 싸매고 고심하는 일을 멈추기로 했다. 그 누구도 보호해 주지 않는 길고양이를 닮은 프리랜서라는 나의 태생은 바뀌지 않겠지만 의식적으로 마음이라도 달리 먹기로 했다. 지붕 위의 길고양이처럼 내 몸과 일상을 가다듬는 마음의 여유를 챙길 것이다.  스스로 챙기지 않으면  누구도 챙겨주지 않는다는 프리랜서 삶의 진리는 ‘뿐만 아니라 ‘여유에도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지붕 위의 길고양이처럼 따사로운 햇빛 아래에서 마음껏 뒹굴 거리며 바닥났던 에너지를 채워갈 것이다. 그렇게 뒹굴거리다 보면 언젠가 이 지긋지긋한 ‘코로나의 시간‘도 끝이 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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