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리빙 포인트 : 언제나 어디서나 방법은 있다
부모님과 함께 베트남 남부에서 중부로 이어지는 열흘 간의 자유 여행을 할 때였다. 베트남전 참전용사였던 아빠님의 칠순 기념 여행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을 아빠님 위주로 짰다. 먹는 낙으로 살지만 입이 짧은 아빠. 호텔 조식을 좋아하시는 아빠님을 위해 조식 뷔페가 괜찮다는 호텔로 골랐다. 군 시절에도 안 드셨다는 베트남 현지 음식을 대신해 하루에 한 끼는 한식을 먹었고, 저렴한 열대과일도 마음껏 먹었다. 그런데 아빠님의 장쪽에서 도무지 와야 할 소식이 오지 않았다.
여행 6일 차, '달랏'이란 도시에 온 지 2일째였다. 여행 중반쯤 되자 괴로움을 호소하신다. 베트남에 온 후로 볼일(?)을 제대로 시원하게 보신 적이 한 번도 없다신다. 동남아니까 물갈이를 할까 봐 지사제는 챙겼는데 변비약은 챙기지 않았다. 평소에 배변 활동에 문제가 있거나 그런 분이 아니셔서 따로 챙기지 않은 것이 패착이었다. 그래서 공복에 땅콩+물, 유제품 등 쓸만한 민간요법은 다 썼다. 하지만 도무지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갈수록 아빠는 예민해지셨고 이 상황을 지켜보는 엄마와 나는 살얼음 위를 걷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참다못한 아빠는 결국 아빠는 결정적인 한마디를 하셨다.
난 잠시 당황했다. 변비가 영어로 뭐지?? 얄팍한 영어지식 회로에 한계가 감지됐다. 우리가 머물고 있던 그곳은 우리나라로 치면 태백 정도의 베트남 시골 고산 도시다. 나는 현지어는 물론 영어도 그다지 능숙한 편이 아니었다. 겨우 짧은 몇 마디의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정도. 여기서 어떻게 변비약을 사지?? 고민하다가 호텔 프론트로 가서 여자 직원에게 더듬더듬 영어로 말했다. “아빠가 아프다. 약이 필요하다.”그리고 배를 살살 문지르며 결정적인 한마디 했다. 주저앉아 "끙~" 힘을 주는 포즈를 취하고 “No poo”!! 부끄러움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하지만 아빠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게 최선이다. 수줍게 웃는 그녀에게 몇 마디 더 했다. “약국에 갈 거야. 베트남어로 약 이름을 써줘.” 그녀는 이제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다는 표정을 짓고는 메모지에 베트남어로 무언가를 써줬다. 그 종이를 들고 호텔 근처의 약국에 가니 약사는 바로 약을 내주었다.
한겨울, 병든 아버지를 위해 전설의 약초를 구하러 떠났던 전래동화 속 효녀에 빙의해 변비약을 소중히 가슴에 품고 호텔로 돌아왔다. 아빠는 내가 손짓 발짓해서 사온 변비약을 드셨고, 반나절쯤 후에 그리도 그리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지금도 미스터리인데 그 약이 진짜 효과가 있었는지, 아니면 밀어내야 한다고 한식집에 가서 삼겹살을 구워 먹은 게 효과가 있었던지 여하튼 아빠는 변비 탈출에 성공했다. 예민하고 까칠했던 아빠는 쾌변의 기쁨을 맛본 후 아빠의 컨디션은 다시 정상 궤도로 올라왔다. 지금 돌이켜 보면 말도 안 되는 영어와 바디 랭귀지로 그 시골에서 변비약을 샀다는 게 웃기고 또 신기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베트남 여행을 돌이켜 볼 때, 가장 큰 웃음 포인트였던 사건이었다. 그때의 사건을 이야기하면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는 큰 웃음이 터진다.
여행은 늘 변수와의 싸움이다. 어떻게 해결하지 싶은 상황들도 결국엔 결판이 난다. 언제나 어디서나 방법은 있다. 그 사실만 잊지 않는다면 여행은 언제나 즐거운 추억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