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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Jun 15. 2020

엄마의 노래

음치 엄마를 둔 딸의 진짜 속마음

우리 엄마는 음치다. 엄마의 노래는 가사도, 음정도, 박자도 뭐든 마음대로다. 엄마는 주로 혼자 마늘 까기나 설거지 같은 단순 반복인 집안일을 할 때 흥얼흥얼 노동요를 부른다. 몇 해 전, 갱년기 우울증이 올까 걱정했던 작은언니가 처음 노래 교실을 끊어 준 이후, 일주일에 2번 노래 교실에 출석한다. 입안에서만 흥얼거리던 노래가 노래교실에 다니게 된 이후 한층 종류도 다양해지고 자신감도 차올랐다. 수년 동안 노래 내공이 쌓여서인지 코로나 사태 여파로 노래교실 수업은 취소됐지만 엄마의 노래 세계는 여전히 깊고 넓다.


많은 중장년층 어머니들처럼, 엄마도 코로나 블루를 [ 미스터 트롯 ] 청년들의 구성진 노래, 샤방한 미소와 재롱으로 위로받았다. 같은 지붕 아래 사는 무뚝뚝한 자식들 보다, TV 속 남의 아들들이 훨씬 큰 효도를 했다. 일주일에 두 번, 월요일 밤 [ 가요무대 ]와 일요일 낮 [ 전국 노래자랑 ]을 할 때만 TV 앞에 머무르던 엄마. 이제는 밤이고 낮이고 수 없는 많은 채널과 시간에 재방송되는 [ 미스터 트롯 ]을 시청하며 청년들이 가슴 절절하게 부르는 트롯을 따라 부른다.


코로나 19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 나는 방문 틈 사이를 넘어오는 엄마의 노래를 BGM 삼아 지낸다. 엄마는 흥이 오르면 성량이 커져 내가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아도 엄마의 의도하지 않은 노래 공격을 피할 수 없다. 문제는 집중해서 일을 해야 할 때다. 아무리 정신을 모아도 손바닥만 한 집안에서 엄마의 노랫소리를 피할 곳은 없다. 울컥 짜증이 나 ‘노랫소리 좀 낮춰 달라’고 날 선 감정이 섞인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하지만 결국 내뱉지 못하고 다시 삼킨다. 엄마의 노래실력이 늘어서도 아니고, 엄마의 노랫소리가 작아져서도 아니다. 엄마의 음정도 박자도, 가사도 엉망인 노래를 그리워하는 날이 올 수도 있겠다는 서늘한 생각이 들어서다.


언젠가 엄마가 부르는 노래를 들을 수 없는 곳으로 엄마가 떠나 버리면 난 분명 후회할 거다. 그때 왜 엄마의 노래를 막아섰을까? 그 음정 좀 틀리고, 가사 좀 헷갈린 노래가 뭐라고...라는 생각을 할까 봐. 그래서 언젠가 그리워할 엄마의 노래를 묵묵히 듣기로 했다. 질리도록 듣기로 했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은 할머니가 된 엄마의 날들. 먹고살기 바빠 자신을 꾸미는 일이나 유흥을 즐기는 일을 평생 모르고 살았던 사람이다. 엄마라는 사람의 즐거움은 우리 사 남매가 배곯지 않고, 아프지 않고, 사건 사고에 휘말리지 않고 남들만큼만 사는 걸 지켜보는 일이었다. 그래서 연골이 닳아 없어지도록 숨 가쁘게 달려왔고, 이제 겨우 한숨 돌릴 틈이 생겼다. 하지만 몸 이곳저곳이 망가져 멀리 여행을 떠나거나, 몸을 격하게 쓰는 운동을 할 수도 없는 엄마. 자리에 앉아 목청 높여 노래를 부르는 게 유일한 낙인 소박한 사람이다. 평생 돈 버는 일, 자식 키우는 일만 알았던 엄마가 노래를 통해 인생의 즐거움을 하나 더 알게 됐다.


남들이 뭐 라건, 지가 잘 나서 큰 줄 아는 망할 딸년이 표정을 구기던 다 무시하고 엄마의 노래가 오래오래 이어지길 바란다. 늘그막에 찾은 엄마 인생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길 빈다. 엄마의 노래가 조금, 아주 조금 더 나아지면 엄마 몰래 녹음해 둬야겠다. 분명 끝이 있을, 그래서 그리워할 엄마의 노래를 오래 간직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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