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앞에서 머뭇거리는 프리랜서에게
살다 보면 수없이 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1분 1초가 빠듯한 출근길, 저 멀리 초록불이 깜빡이는 신호등을 보며 뛸 것인가? 말 것인가? 변동 사항 보고는 지금 당장 할 것인가? 아니면 점심 식사 후 부장님의 날카로운 심기가 한층 누그러졌을 할 것인가? 점심 메뉴는 짜장을 먹을 것인가? 짬뽕을 먹을 것인가? 퇴근 후에는 바로 집에 갈 것인가? 아니면 운동을 하고 갈 것인가? 매 순간 선택의 갈림길 앞에서 심사숙고한다. 나의 선택은 늘 그랬다. 더 좋은 최선의 선택보다 덜 후회할 선택을 했다. 어차피 내가 가지 않은 길이 더 평탄하고 쉬워 보인다. 어쨌든 후회를 할 테니 덜 후회하는 쪽을 택하는 버릇이 있다.
두 개의 선택지가 있으면 꼭 둘 중 하나만 택해야 하는 줄 알고 평생을 살았다. 그런데 모든 일이 그렇게 흑과 백처럼 명확하게 갈리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프리랜서인 나는 일의 성수기라고나 할까? 종종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일이 몰려들 때가 있다. 누구나 인정하는 멀티플레이형 인간이었다면 모두 OK를 하겠지만 난 그런 성향이 아니었다. 양쪽에 폐를 끼칠까 봐... 또 눈치 보는 게 싫어 늘 한쪽 일을 선택해 올인했다. 그게 그때까지의 내 기준에는 덜 후회하는 선택이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본 절친 B는 한마디를 던졌다.
“아니 왜 하나만 택해야 해?
그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네가 네 기회를 걷어찼네.
프리랜서인 우리에게 선택은 사치야!
우리는 선택당해야 먹고살 수 있어.
우선 들어오면 다 한다고 해!”
처음 들었을 때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능력 밖의 일을 꾸역꾸역 붙잡고 있는 건 욕심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물음표 가득한 얼굴의 나를 붙잡고 동종업계 종사자인 그녀는 차근차근 설명해 나갔다. B의 단호함에 한 방 제대로 얻어맞았다.
늘 그랬다. 프로젝트의 키를 쥐고 있는 '으르신들'은 출발선에서는 항상 확신에 차 당당히 말했다.
걱정 마! 절대 안 엎어져
하지만 변수가 넘치는 업계에서 하루아침에 프로젝트가 생기기도 하고, 또 없어지기도 한다. 절대 엎어지지 않는다는 확신에 찬 선장의 말은 맞았다. 침몰하진 않았지만 배의 사이즈는 축소되고, 돛은 너덜너덜해지고, 처음 계획했던 항로와 정반대의 항구에 정박하기도 했다. 늘 그렇게 지긋지긋한 변수가 그림자처럼 따라붙었고, 돌발 상황이 늘어날수록 마음도 깎이고 페이도 깎였다. 내 능력이나 열심, 올인 여부와 관계없이 상황은 제멋대로 흘러가고, 늘 예상 밖의 당황스러운 결과를 내게 안겨줬다.
그 누구도 원하지 않은 결과가 안겨준 배신감에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져 업계를 떠나려고 발버둥 친 적도 있다. 하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 다시 돌아와 밥벌이를 해야 했다. 나의 헌신은 자기만족이었을 뿐, 헌신짝 취급당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고 B의 말을 실천에 옮겼다.
제안은 언제든 대환영! 가성비 좋은 일꾼이 여기 있습니다. 날 쓰세요!
진지함을 가득 담아 궁서체로 쓴 플래카드를 마음에 대문짝만 하게 걸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걸려 오는 일 프러포즈에 'YES'로 응대했다. 잘 모르는 분야, 자신 없는 분야는 완곡하게 거절했던 내가 ‘YES 머신’이 됐다. 다만 앞서 제안했던 일과 조율이 가능하다면 할 수 있다고 먼저 양해를 구했다. 절대 조율의 여지가 없는 일이 아니라면 대부분 이해를 해줬고 동시에 병행이 가능하도록 스케줄을 조정해 줬다.
역시 그랬다. 적어도 프리랜서 세계에서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기회가 한 번 더 온다. 오랫동안 멈춰 있던 고사양의 기계 보다, 저사양이라도 크건 작건 꾸준히 현업에서 짬을 굴린 기계를 선호한다. 한동안 멈췄던 기계는 제 아무리 고사양이라도 정상 컨디션이 돌아올 때까지 부팅 시간도 오래 걸렸고 구석구석 기름도 쳐줘야 해야 한다. 반면 아직 잔열이 남아 있는 저사양의 기계는 굳이 기름을 치지 않아도 금세 일의 패턴을 읽고 결과물을 냈다. 거절하지 않는 사람에게 기회는 다시 왔고, 조금 더 몸값을 올려 일을 이어갔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한 연차가 아니었다. 잘하는 게 중요한 ‘짬’이 찬 연차라는 걸 그제야 알게 됐다. 최선을 다하지 못할 상황이 오는 게 싫어 건넸던 ‘거절‘은 프리랜서인 나의 가치를 스스로 깎아 먹는 일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중국집에 가면 짬뽕을 먹을지, 짜장면을 먹을지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다. 지갑과 위장의 능력이 허락하면 두 개 다 먹으면 되는 거고, 둘 다 허락하지 않으면 짬짜면을 택하면 되는 거다. 선택의 기로에서 꼭 하나만 택해야 한다는 어리석은 생각과는 영영 안녕했다. 능력이 허락한다면 둘 다 선택하는 게 꼭 욕심이나 민폐는 아니다. 적어도 이 세계에서는. 내가 나를 챙기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나를 챙겨주지 않는 냉정한 프리랜서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또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