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지냈던 사람이 불쑥 튀어나올 때
인터넷 쇼핑몰에서 여름 양말을 주문했다. 며칠 후 택배가 도착했고, 상자를 뜯으려다 배송장이 눈에 들어왔다. 보낸 곳은 집에서 멀지 않은 지역이었다. 그런데 주소가 낯설지가 않았다. 혹시나 하고 지도 어플을 켜서 주소를 찍어 넣으니 내가 아는 곳이었다. 바로 몇 해 전, 절친 목록에서 지웠던 친구 A의 친정집. 열여섯 살의 토요일마다 라면을 끓여 먹고 뒹굴거리던 그 집이었다.
혹시 나의 착각일까 싶어 재빨리 절친 B에게 상황을 공유했다. B의 기억에도 그 주소는 A의 집이 확실하다고 했다. 나는 SNS를 하지 않아 몰랐지만 B는 이미 알고 있었다. A의 SNS를 통해 몇 해 전 그녀의 남동생이 아빠의 양말 공장을 물려받았다는 걸. 가업을 잇게 된 젊은 피, 남동생이 사업 확장을 위해 온라인 쇼핑몰을 오픈한 게 아닐까 추측했다.
우리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중학생이었던 A의 남동생. 그 까까머리 밤톨군이 자라 대학생이 되고 군대를 가고, 결혼해 가장이 되는 과정을 모두 보고 들었다. 시끄럽게 몰려다닌다며 눈을 흘기며 보던 누나 친구들 중 하나였던 나. A의 남동생도 나의 존재를 분명 알고 있다. 직접 택배 송장을 관리하면서 조금만 신경 써서 집주소와 이름을 매치했다면 날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남동생이 A에게 내가 주문자 이름에 있었다고 전했을지 아닐지는 장담할 수 없다. 어쨌든 남동생의 진취적인 비즈니스 능력 때문에 나는 잊고 있던 A의 존재를 떠올리게 됐다.
고등학교 입학 첫날, 같은 반 교실의 앞 뒤 자리에 앉은 걸 인연으로 4명의 친구는 소위 말하는 단짝이 되었다. 매일 함께 점심을 먹고, 몰려다니며 시답잖은 수다를 떨었다. 정오면 수업이 끝나는 토요일이면 교문을 나와 A의 집으로 향했다. 여고생 네 명의 품 안에는 늘 여섯 봉지의 라면이 있었다. 그게 그 시절 우리들만의 암묵적인 룰이었다.
멀끔한 신축 건물 1층에는 A의 아빠가 운영하시는 양말 공장, 2층에는 A네 가정집이 있었다. 1인당 1.5인분의 라면을 마시다시피 넘기고 A의 방에 몰려갔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침대에 이곳저곳에 널브러졌다. 함께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보며 꺅꺅 소리를 지르거나 빌려온 비디오를 봤다. 그게 지루하면 돈 모아서 산 잡지에서 각자 좋아하는 스타가 나오는 페이지를 나눠 가지며 대학생이 되면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 상상했다. 그렇게 단발머리 소녀들은 함께 어른이 되었다.
우리는 많은 ‘처음’을 함께 했다. 수학여행 때 선생님 몰래 소주 컬렉션을 챙겨가 마시기도 했고, 수능이 끝난 후 함께 손을 잡고 처음으로 귀를 뚫으러 갔다. 교복을 벗고 어수룩한 대학 새내기가 되어도 우리는 꾸준히 만났다. 각자의 연애 흥망성쇠를 지켜보기도 했고, 첫 직장에 들어간 후 사회생활 초년병의 아픔과 괴로움을 술잔을 기울이며 위로하기도 했다. A는 내 인생의 수많은 ‘처음‘을 가장 가까이서 목격한 친구 중 한 명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고등학교 때 친구가 평생 친구가 된다고 말한다. 우리도 그런 줄 알았지만 이제는 예외가 되었다. 각자의 생활에 치이고,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생겼다. 오해일지, 실망 일지 모를 감정들이 쌓이고 서서히 관계에는 균열이 보였다. 아무리 바빠도 연말에는 하루는 시간을 내서 서로의 마음을 나눴던 우리. 몇 해 전부터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 사이가 됐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기분이 묘했다. 잊고 있던 A를 다시 소환하게 된 이 상황이 이상했다. 솔직히 A와의 관계에 끝이 보였을 때 딱히 서운하지 않았다. 원망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더 이상 보는 일은 없겠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별 탈 없이 잘 살길 바랄 뿐이었다. 그게 이제는 빛바래긴 했지만 ‘친구’라는 이름을 붙여 만났던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런데 내 인생에 지운 사람라고 생각했던 A가 깜빡이도 안 켜고 불쑥 들어오다니...
‘영원‘한 건 없다는 걸 알게 된 지 오래다. 모든 관계에 시작이 있으면 언젠가 끝이 나게 마련이다. 그 끝이 가깝거나 혹은 멀거나 시기의 차이일 뿐. A처럼 내 인생에 오래 머무를 줄 알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사라져 간다. 그들이 떠나간 자리에는 새로운 사람이 채운다. 이제 시간의 두께가 얼마만큼 쌓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의도하던 그렇지 않던 많은 사람을 떠나보내고, 또 맞이하면서 관계의 유효기간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서로가 얼마나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지, 그리고 표현하는지에 따라 그 관계의 수명은 달라진다. 한쪽이 아무리 악착같이 붙잡고 늘어져도 한쪽에서 관계의 끈을 놓으면 그 사이는 금세 균열이 생긴다. 금이 생긴 관계는 아무리 강력한 접착제로 붙이려 해도 결국은 끝나게 마련이다. 만남도 양쪽의 합이 맞아야 하듯, 이별도 서로의 타이밍이 맞았을 때만 가능하다. 서로 함께 손을 놓았기 때문에 우리의 관계는 끝날 수 있었다. 얼굴 붉힘도, 가슴을 할퀴는 말도, 함께 해 온 시간을 부정하는 일도 없이 자연스럽게.
이제는 서로에게 지워진 사람이 된 A와 우리. 관계의 유효기한은 끝나버렸지만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건, A의 삶이 늘 행복하길 바란다. 그게 이제는 흐릿해졌지만 ‘친구’라는 이름으로 인생의 반 이상을 함께 했던 내가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