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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Jul 02. 2020

칭찬은 바닷물과 같아서

내가 택한 건강한 칭찬 활용법

처음, 그 유명한 프랑스 니스 해변에 도착하자마자 지구 반대편에서부터 준비한 의식을 거행했다. 영화 <기생충>의 기택 씨네 아들만 계획이 있는 게 아니다. 나도 다 계획이 있었다. 파리는 그저 거들뿐, 프랑스 여행의 꽃은 비로소 니스에서 만개했다. 내 경건한 의식(?)을 지켜보던 여행 메이트는 웃다 못해 해변 자갈 위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동양에서 온 두 여행자의 기괴한 웃음소리에 반나체 관광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에게 쏟아졌다.   


순식간에 우리를 니스의 인싸로 등극시킨 거사(?)란 바로 ‘지중해의 바닷물을 직접 손가락으로 찍어 맛보는 것!’ 사실 프랑스 여행도 ‘지중해의 바닷물도 짤까?’ 이 궁금증에서 출발한 거였다. 지중해(地中海). 이름 그대로 다른 바다와 연결되어 있지 않고 육지로만 둘러싸인 바다라니... 한국에서 온 지리 덕후의 엉뚱한 호기심에 불을 지핀 지중해의 물맛은 짰다. 정신이 번쩍 들게 짰다. 수천만 년 전, 지각 변동으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지중해는 여전히 소금기를 품고 있었다. 그것도 가득. 지중해 바닷물 맛을 보고 찌그러진 깡통 같은 얼굴을 한 나에게 입 헹굼용 생수를 건네던 여행 메이트는 말했다.


꼭 그렇게 찍어 먹어봐야 알겠어?
바닷물이 짠 걸?


이 소금기 때문에 바닷물은 식수가 될 수 없다. 바닷물이 우리 몸에 들어가면 염분을 희석하기 위해 오히려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하다. 그래서 바닷물은 마실수록 더 갈증을 느끼고 탈수 현상도 심해진다. 이게 반복되면 결국 목숨까지 잃게 된다.


언젠가부터 칭찬이 바닷물처럼 느껴졌다.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이 나는 바닷물처럼 칭찬 역시 들으면 들을수록 더 좋은, 더 많은 칭찬을 듣고 싶어 졌다.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는지, 내가 택한 이 결정이 옳은지 확인받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지금 내가 잘하고 있다고, 충분히 괜찮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모든 인간에게는 인정 욕구가 있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한다. 또한 자기가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느끼고 싶어 한다. 주위 사람들에게 ‘진정한 인정과 아낌없는 칭찬’을 받고 싶은 건 인간의 공통된 마음이다.  


나만 보는 일기가 아닌, 누군가가 보게 될 글을 쓰다 보면 서서히 알게 된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주제와 표현이 무엇인지. 어떨 때 외면받고, 어떨 때 선택받는지. 조회 수, 좋아요, 댓글을 비롯한 여러 반응이 그걸 증명한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아닌, 칭찬이 보장된 안전한 지름길로 가려고 요령을 피운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마음이 헛헛할 때일수록 칭찬이 고프다. 내 이야기를 쓰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쓰자고 시작하지만 결국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 사람들이 원하는 결론으로 마무리될 때가 있다. 그런 글은 마침표를 찍고서도 영 개운치 않다. 그 칭찬을 의식하다 보면 결국 내 글도 아니고,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애매한 글이 되고 만다.  


글뿐만 아니라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칭찬받고 싶어서 사는 삶은 내 것도, 그 누구의 것도 아닌 한 공중에 붕 뜬 인생이 되고 만다. 칭찬은 바닷물과 같아서 지금 당장 갈증은 풀어주지만 익숙해지면 서서히 나를 말라 죽인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핵심은 ‘조화와 균형’이다. 칭찬하는 건 상대방의 자유지만, 칭찬을 어떤 농도로 내 몸에 받아들일지는 내가 정할 수 있다. 내가 택한 기준은 ‘순간’이다. 칭찬은 받는 그 순간만 잠시 즐기고 흘려보내기로 했다. 비난 역시 받는 그 순간만 잠시 괴로워하고 흘려보내기로 했다. 칭찬에 취해 엉뚱한 길로 가지 않기 위해, 내가 정한 목표와 방향으로 제대로 가기 위해서. 나와 칭찬 사이에 아름다운 거리를 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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