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상 없이 볼륨 있는 삶을 위하여
나쁜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일이나 글이 생각처럼 안 풀릴 땐 손을 빗 삼아 머리카락 깊숙이 손가락을 집어넣어 쓸어 넘긴다. 흐트러진 집중력을 다잡을 때마다 튀어나오는 버릇이다. 큰 힘을 주는 게 아닌데도 손가락을 세워 한 번 훑을 때마다 서너 가닥의 머리카락이 빠진다. 노트북에 앞에 앉아 몇 시간이고 그렇게 머리(카락)를 쥐어짜다 보면, 앉은자리에는 떨어진 머리카락이 수북이 쌓인다.
계절, 노화, 습관 등등 각종 탓을 해봐도 머리카락이 빠지는 걸 막을 순 없다. 태어날 때부터 머리카락 자체가 얇고 힘이 없는 편이었다. 그래서 평생 뿌리 볼륨을 살리는 방법을 찾아 헤맸다. 불로장생의 약을 찾는 진시황의 마음으로. 볼륨 샴푸, 뿌리 볼륨 파마의 힘을 빌려 봤지만, 그 순간뿐이었다. 그러다 정착한 게 드라이다. 머리카락을 말린 후 드라이어로 스타일링을 할 때 뿌리 쪽에 신경을 쓰는 거다. 내 고민을 들은 담당 헤어 디자이너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핵심은 식히는 거예요!
열은 오래 주는 것보다 식히는 게 중요해요.
몇 년째 선생님을 봐왔지만 처음 보는 단호함이었다. 드라이로 열을 준 뒤 5~10초 동안 열을 식히는 일명‘ 뜸 들이기’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볼륨이 산다고 했다. 열을 머금고 유연해진 머리카락은 식히는 과정에서 모양이 고정된다. 열을 가볍게 주고 식히는 시간을 오래 주는 게 손상을 막고 오랜 시간 볼륨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했다.
선생님의 시범을 눈으로 저장한 후, 다음날 그대로 시도했다. 거짓말처럼 볼륨이 살아났다. 역시 전문가의 말은 피가 되고 살이 된다. 무작정 뜨거운 바람만 불어넣으며 볼륨이 살기를 바랐던 지난날의 내 방법은 총체적 난국이었다. 아무리 오래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어도 볼륨은커녕 힘없이 주저앉은 이유가 있었다. 난 그 중요하다는 ‘식히는 과정’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식힘의 중요성을 잘 몰랐다. 활활 불타오를 줄만 알았다. 화, 열등감, 욱, 분노, 복수심 같은 단어에 격하게 반응을 하며 열을 내고 살았다. 뜨겁게 달아오를 줄만 알았지, 어떻게 식혀야 하는지 몰랐다. 제대로 식히지 않아 힘없이 고꾸라졌다. 볼륨은커녕 폭삭 주저앉은 머리카락처럼. 뜨겁게 달아올랐을 때 제대로 식히지 않아 삶이 엉뚱한 모양으로 잡혀 버렸다. 다음번에 더 뜨거운 온도로 달려들어 잘못 잡힌 삶의 모양을 다시 잡아 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어느새 엉뚱하게 잡힌 삶의 모양 그대로 생각도 행동도 굳어가고 있었다.
헤어 디자이너 선생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식히는 데 온 정성을 다한다. 롤 빗을 바짝 모근 쪽에 대고 머리카락을 감은 후 드라이기로 뜨거운 바람을 잠깐 불어넣고 1, 2, 3, 4, 5... 천천히 숫자를 센다. 화와 분노로 마음에 뜨거운 불이 타오르는 게 느껴지면 드라이를 하며 열을 식히던 그 호흡으로 숫자를 센다. 1, 2, 3, 4, 5... 드라이 바람보다 뜨거운 바람이 콧구멍으로 뿜어져 나온다. 호흡을 내뱉으며 활활 타오르던 마음속 불길을 죽인다. 서서히 화도 식어가고, 머리의 열도 내려간다. 이너 피스, 마음의 평화는 제대로 ‘식히는 것’부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