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신변잡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사 Aug 06. 2020

NG투성이 내 인생

남들의 인생은 Good, 내 인생은 No Good


                     

NG 노굿 no-good

1. 좋지 않음.
2. 영화 연기, 연출, 기술 등이 의도한 것에 맞지 않아 촬영에 실패하는 일.
   또는 그때에 못 쓰게 된 필름.


아직 젖살도 다 안 빠진 얼굴의 소년이 TV에 나와 트로트 한 곡을 구성지게 부른다. 최소 인생 2회 차의 바이브. 이산가족의 아픔을 몸소 겪어 본 듯, 심금을 울리는 실력에 지켜보던 일흔이 코 앞인 엄마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어린 친구가 어찌 저리
가슴 절절하게 노래를 하지?
대단하네     


보송보송한 신동들의 성인 뺨치는 실력을 볼 때면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의 시간이 느껴져 물개 박수가 절로 나온다. 하지만 예전의 나는 지금처럼 쉽게 박수를 치지 못했다. 한 때, TV나 신문에서 비슷한 또래의 성공담을 보면 질투가 났다. 나는 왜 저렇게 못할까? 스스로를 다그쳤다. 그 나이에 쉽게 얻을 수 없는 돈과 명예를 거머쥔 그들의 성공담을 보며 그들과 나를 비교하곤 했다. 저 친구가 어떤 노력과 성장 과정을 거쳤는지는 스킵한 채, 그 결과만을 보고 부러워했다. 단지 나이만 같을 뿐 살아온 과정도, 성격도 다른 데도 결과에 나를 구겨 넣고 비교하며 자학했다. 남들은 한 편의 영화의 주인공처럼 드라마틱하게 잘도 풀리는데, 내 인생은 연신 NG투성이인 것만 같았다.      


그 시절, 내가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을 한 편의 영화라고 쳤을 때, 나는 남들의 편집과 보정을 거친 최종본만 것. 사실, <내 인생>이라는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어떤 NG를 내고, 어떤 후반 작업을 거쳤는지 세세하게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나의 24시간을 전부 알 수 없다. 아무리 속 허물을 터놓고 지내는 사이라도 내 마음이 어떤지 100% 이해하지 못한다. 혼자 고민하고, 노력하고, 시행착오를 겪는 시간은 대부분 자체 편집되고 비교적 멀쩡해 보이는 순간들만 세상에 내놓는다. 나 아닌 사람들은 내가 대사를 씹고, 동선이 꼬여 생기는 NG 컷은 거의 편집되기 때문에 볼 수 없다. 남들의 인생이 쉬워 보이고, 술술 풀리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타인의 성공은 저절로 박스 오피스 1위가 된 것처럼 쉽게 생각한다. 그저 캐스팅이 좋았고, 배급사가 빵빵하고, 홍보에 돈을 쏟아부었으니 얻게 되는 당연한 결과라고 여긴다. 하지만 우리는 그 황급 라인업의 캐스팅을 완성하기까지 들었을 노력, 치열한 경쟁 끝에 잘 나가는 배급사를 잡았을 수고, 밤새워 홍보 전략을 짰을 마케팅팀들의 무수한 밤은 알 수 없다. 누군가 하나의 성과를 이루기까지 그저 그냥 얻어지는 일은 하나도 없다. 알게 모르게 성공의 씨앗을 뿌려 놓고, 물을 주고, 비바람을 견뎌 내며 열매가 맺기를 기다린 결과다.      


제아무리 대단한 연기자라 하더라도 NG 한번 없이 영화 한 편을 완성할 순 없다. 내 능력이 아무리 출중해도 언제 어떻게 상황이 변할지 모른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질 수도 있고, 예정에도 없던 모래바람이 불어 닥칠지 모른다. 카메라가 갑자기 말썽을 부릴 수도 있고, 동물 배우가 계획처럼 컨트롤 안 될 수도 있다. 아무리 연기에 집중하려고 해도 상대방이 NG를 내면 영락없이 그 장면은 결국 NG 컷이 되고 만다. 나만 잘한다고 좋은 영화가 완성되는 것도 아니지만, 내 몫을 제대로 해내지 않으면 <내 인생>이라는 영화는 결국 ‘망작‘이 되고 만다.    

  

<내 인생>이라는 영화는 지금 전체 러닝타임 중 얼마나 지난 걸까?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기 전까지 얼마나 남아 있을까? 전반부에는 분명 삽질, 후회, 실망, 자학 등이 가득했다. 그 흑역사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지금은 안정, 만족, 여유를 느끼며 인생의 한 씬, 한 씬을 채워가고 있다. <내 인생>이라는 영화의 결말은 해피엔딩일까? 아니면 다른 결말일까? 그래 뭐가 됐던 엔딩 크레디트가 끝난 후 쿠키 영상으로 나올 내 인생의 [NG 모음]을 아쉬움이 아닌 편하게 웃으며 볼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 탓의 쓸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