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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Aug 03. 2020

남 탓의 쓸모

나를 쪼그라들게 만드는 ‘내 탓’

  

외모도, 성격도 명랑 만화 속 주인공을 꼭 닮은 후배 H를 처음 만난 건 몇 해 전 겨울이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해 모인 사무실에서 우린 처음 만났다. 둘 다 이 바닥 짬이 적지 않게 쌓여있으니 한 다리만 건너도 함께 아는 선후배가 여럿이었다. 이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해도 어쩌면 오며 가며 우리는 스쳤을 사이였다. 새 프로젝트를 통해 본격적으로 안면을 트고, 일을 시작했다. 공통분모인 사람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금세 ‘어색함의 벽‘을 깼다. 프로젝트 시작 전, 다른 사람을 통해 H에 대해들은 사전 정보는 딱 한 마디였다.   
    

“일은 전투적으로 하는데 늘 투덜거리는 사람”       


이런 H의 성향을 어느 정도 감안하고 일을 시작했다. 사전에 들은 대로 H는 불도저처럼 직진해 일을 처리했다. 하지만 그나마 팀 내에서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나에게만은 끊임없이 불평, 불만을 쏟아 냈다. 프로젝트 전체를 책임지는 대선배에게 하지 못하는 크고 작은 뒷담화를 숨 쉬듯 내뱉었다. 처음에는 사전 정보가 있었으니 어느 정도 감안하고 이해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프로젝트에 후반부로 갈수록 나도 힘들고 쫓기는 상황이라 매번 그녀의 불평불만을 들어주기가 벅찼다. 성향이 다른 우리가 함께 일하는데 꽤 큰 에너지가 필요했다. N극과 S극처럼 정반대의 성향인 우리가 함께 일하며 부딪히는 경우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H의 일하는 방식을 보며 배운 게 더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수확은 H가 몸소 보여준 ‘남 탓의 쓸모’다.    
   

많은 업종처럼 내가 몸담은 분야 역시, 프로젝트의 성공과 실패는 곧 숫자로 판가름 난다. 프로젝트 종료 후 마무리를 하는 최종 리뷰 회의에서 여러 숫자가 그간 우리의 노력을 눈에 보이는 수치로 평가한다. 우리의 시간과 열심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숫자’라는 예리한 칼로 토막 친다. 출발선에 선 사람들은 모두 성공적인 결과를 보고 시작한다. 하지만 현실은 모두의 ‘열심‘이 모여도 성공할까? 말까?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는 경우보다 그렇지 못한 결과를 얻는 게 허다하다. 그럴 때, 생각한다.      

그때, 내가 조금만 더 열심히 했더라면...
그때, 잠을 더 줄이고 나를 더 채찍질했더라면...
지금과 다른 결과를 얻지 않았을까?


‘자기 객관화‘가 생활인 나는 평생 내 탓을 달고 살았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발목을 부여잡고 구질구질하게 후회와 반성을 했다. 이런 자기 성찰의 시간은 앞으로 더 좋은 결과와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 된다고 귀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들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과거에 대한 분석과 반성 없이, 더 나은 미래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고 믿었다.      

하지만, 내 탓은 나를 점점 쪼그라들게 했다. 나 때문에 일이 잘못된 건 아닐까? 모든 결과의 화살을 나에게 돌리곤 했다. 내 딴에는 신중하게 고심했던 선택들이 누군가에겐 답답하고 쓸모없는 시간 낭비로 후려쳐질 때도 있었다. 성공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실패를 피하고자 나를 갈아 결과를 만들곤 했다. 쪼그라든 나는 점점 더 위축되고, 내가 기대하지 않은 결과가 내 손에 주어지곤 했다.       


잘되면 남 덕분, 망하면 내 탓 같았다.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과연 이 프로젝트의 성패를 좌우할 만큼 대단한 사람인가? 당연히 답은 No였다. 나는 일개 팀원 중 하나일 뿐.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한 책임자는 따로 있었다. 당연히 좋은 결과를 위해 힘을 쏟아야 하지만 딱 거기까지면 충분했다. 성과에 대한 보상은 보통 진두지휘한 책임자들의 몫이었다. 대부분의 팀원에게는 보통 술과 고기로 점철된 회식 시간이 돌아올 뿐이었다. 난 고기를 곁들여 술을 마시며 서로 그간의 노고를 위로하면 되는 일이었다.      

실패의 원인을 내 탓으로만 돌리는 건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모두 열심히 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나 한 사람의 노력이 부족해서 이런 결과가 나오진 않는다. 모두의 노력이 모였을 때 좋은 결과가 나오지만, 팀으로 일을 한다는 건 서로 보완과 시너지를 통해 더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보통의 조직원들은 개인 기록경기 종목의 선수들이 아니다. 팀워크가 중요한 단체 스포츠 선수들이다.        


어쩌면 H의 남 탓은 팍팍한 생존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한 스스로 선택한 무기였을지 모른다. 분명 혼자 내 탓하며 속병 앓는 것보다 백배 나은 선택이다. 무슨 일이든 남 탓‘만‘ 하는 건 문제가 있겠지만 때때로 남 탓‘도’하고 살아야 내가 쭈글쭈글해지지 않는다. 내가 무너지지 않는다. 내 안의 지독한 불치병, ‘자기 객관화’의 기운이 느껴지면 재빨리 H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리고 주문처럼 낮게 읊조린다.     


그래 남 탓도 좀 하고 살자.
H처럼. 그래야 내가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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