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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Aug 10. 2020

지나간 사람에 대한 매너

폭력이 된 일방적 추억

토요일 오후, 약속이 있어 낯선 동네 구석의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상대가 오길 기다리며 책을 폈는데 좀처럼 집중하기 어려웠다. 워낙 작은 카페여서 바로 옆자리에 앉은 두 사람의 대화 소리가 테이블을 넘어왔다. 코로나 시국임에도 테이블 사이 거리는 채 1m도 되지 않았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난 그들의 이야기를 강제 청취할 수밖에 없었다.      


슬쩍슬쩍 흘러들어온 단어로만 조합했을 때, 두 사람은 사회에서 만난 친구 사이. 나이 차이는 좀 나지만 가끔 만나 이렇게 수다를 떠는 지인인가 보다. 한참 얘기를 하던 차에 키가 큰 A는 한숨을 푹 내쉬며 본격적인 하소연이 시작됐다.      


“걔가 책을 냈지 뭐야? 내 얘기로.

그 정도면 걔가 받는 인세에 내 지분도 있는 거 아냐? 참나!”     


가볍게 말을 던졌지만, 얼굴에는 짜증과 울분이 가득했다. A와 대학 동기인 한 남자가 책을 냈다고 했다. 신입생 시절 그 남자가 자신에게 호감을 보였지만 당시 A에겐 이미 남자 친구가 있었다. 조심스럽게 거절을 했다. 이후 학교 동기 사이로 지내다 남자는 군대에 갔다. 군인에 대한 고마움과 안쓰러움이 있어 군 시절 종종 편지도 보내주고 휴가를 나오면 밥을 먹기도 했다. 그동안 A는 졸업 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어렵게 합격해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다.      


반면, 이후에도 꾸준히 A의 주변을 맴돌던 남자는 다시 한번 고백했지만, 남자가 여전히 친구 이상이 아니었던 A는 거절했다. 그 후부터 남자의 끊임없는 질척임이 시작됐다. 심지어 A의 생일날, 아닌 비난과 저주가 섞인 장문의 편지를 이메일을 선물 대신 보냈다. 남자 친구와 즐거운 생일 파티를 마치고 돌아온 그날 밤, 메일을 열어본 A는 충격에 빠져 출근도 못하고 며칠간 병가까지 내야 할 정도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남자가 글을 잘 쓰는 걸 알았지만, 그 잘난 글솜씨가 서슬 퍼런 칼날이 되어 자신을 찌를지 상상도 못 했다고 했다.        


그 이후 남자의 모든 연락을 차단하고, 인연을 끊었다. 하지만 악연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다른 동기의 SNS에서 남자가 책을 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동기는 이게 네 얘기 아니냐며 책을 한 번 보는 게 좋을 거 같다고 전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책을 확인하니 아니나 다를까 본인의 얘기였다. 책 속 두 사람은 찐한 사랑을 하는 연인이었고, 여자의 변심으로 사랑이 깨졌지만 남자는 아직 여자를 잊지 못하는 순애보가 절절했다고 했다.      


팩트만 놓고 봐도 둘은 사귄 적도 없고, 혼자 연애 망상에 빠져 제멋대로 이야기를 부풀렸다. 그걸 친구끼리의 술자리에서 안주 삼아 씹던 수다에 그치지 않았다. SNS를 통해 공개했고 그 포스트들을 모아 독립 출판을 했다. 소위 ‘연애 감성 글’ 분야의 인플루언서가 되어 이번에는 아예 출판사와 출간 계약을 맺고 두 번째 책을 냈다고 했다. 소설이라면 허구라고 넘기겠지만 산문집이라는 이름으로 사실과 다른 얘기가 부풀려지고, 왜곡되어 책이라는 결과물로 남았다. 한 번 세상 밖에 나온 이상 없던 일이 되지 않는 ‘책’으로 남았다는 게 화가 난다고 했다. 역시 화 푸는 데는 폭식만 한 게 없다며 근처 피맥 집을 검색하더니 서둘러 두 사람은 사라졌다.      


두 사람이 떠난 자리를 한참 바라봤다. 남자의 SNS 글이나 책만 본 사람들에게 천하의 나쁜 X이 된 여자가 머물렀던 그 자리. 나도 우연히 이 시간, 이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진실(?)을 알게 됐을 뿐이다. 이 상황을 모르고 책부터 봤다면 다른 사람들처럼 여자를 욕했을지 모르겠다. 우연히 듣게 된 대화를 통해 생각이 많아졌다. 나 역시 나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감 삼아 이 곳에 글을 쓴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이런 불쾌한 감정을 주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지나간 사람에 대한 매너란 뭘까? 결국 세상의 많은 것들에는 지나간 사람에 대한 ‘찌질의 역사‘가 담겨 있다. 내 모든 글 역시 결국 내 찌질의 흔적들이다. 글을 쓸 때 나는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담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100% 객관적 시선으로 담기는 불가능하다. 내 생각이라는 필터를 거쳐서 글로 세상에 나오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퇴고할 때는 되도록 제삼자의 눈으로 보려 한다. 일방적인 주장은 아닐까? 편협한 결론은 아닐까?라는 질문을 머금고 글을 다듬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을 상대방의 상황과 입장을 한 번 더 헤아려 중립적으로 쓰려고 애쓴다. 그게 바로 나를 지나쳐 간 사람들에 대한 최선의 예의다. 이렇게 난 변명 아닌 변명을 담은 이 글을 통해 마음의 짐을 덜어낸다. 이기적이게.      


+ 이 자리를 빌려 글의 소재가 되어준 나를 지나간, 그리고 내 곁에 머무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또한 미안한 마음도 있다는 걸 기억해 주시길 바란다. 내 기억과 당신의 기억이 달랐다면 나쁜 건 당신이 아니라 내 기억력일 테니 부디 나를 탓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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