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에 출간은 처음인 풋내기 작가의 심경 고백
언젠가 어느 TV 다큐멘터리 속에서 머리를 쥐어짜던 배우 조인성을 본 적 있다. 정식 촬영 중간, 잠시 쉬는 시간이 되자 그는 좌식 식당 벽에 등을 기대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곧 개봉을 앞둔 제작비 수백억을 쏟은 대작 영화의 주연배우로 여기저기 홍보를 하는 중이었다. 배우 인생 내내 스타로 살았어도 그가 짊어진 주연의 부담감과 책임감은 갈수록 무거워졌다. 카메라가 돌 때는 새하얀 조각상처럼 웃고 있었지만, 카메라가 꺼지면 평범한 인간답게 불안에 떨고 있었다.
방탄소년단의 RM도 마찬가지였다. 다큐멘터리에 들어갈 인터뷰 중 갑자기 촬영을 멈췄다. 3분만 자신에게 시간을 달라며 제작진에게 양해를 구한 후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BTS 앨범이 아닌 자신의 솔로 믹스테잎(다른 래퍼 곡 비트에 자신 랩을 녹음하는 힙합 문화 / 비상업적 목적으로 제작해 무료로 배포하는 곡)이 온라인 음악 유통 플랫폼에 정해진 시간에 제대로 올라갔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휴대전화를 코에 박고 한참 확인하더니 그제야 만감이 교차한 미소를 지었다. 그 찰나의 순간, RM의 표정은 긴장 -> 희열 -> 허탈 순으로 급격히 바뀌었다. 오랜 시간 에너지를 쏟아가며 준비한 앨범이 팬들에게, 대중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기대와 두려움이 뒤범벅된 그 순간은 월드 스타에게도 공평하게 찾아왔다.
데뷔 이후 수없이 많은 작품을 세상에 내놓고, 한국을 넘어 해외 팬들의 사랑을 차고 넘치게 받는 톱스타도 별수 없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새 작업물을 세상에 내놓을 때의 긴장과 불안은 익숙해지기는커녕 갈수록 더 짙어졌다. 이름이 가장 앞에 그리고 크게 박히는 주인공을 따라다니는 그림자 같은 고통이라고 생각했다.
난 평생 주인공이나 주연들을 빛나게 하는 조연 혹은 엑스트라, 아니면 스태프 혹은 관계자로만 살 줄 알았다. 그! 런! 데! (조명의 강도가 얼마나 셀지, 무대의 크기가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오롯이 나 자체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날이 오게 될 줄이야. 내 책이 세상에 나온다니! 내가 출간 작가라니! 주인공이 겪는다는 불안과 긴장의 그림자가 따라붙다니! 세상에나!
오늘 내 첫 번째 책, [포스트잇처럼 가볍게 살고 싶어]가 정식 출간됐다. (조금 전 온라인 서점의 예약 판매도 열렸다) 난 분명 조인성, 방탄소년단의 명성이나 인지도와는 한참 거리가 먼 무명의 신인 작가다. 하지만 책 발매일이 코앞에 닥치니 그들이 느꼈을 주인공의 불안과 긴장이 어떤 마음인지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다. 내 책의 탄생을 세상에 알릴 방법이 있다면 뭐라도 할 기세다. 당장 책이 많이 팔린다는 보장만 있다면 다음 생의 운까지 몽땅 끌어다 쓰고 싶은 심정이다. 어떻게든 내 책이 누군가의 시선을 잡고, 또 선택을 받길 바란다. 하루라도 빨리 서점 매대를 떠나 독자의 집으로 향하길 빈다.
마흔 전에 내가 쓴 책 하나 갖고 싶다는 막연한 상상에서 출발한 도전이었다. 지난 상반기,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세상을 뒤집어 놓은 그 시간 동안 한 권의 책을 만드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 정답이 없는 글 지옥 안에서 처음 경험하는 종류의 외로움과 싸우며 하얗게 불태운 나. 구석에서 먼지가 쌓여가던 내 글을 발굴해 주고 또 나보다 더 애정 어린 눈길로 다듬어 책으로 만들어준 담당 에디터. 희미한 가능성만 믿고 무명작가에게 도박 같은 베팅을 했을 마케터, 디자이너, 그림작가 등 출판사 안팎의 사람들. 나의 선택을 믿고 지지하며 기다려준 가족들. 내가 책을 낸다는 소식에 나도 안 흘린 눈물을 대신 흘릴 만큼 자기 일처럼 기뻐해 준 사람들. 늘 따뜻한 관심으로 글쓰기의 원동력이 되어준 브런치 독자들. 한 권의 책이 탄생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제 살을 내어줬을 이름 모를 나무들까지... 이 책이 완성되기까지 0.0000000000000001g이라도 힘을 보태준 모든 이들을 위해 내 책이 잘되길 바란다. 좋은 결과를 얻고 싶다. 애틋한 내 책이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길 기도한다.
14000원. 어쩌면 파스타 한 그릇이 될 수도 있고, 또 넷*릭스 한 달 이용료 가까이 되는 돈. 아니 이 시국만 아니었다면 프로야구 한 경기를 직관할 수 있는 금액이다. 과연 이 책이 파스타 한 그릇 이상의 포만감을 줄 수 있을까? 넷*릭스를 능가하는 즐거움을 줄 수 있을까? 프로야구 한 경기를 넘어서는 감동을 안겨 줄 수 있을까? 세상에 넘쳐나는 매혹적인 콘텐츠들 대신 과감히 [포스트잇처럼 가볍게 살고 싶어]를 선택한 독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글은 한참 전에 내 손을 떠났고, 책은 이제 세상의 평가만을 남겨두고 있다. 공은 독자들에게 넘어갔다. 이제, 마음껏 물고 뜯고 맛보고 즐기시길.
** 초간단 책 소개 **
[포스트잇처럼 가볍게 살고 싶어]는요?
‘오늘 하루도 포스트잇처럼 가볍게 살자’라는
조금 더 가뿐한 오늘을 위한 맑은 응원을
가득 담은 책이고요
또한 경쾌하고 산뜻하게, 힘을 빼고 유연하게
하루하루를 가꾸는 법이 담긴 에세이입니다.
- 목차 -
프롤로그
[1부 포스트잇의 자세]
‘강력 접착제’처럼 살면 성공할 줄 알았지
아휴, 서른이면 애기지 애기
‘어쩌다 대박’보다는 ‘꾸준한 존버’가 체질
변신의 귀재, 수국이 전하는 말
한쪽으로만 기울어진 시소 타기는 재미없지
마음도 1/N 하세요
때로는 악역도 내 몫
인생이 한결 쉬워지는 마법의 치트키
관계에도 삼진 아웃제가 필요해
흰옷이라는 사치
적 같네! 이놈의 세상
딱 0.5cm 차이
극복할 수 없다면 ‘인정’이 답
왜 그 나무엔 벚꽃이 피지 않았을까?
마흔에도 진로 고민을 하고 있을 줄이야
[2부 가끔의 행운보다 매일의 작은 기쁨을]
손에 닿는 매일의 행복을 위하여
빨래를 개는 마음
우울의 과속방지턱
제게서 커피마저 빼앗아 가신다면
나에게는 코미디, 누군가에겐 호러
기대라는 이름의 역설
이방인 필터의 마법
당신에게는 행복 루틴이 있나요?
내 안의 소녀, 소년을 소환하는 일
오늘도 나는 심심해지기 위해 산다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갈 땐, 플랭크
삶에 무기력이 묻으면 유기력으로 지우세요
[3부 장래 희망은 귀엽고 현명한 할머니]
귀엽고 현명한 할머니 지망생의 신년다짐
미용실 거울 앞에서 써 내려간 참회의 기록
내 얼굴의 미래는 내가 결정하기로 했다
굳어 못 쓰느니, 차라리 닳아 못 쓰는 게 낫더라
가르마를 바꾸다 만난 흰머리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사람
그 많던 언니들은 어디로 갔을까?
외로운 어른이 되지 않는 법
할머니가 된 후에도 떡볶이를 좋아할까?
같이한 여행, 다르게 꽂힌 시선
가지 않은 길의 부러움 vs 가고 있는 길의 지겨움
노포의 퇴장
상처의 손익분기점: 상처 줘서 고맙습니다
어른의 예의
내가 택한 죽음의 품격
나는 지금 후숙 중입니다
N년 전의 나, N년 후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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