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는 세상 어디에나
※ 표지 그림
에세이 <포스트잇처럼 가볍게 살고 싶어>
"귀엽고 현명한 할머니 지망생의 신년다짐 편" 중에서 (ⓒ 모리)
얼마 전, 코로나 시국 때문에 미루고 미뤄뒀던 출간 인사 겸 식사를 했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10년 전, 같은 팀에서 함께 일하며 인연이 시작된 우리. 그 이후 다시 셋이 함께 같은 팀에서 일한 적은 없지만 선배와 나, 나와 후배 이렇게 찢어져서 일하곤 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종종 연락을 전하고 또 이렇게 가끔 만나는 사이다.
시국이 시국이라 여러모로 조심스러운 상황이었지만 불도저 같은 추진력을 가진 후배 덕분에 한자리에 모이게 됐다. 준비해 간 저자 사인을 한 책을 건네고, 축하를 받고 또 밥을 먹었다. 이후 차를 마시며 눈 깜빡하는 사이 지나가 버린 10년이라는 세월과 그 시간 속에 알알이 박혀 있는 웃음과 눈물 그리고 분노의 사건들을 안주 삼아 수다를 떨었다.
점심 약속이었지만 이제는 각자 스케줄을 조율할 수 있는 짬이 차서인지 내가 예상했던 시간을 훌쩍 넘기고 자리를 파했다. 각자 사무실로 들어가고 나는 다음 일정까지 시간이 떠서 카페에 들어가 책을 읽는 중이었다. 조금 전, 회의 시간에 맞춰 사무실로 들어갔던 후배에게 다급한 카톡이 왔다.
선배! 대에박!
잉? 뭔데?
사무실 들어가자마자
오늘 친한 선배가 책 내서 축하 겸 점심 먹고 왔다고
후배들한테 얘기하면서 선배가 준 책을 꺼내는데...
팀원 중 막내가 소리를 꺅!! 지르는 거예요.
그리곤 자기 가방에서 책을 꺼내는데 선배 책이 뙇!!
며칠 전에 서점에서 서서 읽다가 공감 가서
사서 읽는 중이었다며...
옴마나! 세상에 이런 일이! 독자는 어디에나 있네.
세상 참 좁네요 선배.
책을 낸 후 종종 이렇게 깜짝 놀라는 일들을 겪곤 한다. 책을 내지 않았다면 결코 겪을 수 없는 일들이 내게 벌어지곤 했다. 이 꼭지의 주인공이 혹시 본인이냐고 묻는 지인들의 질문을 받는 일(10명 중 겨우 3명 정도만 본인이 주인공인 에피소드를 맞췄다), 각자 사는 지역 서점에 어떻게 진열되어 있는지 인증샷을 받는 일, 박스째 플렉스 해준 지인들의 힘으로 사인하느라 손에 굳은살이 생기는 일, 포털사이트에 책 이름이 자동완성으로 생성되는 일, 평생의 꿈인 책 내는 일을 너라도 해줘서 고맙다는 한때 문학 소년이었던 먼 친척 어른의 인사를 받는 일 등등 책이 아니었다면 내 인생에 없었을 여러 질문과 감사의 마음을 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나를 즐겁게 하는 일은 독자 후기를 읽는 거다. 짧은 한 줄 메시지부터 긴 독후감 수준의 리뷰까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정성스럽게 쓴 후기를 확인할 때면 지난 시간, 책을 준비하며 괴로워했던 날들을 위로받는 기분이다. 빛 하나 들지 않는 어두운 동굴을 혼자 걸었던 외롭고 두려운 날들을 보상받는 느낌이다.
어느 독자의 후기를 읽다가 그분이 어떤 기분이었는지 딱 와 닿는 구절이 있었다.
나 이 페이지에서 진심 공감해서
저자한테 카톡 할 뻔!
나와 안면이 있는 지인들이야 언제든 본인들이 원할 때 내게 카톡을 한다. 일반 직장인들은 내가 한참 숙면 중인 시간인 출근길에 보낸다. 또 생활이 불규칙한 프리랜서들은 밤이고 새벽이고 카톡 메시지를 보낸다. 묵히지 않고 시차 없이 책을 읽은 소감이며, 궁금증, 따끔한 조언과 칭찬을 안겨준다.
하지만 오직 책으로만 만난 독자들은 나에게 소감을 전할 길이 리뷰뿐이다. 그런데 책을 읽다가 저자한테 카톡을 보내고 싶었다니... 그 마음이 어땠을지 절절하게 전해져 이 구절을 보고 웃음이 빵 터졌다. 공감하고 위로가 되었다는 말. 따뜻한 응원을 받은 느낌을 안고 책을 덮었다는 리뷰 속 인사가 나를 미소 짓게 했다. 갓 나온 따끈따끈한 붕어빵을 가슴에 가득 안고 집으로 달려갈 때처럼 달달하고 따뜻한 기운이 리뷰 속 글자 하나하나에 스며 있었다.
언젠가 엄마는 내게 ‘가슴속에 냉장고를 품고 사는 기지배’라고 말했다. 속마음을 겉으로 표현하는 일에 서툴러 ‘얘는 속에 뭘 품고 사는지 모르겠어 ‘라는 말을 종종 듣기도 했다. 그만큼 나라는 인간은 다정하거나 살가운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책을 낸 후 한 달. 난 곁에서 늘 따뜻한 사랑과 응원을 보내주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절절히 깨달은 시간이었다. 또한 직접 만날 순 없지만 소심하고 내향적이며 생각이 많은 나 같은 사람들이 세상에 이토록 많다는 걸 느낀 시간이었다. 독자라는 이름으로 일면식도 없는 내게 뜨거운 응원을 보내준 무수한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조심스럽게 건넨 작은 마음보다 수백, 수천 배의 크고 따뜻한 마음을 돌려받았다.
시국도 시국이고 이런저런 상황들 때문에 무기력하고, 답답한 날들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난 과분한 사랑을 받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지치고 힘들 때마다 지인들이 보내준 카톡과 사진, 독자들이 쓴 후기들을 들춰 본다. 영원히 닳아 없어지지 않을 그 포근한 응원이 날 오래도록 나로 서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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