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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Sep 17. 2020

나사 빠진 X! 정신 안 차려?

어느 날, 갑자기 베개 밑에서 나온 나사의 미스터리

※ 표지 그림
에세이 <포스트잇처럼 가볍게 살고 싶어>
"당신에게는 행복 루틴이 있나요  편" 중에서 (ⓒ 모리)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끈적끈적한 땀에 뒤범벅이 된 채 눈을 뜨던 아침. 이제는 제법 서늘해진 날씨 때문에 자꾸만 이불 안으로 파고들며 겨우 눈을 뜬다. 이부자리를 정리하며 잠을 털어내고 ‘제정신‘을 충전해가던 그때. 베개 밑에서 팥알 크기의 까만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어? 이거 뭐지?      


혹시 벌레인가 생각하니 덕지덕지 붙었던 잠이 확 달아났다. 잔뜩 긴장한 채 주섬주섬 안경부터 찾아 꼈다. 정체를 확인하니 ‘나사’였다. 엥? 베개 밑... 에서 나온 나사...? 드러난 팩트만으로 추리해 보면 이 나사의 출처는 내 머릿속이 유력하다. 하지만 난 로봇이나 기계가 아닌 인간이므로 머릿속에서 나사가 나올 일이 없다. 그렇다면 이 나사는 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나사의 용도는 무언가를 고정하는 것이다. 나사가 빠졌다는 건 무언가 지금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결국 그 주체는 고장이 났을 확률이 높다. 매의 눈으로 방안부터 훑었다. 최근 내 방 안의 물건 중 고장 난 게 있었나 곰곰이 생각해 봤다. 방안을 하나하나 체크하며 나사의 출처를 유추해봤다. 핸드폰? 배터리가 쫓기기라도 하는 듯 빨리 닳는 것 빼고 무난하다. 시계? 열심히 돌아가고 있다. 전등? 깜빡임도 없이 잘 들어온다. 드라이기? 바람 빵빵하다. 가구? 흔들림 없이 멀쩡하다. 내방 유력 용의자들은 알리바이가 확실하다.  

    

아! 고장 난 게 하나 있다. 바로 이 방의 주인인 나! 얼마 전, ‘또’ 현관문 도어록 비밀번호를 까먹어서 옆집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았다. 입안의 구내염은 사라지나 싶었는데 ‘또’ 부풀어 오르고 있다. 지난주까지 코로나 관련 정부 지침 때문에 일상의 사소한 기쁨들을 누리지 못했다. 카페 가서 일하거나 느긋하게 책을 보며 커피 마시기 같은 하찮은 행복 루틴들을 말이다. 친구들을 만나 수다 떠는 소소한 즐거움도 강제로 차단당했다. ‘코로나 블루’를 의심할 만큼 한동안 무기력했다. 몸도 마음도 엉망진창인 나 빼고, 내 방 안의 물건들은 멀쩡하다.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베개 밑에서 발견된 ‘나사 출처’의 미스터리는 그렇게 영구미제 사건이 되는 줄 알았다. 알코올 스왑으로 ‘그것‘을 닦기 전까지.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습관처럼 핸드폰 액정을 알코올 스왑으로 닦는다. 그냥 버리기 아까우니 방문 손잡이며 전등 스위치, 노트북, 마우스 등을 수시로 닦는다. 늘 그랬던 것처럼 노트북 액정과 키보드를 닦는 중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노트북을 뒤집어 봤다. 역시나 노트북 뒷면 한 귀퉁이에 있어야 할 나사가 빠져 텅 비어 있었다.


아! 나사가 여기서 나온 거였구나.     


사실, <나사 출처의 미스터리>가 시작된 이후에도 평소처럼 하루 몇 시간씩 노트북으로 작업을 했다. 내 품에 들어온 지 8년. 나의 30대를 함께 해준 이 노트북이 있어서 그나마 이만큼 먹고살고, 또 책도 한 권 썼다. 연차 대비 선방하고 있는 ‘할매 노트북’이다. 가끔 'ㅏ'자 버튼이 잘 눌리지 않아 손끝에 힘을 빡 주고 강하게 눌러야 한다는 것 빼고. 나사의 출처가 이 오래된 노트북이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나사 하나 빠져도 제 몫 다 해내는 우리 할매... 아직 쌩쌩하구나?      


이렇게 뭐든 사용하다 보면 헐거워지고 낡고 망가지게 마련이다. 지금은 빠졌지만, 그전까지 나사가 제 역할을 다 해줬기 때문에 노트북을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나사 하나가 빠져도 나머지 귀퉁이의 나사들이 제대로 꽉 조이고 있으면 ‘당분간’은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다. 그 빠진 나사 하나가 버텨야 할 힘을 나머지 나사들이 나눠지고 있으니 언젠가는 헐거워지겠지만 말이다. 아예 사용 못 할 만큼 망가지기 전에 빠진 나사의 출처를 알게 돼 다행이었다. 드라이버로 다시 나사를 고정하면서 ‘나사’를 말하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사 빠졌냐? 정신 안 차려?
풀어진 나사 단단히 조여라!      


나사가 풀어지면 기계는 쉽게 고장 나고, 긴장이 풀어지면 인간에게는 사고가 날 확률이 높아진다. 풀어진 정신이나 기강이 해이해진 분위기를 감지하면 나사를 언급하며 채찍질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더 큰 문제가 생기기 전에 긴장의 끈을 놓지 말라는 의미로 ‘나사’라는 단어를 자주 활용했다. 그 말에 따귀라도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어 나를 더 조이고, 매섭게 다그치곤 했다.       


나사가 하나 빠져도 멀쩡하게 굴러가는 ‘할매 노트북’을 보면서 생각한다. 나머지 나사들이 제대로 꽉 조이고 있으면 나사 하나쯤 풀어진다고 큰일 나지 않는다. 나사를 잃어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 다시 분명 조이면 된다. 지금 내 몸과 마음의 나사가 풀어졌다는 건, 직전까지 내가 최선을 다해 내 몫의 역할을 잘 해왔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왜 해이해졌는지 스스로를 다그치기보다 그동안 고생했다고 다독여 주기로 했다. 제일 먼저 날 챙길 사람은 가장 가까이 있는 나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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