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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Nov 19. 2020

직업의 유효기간에 대하여

프로의 마음, 아마추어의 마음


미루고 미뤘던 숙제 해결을 위해 단골 미용실로 향했다. 갈라진 머리끝도 자르고, 볼품없이 주저앉은 머리의 볼륨을 넣기 위해 오랜만에 그곳의 문을 열었다. 낯익은 사람들 사이 처음 보는 얼굴이 있었다. 담당 미용사의 새로운 어시스턴트. 보통 20대 초반의 싱그러운 청춘들이 들고 나던 자리였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딱 봐도 30대는 족히 되었을 신입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초면에 하기엔 분명 선을 넘는 질문이란 걸 알기에 굳이 나이를 묻지 않았다. 일은 손에 익지 않았어도 들뜸이 없던 몸짓. 샴푸를 해주던 조심스러운 손길. 차를 권하던 차분한 말투. 이런 것들 속에서 그가 지나온 세월의 무게를 짐작할 뿐이었다.       


미용실 안을 바쁘게 오가는 초보 어시스턴트. 그의 움직임을 슬쩍 훔쳐보다 궁금증이 밀려왔다. 원래 오랜 꿈이던 미용의 길을 뒤늦게 걷게 된 걸까? 아니면 앞으로 남은 인생 후반부, 야심 차게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 걸까? 어떤 마음에서 출발한 결정이었건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일반적인 흐름이었다면 일정 수준 이상의 커리어가 쌓였을 나이. 낯선 곳에서 시작할 용기를 냈다는 건 분명 뜨거운 박수를 받을 일이다.




기대수명 100세를 넘어 120세를 바라보는 시대. 직업의 유효기간은 얼마나 될까? 평균 수명은 늘어났지만, 직업 수명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트렌드는 쉴 새 없이 바뀌고, 어제의 호황 산업이 오늘은 사양 산업이 된다. 모든 게 숨 가쁘게 바뀌지만, 바뀌지 않는 게 있다. 우리에겐 아직 살아갈 날이 많고, 먹고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 그래서 우린 돈을 벌기 위해 꾸준히 일해야만 한다.      


친구들을 만나면 수다 주제는 뻔하다. 반은 돈 얘기, 반은 일 얘기가 전부다. 결혼 여부나 아이 유무를 떠나 모두 일을 하고 싶어 하고, 또 돈 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얘기로 마무리된다. 꾸준히 일해 온 친구들은 흐릿한 미래를 불안해했다. 나이는 차고, 경력은 고만고만했다. 커리어 하이를 찍은 지 오래고, 하락세를 자신도 충분히 느낀다. 한 해 한 해 필드의 중심에서 멀어져 가는 상황.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마음은 그걸 따라가지 못한다. 아직은 한창때라고 생각하지만, 결과물이 그렇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난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존재이자 가성비 떨어지는 인물이라는 차가운 현실을 깨닫는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 이 직업의 유효기간이 다가왔음을 인정해야 하는 때와 마주한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아이가 어느덧 자라 학부모가 된 친구들도 다르지 않다. 작고 여린 아이가 엄마의 품을 떠나 세상으로 나아갈수록 엄마의 손길 닿는 일이 줄어든다. 자연스럽게 이전보다 확실히 시간 여유가 늘어나고, 그제야 비로소 잠시 미뤄 뒀던 자신의 보이기 시작한다. 더 늦기 전에 일을 시작하려고 하지만 소위 경단녀, 경력 단절 여성에게 허락된 일자리는 많지 않다. 원래 몸담고 있던 자리에 가자니 업데이트된 건 나이뿐. 나이는 찼지만, 경력은 제자리다. 수시로 바뀌는 업계 트렌드에서 한동안 멀어져 있었으니 파릇한 현직자들과 경쟁이 불가능하다. 미혼이건 기혼이건 비혼이건. 또 대기업 직원이건, 전문직이건, 계약직이건, 자영업이건, 주부건, 백수건 모호한 미래 앞에 ‘두려움 값’은 평등했다.      


마음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시간은 냉정하게 흘러간다. ‘평생직장’은 현실에는 없는 시대. 한 우물을 파는 게, 또 엉덩이가 무거운 게 더는 칭찬이 아니다. 살아가야 할 날은 까마득한데, 자꾸만 바깥으로 내쫓긴다. 조바심은 차오르고 불안함이 밀려든다.      


한 분야에서 일정 시간과 노력이 쌓이면 프로의 영역에 들어간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프로인 동시에 아마추어다. 직업적으로는 프로일 수 있지만, 인생은 누구나 아마추어다. 아무리 대단한 커리어를 가진 사람도 인생을 두 번 살진 않으니까.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뭘까?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마음‘에 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면 프로, 좋아하는 마음이 크다면 아마추어. 결과에 만족감을 느끼면 프로,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면 아마추어. 나는 이렇게 구분한다. 자꾸만 짧아져 가는 직업의 유효기간과 반대로 자꾸만 늘어 가는 기대수명. 그 한가운데에서 다짐한다. 아마추어의 마음을 갖고 프로의 자세로 살아야겠다고. 일이든 인생이든 좋아하는 마음을 품고,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달려갈 것이다. 지치지 않고 또 포기하지 않고.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최고의 방법이란 걸 이제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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