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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May 07. 2021

사람도 가슴속 유심을 바꿔 끼울 수 있다면?

여행 때 스마트폰 유심을 바꾸며 생각한 것들

   

기계를 다루는 일에 서툰 뼛속부터 문과인 내게 해외여행을 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스마트폰이다. (며칠 전에도 카카오톡 건드렸다가 그간의 대화를 모두 날려버렸다... Aㅏ...)  그것만 있으면 세계 어디든 갈 수 있지만, 나라가 바뀌면 무용지물이 된다. 비행기 스마트 티켓부터 지도와 현지 정보, 통역이나 번역까지 못 하는 게 없는 스마트폰. 21세기 여행자에게 스마트폰 없는 여행은 상상하기 어렵다. 평화로운 여행 생활을 위해 국내 통신사의 해외 로밍 서비스, 포켓 와이파이, 현지 폰까지 다양하게 써봤다. 하지만 역시 최고는 현지 유심을 사서 바꿔 끼는 거다. 로밍은 비쌌고, 포켓 와이파이는 무거웠으며, 현지 폰은 번거로웠다.     

 

가장 안전하고 시간도 절약하는 방법은 아예 출발 전에 한국에서 현지 유심을 사서 비행기 안에서 교체하는 거다. 현지 유심을 구매할 수 없는 나라로 간다면 그 나라의 공항에 도착해 공항 밖에 나가기도 전에 판매 부스에서 유심을 사서 끼운다. 카톡도, SNS도 인터넷도 아무 불편 없이 한국에 있을 때처럼 사용할 수 있다. 혹 운이 좋지 않아 불량 유심을 뽑아 시작부터 여행을 망치는 건 아닐까 두근두근 떨리는 가슴을 안고 유심을 넣는다.      


휴대전화를 여러대 사용할 만큼 비즈니스에 통달한 사람도 아니니 한국에서라면 굳이 유심을 교체할 일이 없다. 액정 위쪽 통신사 브랜드명이 바뀐 걸 보면 그제야 내가 제대로 낯선 나라에 도착했음을 느낀다. 멀쩡히 인터넷이 연결되는 걸 확인하면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린다. 별 탈 없이 여행의 첫 단추를 끼웠다는 따뜻한 안도감이 온몸을 감싼다. 매번 여행을 위해 유심을 교체할 때마다 생각한다.      


사람도 가슴속 유심을
바꿔 끼울 수 있다면?


나라는 본체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장소나 상황이 바뀔 때마다 그에 맞는 유심을 바꿔 끼우면 어떨지 상상해 본다. 이 기특한 녀석처럼 사람에게도 유심이 있어서 가슴속 유심을 바꿔 끼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낯선 사람들이 잔뜩 모인 장소에 가면 몸이 꽈배기처럼 꼬인다. 온전히 그 순간을 즐기는 건 내향형 인간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대신 언제쯤 이 시간이 끝날까?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슬쩍슬쩍 시계만 쳐다본다. 내 의지로는 절대 발을 들이지 않을 그곳. 어색함이 가득한 망망대해에 섬처럼 둥둥 떠 있다 보면 이 어쩔 줄 모르는 공기도 즐기며 낯선 사람들에게 말도 잘 거는 ‘인싸 유심’을 끼우고 싶은 심정이다.

      

여러 사람 앞에서 말을 해야 할 때가 되면 심장이 쿵쾅거린다. 수십 개의 눈알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쏟아지면 목구멍에 커다란 알사탕이 걸린 듯 숨도 잘 안 쉬어진다.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겨우 말을 이어간다. 말하기 최강자를 가리는 대회에 나온 것도 아닌데 쫓기는 사람처럼 뇌를 거치지도 않은 말들이 주절주절 나온다. 말을 내뱉으면서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순간이 온다. 서울에서 출발한 말이 바다 건너 제주도에 도착할 때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럴 땐 어김없이 단전 깊은 곳에서부터 ’ 망했다 ‘라는 기운이 밀려든다. 그럴 때, ’ 달변 유심’이 있다면 냉큼 끼웠을 텐데... 1타 강사나 아나운서처럼 정갈한 말을 쏟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들이 생각 없이 내뱉는 상처 주는 말을 들을 때는 표정 관리가 잘 안 된다. 뇌를 거치지 않은 뾰족한 말이 튀어나올까 봐 애써 입을 다물려 노력한다. 하지만 감정은 표정을 입삼아 온 힘을 다해 말한다. 소위 말하는 좋고 싫음이 눈에 확 드러나는 얼굴. 꼽기만 하면 능수능란하고 센스 있게 받아치게 만드는 ‘평정 유심’이 있다면 내 사회생활이 좀 더 편하지 않았을까? 외부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 개복치 심장 느낄 때마다 세상에 없는 ‘평정 유심’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낀다.   

    

유심을 교체할 때, 가장 신경 쓰는 건 기존의 유심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보관하는 일이다.  원래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원래의 유심이 없다면 일이 복잡해진다. 그러니 애초에 유심을 바꿀 때 신경 써서 유심을 챙겨 놓고, 절대 잊을 수 없는 안전한 곳에 보관한다. 유심을 바꿔 끼는 건 여행하는 그 순간의 편리함일 뿐이지 그 유심을 가지고 한국에 돌아와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인싸 유심이건, 달변 유심이건, 평정 유심이건 그때뿐이다. 나는 원래 그런 재질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 유심을 계속 끼고 있으면 탈이 난다. 그래서 나라는 본체를 운영하는 원래 유심을 잘 챙기는 일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 여행은 언젠가 끝나고, 난 원래 자리로 돌아올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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