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남들갈비 방문기
사람들은 앞으로 조급해하며 나아가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과거를 사무치게 그리워한다. 그래서 ’ 복고‘는 사람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마법 주문이다. 한 때 ’ 냉삼’이라는 이름의 냉동 삼겹살집 붐이 일어났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옛날 만화 영화가 나오는 흑백 브라운관 티브이가 먼저 반겼다. 가게 벽에는 오래된 영화 포스터나 신문을 도배해 놨다. 못난이 인형이나 태권 V 조립 로봇 같은 추억의 물건들로 장식된 가게. 자리에 앉으면 흰색 점이 박힌 초록색 멜라민 그릇에 반찬이 담겨 나오고, 주황색 바가지에 무친 파절이를 내주는 집. 흘러간 가요가 흘러나오는 그곳에서 파랑 바구니에 수북이 담겨 나온 냉동 삼겹살을 구우며 가보지도 않은 그 시대를 추억하는 이상한 풍경이 펼쳐졌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냉삼 사진을 SNS에 올리며 #냉삼은추억을싣고 #어린시절의맛 #레트로 #나돌아갈래 같은 해시태그를 붙였다. 그들은 대체 어디로 돌아가고 싶은 걸까?
이상했다. 한때 지나가는 유행이고, 트렌드라는 거 알겠는데 70년대와 80년대와 90년대가 뒤섞인 기묘한 재연에 고개가 갸웃했다. ‘어차피 과거는 과거니까 어느 세대 든 과거를 소환하는 추억의 물건쯤은 하나 맞아떨어지겠지?‘ 이런 계산을 했을지 모를 주인의 안일한 생각이 느껴져 냉삼 맛이 씁쓸했다. 더구나 추억 값이 더해진 가격이라고 해도 계산서에 찍힌 숫자는 내가 납득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냉삼 열풍이 영 못마땅했다. 내게 메뉴 선택권이 없는 순간이 아니라면 기괴한 레트로풍 냉삼 집에 내 돈 주고 가는 일은 없었다.
역사가 오래된 도시에는 그 도시를 대표하는 음식점이 있다. 1955년 영업을 시작한 충청북도 청주의 노포 돼지갈빗집 <남들갈비>가 그런 곳이다. 지인의 소개로 가게 된 곳이다. 그런데 가기 전부터 만반의 준비를 해야 했다. 지인은 내게 드레스 코드를 꼭 지켜 달라고 단단히 당부했다. 새 옷이나 좋은 옷은 입지 말고 와. 으잉? 그게 무슨 소린가 싶어 물어보니 이유는 간단했다. 워낙 오래된 가게라 요즘 고깃집들처럼 환기 시설이 잘 갖춰져 있지 않은 곳이어서 고기 굽는 냄새가 옷에 배도 괜찮은 옷을 입고 오라는 말이었다. 예상된 불편함. 그런데 그 소리에 더 믿음이 갔다. 편하고 쉽고 친절한 음식점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이런 번거로움, 까다로움을 감수하고서라도 가서 먹는 사람들이 꾸준히 있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60년 넘게 가게를 유지해온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오래된 낮은 건물들이 늘어선 구도심의 작은 골목. 연두색 페인트가 칠해진 외관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제법 손님들이 있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제일 먼저 내 눈을 사로잡은 건 각기 다른 모양의 타일로 장식된 두툼한 테이블이었다. 드럼통 모양의 화덕에 타일로 외부 마감을 하고, 연탄불에 석쇠를 올려서 얇은 돼지갈비를 구워 먹는 스타일이다. 수십 년 동안 튄 돼지기름이 쌓이고 닦였을 타일에서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최신식 3D 프린터 건 인공지능 조색 로봇이 등판한다고 해도 다시 만들어 낼 수 없는 ‘찐 레트’로였다. 한 치의 어긋남 없는 통일된 ‘복고’였다.
세월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 낸 진짜 레트로에 감탄하는 사이 착착 음식이 나왔다. 스테인리스 국그릇에 수북하게 나온 돼지갈비 2인분. 지금까지 봐온 돼지갈비와는 빛깔부터 달랐다. 일반적인 돼지갈비가 (한국 여성 기준으로) 가장 어두운 23호 파운데이션을 쓴다면, 13호 가장 밝은 색 파운데이션 혹은 아니 아예 그 어떤 베이스 메이크업도 하지 않은 투명한 민낯에 가까웠다. 보통 봐온 진한 갈색의 양념이 아닌 거의 돼지고기 그대로의 색깔이었다. 곧이어 시뻘건 연탄불이 화덕에 들어왔고, 고기를 올려 굽기 시작했다. 화력이 센 연탄불에 고기를 구울 때는 한시도 방심하면 안 된다. 게다가 일반적인 돼지갈비보다는 얇고, 돼지 불고기보다는 두꺼운 두께의 이곳 고기를 잘 굽기 위해서는 쉴 새 없이 집게를 움직여야 한다. 실내 냉방은 최강으로 틀어 놨는지 우렁찬 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연탄불의 위압적인 열기에 좀처럼 냉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손을 바쁘게 움직이니 곧 연탄 향이 그윽하게 밴 돼지갈비가 알맞게 익었다.
생전 처음 보는 비주얼의 돼지갈비를 한 점 집어 입에 넣었다. 은은하게 불향이 입혀진 고기를 씹으니 얇아도 제법 쫄깃했다. 돼지갈비 치고 얇게 썰어져서 다른 부위랑 섞인 건가 싶었다. 가격을 보면 순수하게 돼지 갈빗살로 채우기에는 무리다. 다른 부위가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고기 자체는 신선한 건 분명했다. 돼지갈비의 핵심인 양념 맛은 보는 것보다는 간이 셌다. 양조간장의 들쩍지근한 단맛이 아니라, 조선간장을 썼을 때처럼 쨍한 짠맛과 적당한 단맛이 섞여 있었다. 돼지갈빗집이라면 흔히 나오는 쌈 채소도 없이 파절이와 김치에 싸 먹는 단출한 식사였다. 불의 세기를 조절하기 위한 환풍구(?) 손잡이가 있었지만 이미 불붙은 연탄은 가스 불처럼 세기를 조절하는 건 불가능했다. 연탄이 시키는 속도에 맞춰 100m 달리기를 하듯 숨차게 고기를 익히고, 고기가 타기 전에 먹고, 배를 두들기며 나왔다.
올 때처럼 택시를 탈까도 생각했지만, 어깨를 올려 코를 가져다 대 보니 무리였다. 골목에서 산책 중이던 강아지가 꼬리로 프로펠러를 돌리며 생전 처음 보는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렇게 고기 냄새로 샤워한 채 택시를 타는 건 택시기사님께 실례다 싶어 걷기 시작했다. 해는 이미 떨어졌지만 가게 안이나 밖에나 온도 차이는 크게 나지 않았다. 얼굴에 7월의 축축하고 뜨거운 바람이 훅하고 부딪혔다. 이 바람결에 고기 냄새를 날아가기를 빌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낯선 도시의 길을 걸으며 상상해 봤다. 내가 만약 60년대에 살았다면 퇴근 후 이곳에 와서 막걸리 한 대접과 연탄불에 구운 돼지갈비로 노동에 찌든 몸과 마음을 위로받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