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크 엔드 법칙의 마법
로봇청소기, 식기 세척기 등 가전 기술의 발전은 인간을 가사노동에서 해방시켰다. 허리를 굽혀 빗자루로 바닥을 쓸 필요도 없고, 손에 세제 거품 묻혀 가며 그릇을 씻을 필요가 없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정복하지 못한 분야가 있다. 세탁 건조기와 빨래 개는 로봇까지 세상 빛을 봤지만 빨래 개는 로봇도 속옷과 양말처럼 작은 것들은 처리하지 못했다. 그래서 건조기가 없는 집이라면 양말을 널때, 건조기가 있는 집이라도 양말을 갤 때는 인간의 손이 '꼭' 필요하다.
집에서 세탁 분야 책임자인 난, 일주일에 2~3번 세탁기를 돌린다. 띠로리~ 세탁기가 빨래를 마쳤다는 신호음을 내면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킨다. 기계는 할 만큼 했으니 인간이 해야 할 몫의 노동을 시작하라는 신호다. 섬유 유연제 냄새가 가득한 빨래를 꺼내 건조대에 넌다. 아직 세탁 건조기를 들이지 않은 우리 집에서 매번 반복되는 일이다. 바지나 셔츠, 티는 옷걸이에 걸어 건조기 가장자리에 걸고, 수건은 갈빗대 같은 건조대 윗부분에 하나하나 건다. 그러고 나면 최대의 난제, 양말이 남는다. 일일이 탁탁 털어 널어야 하기 때문에 손이 2배는 더 많이 가는 양말. 게다가 여름에 많이 신는 페이크 삭스는 탈출의 명수다. 크기가 작아서 너는 족족 바닥에 떨어진다. 양말한테 농락당하는 기분이 이런 걸까? 양쪽의 균형을 맞춰 양말의 척추 정중앙 부분을 건조대에 걸지 않으면 예외 없이 추락이다. 겨울이 되면 양말 사이즈가 커져서 수훨할까? No! 양이 더 많아져 널어도 널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양말 지옥은 사계절 내내 계속된다.
어떻게 하면 짧은 시간 내에 효율적으로 해야 할 일을 끝낼 수 있을까? 매번 궁리한다. 특히 집안일 같은 경우는 더 깊이 고민한다. 창의성을 발휘할 필요도 없는 단순 반복 노동이니까. 그날의 타깃은 양말 널기 그리고 개기였다. 양말을 널고 갤 때마다 쏟아붓는 노력에 비해 결과가 하찮게 느껴져 한계에 다다른 때였다. 똑똑한 과학자들은 대체 뭐 하는 걸까? 왜 아직도 양말을 널고 개는 기계를 발명하지 못할까? 구시렁거리며 내가 양말을 너는 방식을 생각해 봤다. 세탁을 마친 양말을 꺼내 우르르 바닥에 쏟는다. 그리고 속으로 지겨워 X100번 외치며 영혼 없이 양말을 넌다. 시간이 지나 양말이 마르면 빨래 건조대 위를 손으로 쓸어 뭉텅이로 양말을 끌어내린다. 그리고 다시 지루한 양말 개기가 시작된다. 수건처럼 크기도 색깔도 비슷해서 착착 개지고 또 금세 완성품이 차오르는 맛도 없다. 각기 다른 색과 길이를 비교해 짝을 맞추는 번거로움은 양말 개기의 최대 고비다. 하지만 신에게는 개야 할 양말이 수없이 쌓여 있기에 다시 입으로 양말 하나당 지겨워 X200번쯤 외치고 양말을 개기 시작한다.
냉면 먹을 때 달걀부터 먹는 나지만 어차피 할 일이라면, 미루지 말고 번거로운 일을 먼저 하자고 결심하던 때였다. 양말도 그 번거로운 일 중 하나니 먼저 해치우자 싶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무작위로 널던 방식을 바꿨다. 조삼모사(朝三暮四). 지금 맞추든 나중에 맞추든 한 번은 맞춰야 할 양말. 널 때 아예 먼저 짝을 맞춰 널었다. 너는 시간이 평소보다 오래 걸렸지만 개는 시간은 단번에 줄었다. 뒤죽박죽이었던 빨래 건조대가 깔끔하게 보이는 건 덤이다. 미리 짝 맞춰 널어진 양말은 그대로 한큐에 잡아 갤 수 있다.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듯 이리저리 헤맬 필요가 없다. 나란히 걸린 양말을 한 번에 잡아 탁탁 편 후 돌돌 말아 양말 목 한쪽에 끼워 넣으면 끝이다. 정확히 시간을 재 보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줄 수밖에 없다. 비로소 양말 지옥에서 해방됐다.
난 단순해서 끝이 좋으면 다 좋게 느껴진다. 시작할 때의 수고로움은 금세 잊고, 빠르고 깔끔하게 마무리한 끝만 남는다. 시작하기 전, 속으로 귀찮아 X100번씩 생각만 하며 괴로워하는 것보다 신속하게 마무리하는 편을 택한다. 이건 나만의 느낌은 아니다. 행동경제학의 창시자이자 심리학자인 대니얼 카너먼은 이 심리를 피크 엔드 법칙(Peak-end Rule)으로 정리해 노벨상을 받았다. 사람은 경험의 전체 평가를 절정의 순간 즉 피크(Peak)와 마지막(End) 순간에 느낀 감정을 토대로 판단한다는 내용이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언제든 해야 할 일이라면 최대한 빨리 해치운다. 숙제 안 한 어린이처럼 해야 한다는 묵직한 부채감에 짓눌려 살 필요가 없다. 얼른 해치우고 개운한 마음과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음 단계로 넘어 갈 수 있다. 미적미적 거릴 필요가 없다. 오늘의 내가 안했다면 미뤄봤자 내일의 내가 해야 할 일일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