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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Aug 04. 2021

선수님,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올림픽을 보다 생긴 멍청한 궁금증

숨 막히도록 뜨거운 이번 여름을 더 뜨겁게 만들어 준 2020 도쿄 올림픽도 서서히 끝을 향해 달려간다. 각 나라를 대표해 나온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경기를 펼치는 모습을 보며 함께 울고, 웃었다. 올림픽이란 명목 하에 평소라면 스포츠 뉴스 끄트머리에 단신처럼 간결하게 결과만 알려주던 종목의 경기도 티브이로 중계된다. 규칙도 선수 이름도 낯설지만, 가슴에 태극기를 붙였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도전을 두 손 모아 응원했다.    

메달이 유력하거나 인기 종목 선수들은 그에 합당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몸이 부서져라 뛰는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메달을 딸 가능성도 희박하고, 객관적인 숫자들이 세계적 수준과 분명 거리가 멀다고 말하는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한 사람, 안일하게 경기에 임하는 사람이 없었다. 선수들의 ‘진심’과 ‘열심’의 순도는 똑같았다.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해 몸을 던졌다. 그동안 올림픽은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나 대단한 보상이 기다린다는 보장도 없다면 참가하는데 의의를 두는 거면 충분한 거 아닌가? 근데 메달권에서 먼 선수들은 대체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할까? 의아했다. 스. 알. 못(스포츠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멍청한 궁금증‘이 생겼다.       


"올림픽 대회의 의의는

승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 쿠베르탱은 '올림픽 정신'을 이렇게 정의했다. 타인과의 경쟁을 통한 승리가 아닌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과정 자체에 올림픽의 본질이 있다는 의미다. 난 이 말이 메달의 색깔이나 개수에 연연하지 말고 이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해석했다. 생각의 방점은 늘 <참가하는데>에 찍혔다. 시야가 좁고 생각이 짧은 내 관심은 뒤에 붙은 <노력>에 닿지 못했다. 참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참가는 1차 목표일 뿐, 그다음이 있었다. 바로 성공보다 자신이 세운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것. 그걸 캐치하지 못한 아둔함 때문에 선수들의 순수한 ‘열심’을 오해할 뻔했다.     


세상의 스포츠 선수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올림픽 무대에 서본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 세계 선수권 같은 국제 대회에서 아무리 좋은 성적을 거둔다 해도 많은 선수는 올림픽 금메달을 최종 목표로 삼고 구슬땀을 흘린다. 선수들의 인생 시계는 올림픽에 맞춰진다. 기량이 최정점에 오를 순간 참가하게 될 올림픽 무대를 위해 선수 인생의 전부를 건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시상대에 올라 메달을 목에 거는 선수보다 아이디카드만 목에 걸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선수가 대부분이다. 포상금, 연금, 유명세, 기록 같은 개인의 영광은 차후의 문제다. 국기를 달고 나라를 대표해 나온 선수가 참가의 의의만 얻고 돌아가는 건 일종의 직무유기 일지 모른다. 메달이야 하늘이 점지해 주는 거고, 올림픽 무대에 선 이상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경기를 펼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경기를 마친 선수의 몸을 보면 성한 곳이 없다. 하지만 얼굴에는 광채가 난다. 메달의 색깔, 순위, 기록이 뭐라 하든 후회 없는 경기를 마쳤다는 후련함이 가득하다. 승패가 결정되는 0.00000001초 그 순간을 위해 담금질했던 시간이 눈앞에 교차하는 듯 감격에 겨운 표정이다. 이미 자신의 평소 기록을 넘었기 때문에 메달권에 들지 못했다고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아쉬움보다는 자신의 수고를 스스로 토닥여 준다. 분명 이전 올림픽들과 다른 분위기다. 금메달이 아니라면 전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기던 1등 지상주의의 망령에서 벗어난 결과다. 꼭 금메달을 목에 걸어야만 해피엔딩은 아니다. 우리 모두에겐 각자의 해피엔딩이 기다리고 있다.

몇 해 전, SNS에서 유명해진 네 컷 만화 <행복한 고구마>가 떠올랐다. 다들 ‘명품 인삼’이 되어야 한다고 다그치는 현실이 숨 막혔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유독 ‘행복한 고구마‘들의 미소가 남긴 여운이 길었다. 개인의 기록을 넘어 한국 신기록을 낸 선수들이며, 아시아 선수들에게는 예외였던 본선 무대에 진출한 선수들이며, 목표했던 결과를 얻지 못했더라도, 금메달이 아니라도 1위가 아니어도 각자 값진 결과를 얻은 선수들이 있었다. 본인에게도 그걸 지켜보며 응원했던 사람들에게도 평생 잊을 수 없는 2021년 여름의 기억이 생겼다.

’ 행복한 고구마‘들의 미소에서 자신의 목표를 향해 직진하는 자의 ’ 멋짐’을 엿봤다. 올림픽은 곧 끝나겠지만 오래도록 그들의 미소를 기억할 거다. 남들이 쥔 결과와 비교하며 애초에 게임이 안 된다고 포기하고 싶고, 게으름을 부리고 싶을 때 행복한 고구마들의 얼굴을 떠올릴 거다. 행복한 고구마들이 전해준 에너지를 원동력 삼아 나만의 해피 엔딩을 향해 달려간다. 지치지 않고, 꾸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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